참 희한하다. 원래 경쟁이란 누가 더 잘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가 더 못하는가도 못지 않게 중요한 법이다. 아니 오히려 못하는 사람을 떨구어낸다는 점에서 후자쪽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서바이벌은 그래서 가장 못하는 사람을 떨구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불후의 명곡2>는 아니다. <불후의 명곡2>에는 오직 더 잘하는 사람만이 있다.
역발상이다. 물론 어차피 명곡평가단의 판정에 의해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구조는 여느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과연 승자와 패자 가운데 누가 남는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프로그램과 전혀 다른 지향을 보여준다. 승자가 남고 패자가 물러난다. 다시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나서 승자와 겨루게 되면 그 가운데 다시 다음 승부를 겨룰 승자가 남게 되고 패자는 대기실로 물러나 관객이 된다. 오로지 누가 승자가 되어 마지막까지 남는가에만 의미가 있다.
승자승방식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오로지 승자만을 가린다. 패자는 의미없다. 패자의 순위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 누가 더 못했는가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승자 앞에 모두는 단지 패자일 뿐이다. 더 잘한 사람이 승리하여 남아 다음 가수와 겨루고, 그렇게 계속해서 승리를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우승까지 하게 된다. 마지막 대결에서 단 한 번 승리했어도 그는 이제껏 다른 가수들을 누르고 올라온 이를 누르고 이겼으니 최종승자로서 우승자가 된다. 승자만이 남게 된다. 누가 더 못했고 그래서 탈락했는가 하는 것보다 누가 더 잘해서 마지막까지 남아 우승했는가 하는 것만이 남는다.
아마 다른 어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보다 <불후의 명곡2>에서 가수들이 한결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어차피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 어차피 우승자는 한 사람이다. 우승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는 결국 한 번은 지게 된다. 진다고 꼴찌가 아니다. 진다고 탈락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기지 못했을 뿐이다. 우승하지 못했다고 모든 가수들이 좌절하거나 실망해야 할까? 그래도 우승은 하고싶고 지면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어차피 모든 것은 명곡평가단이 판단한다. 할 수 있는 바를 최선을 다하고 단지 그 판단만을 기다리면 된다. 평가는 청중들이 내린다.
심사위원이 없다는 것도 한 몫 했다. 그나마 심사위원 비슷하게 역할을 하는 것이 객석에서 관객들과 함께 무대를 즐기고 있는 경연의 주제인 전설들일 것이다. 하지만 한참 후배들이고, 더구나 자신의 노래를 애써 재해석하여 헌정하여 보여주는 무대인데 선배로서 말을 하기도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전에 그저 그 자리가 기쁘다. 성훈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무대에서 마치 관객의 한 사람이 된 듯 춤을 추며 즐기는 그 모습 어디에서 무대와 가수를 평가하려는 오만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저 무대가 고맙고 즐겁다. 더욱 장점만 보게 된다.
<불후의 명곡2>를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다. 습관처럼 누가 더 못했느니 누가 더 아쉬웠느니 생각하다가도 끝나고 나면 단지 누가 더 훌륭했는가 한 가지만 남는다. 결국 누가 몇 승을 거두어 기세가 좋았고, 그럼에도 마지막에는 누가 우승을 거두었는가? 더구나 하필 바로 3월 17일 '전설을 노래하다 - 김건모편 2부'에서 성훈이 김건모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불러 파죽지세로 7연승을 거두고 우승하고 있었다. <불후의 명곡2> 역대 기록이다. 과연 이런 대기록을 앞에 두고 누가 더 못했고 아쉬웠는가를 말한다는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그같은 대단한 기록을 세운 성훈이 대단하고 놀랍고 감탄스러울 뿐.
심지어 성훈과의 대결에서 패한 노브레인의 '첫인상'에 대해서조차 오로지 승자인 성훈의 점수만이 보여지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기대를 하게 된다. 무척 인상적인 무대였다. 이토록 발랄한 사랑노래를 이렇게까지 음울하게 뒤틀어 놓을 수 있는가. 이것도 펑크다. 그리고 록이다. 아름다운 감성도 자극하지만 일그러지고 추악한 욕망 또한 서슴없이 들추어낸다. 사랑이란 과연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사랑이라는 것이 반드시 행복하기만 할까?
김구라의 말이 필자의 느낌이었다. 첫사랑이 마치 장롱 속에 있을 것만 같다. 장롱속에 감춰진 첫사랑에게 막대사탕을 내밀며 먹으라 말한다. 뱀파이어도 어울리지만 오히려 스릴러에 더 가까운 듯하다. 이것은 김건모의 '첫인상'과는 또다른 노브레인만의 '첫인상'이었다. 나는 전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노브레인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패했지만 결코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등수를 매긴다면 성훈 다음에 오지 않을까?
루시아가 아마 예전 에피톤 프로젝트에서 심규선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하던 그녀였을 것이다. 노브레인에 이어 어쩌면 일반대중에게는 생소한 홍대의 실력자가 공중파에 모습을 보이는 통로가 된다. 보는 사람만 보는 심야음악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렇다고 전혀 생뚱맞은 예능도 아닌, 그녀 자신의 전공인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무대다. 워낙 가수의 이름값에 기대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인지도에 비해 반발도 적다. 물론 그녀는 젊고 아름답고 실력도 출중하다. 다만 그녀가 부른 '미련'은 경연용으로는 조금 심심하지 않았을까? 소극장 무대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수백의 관객을 압도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역시나 무척 매혹적인 목소리의 소유자다.
알리가 이렇게까지 간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목소래를 내는 가수인가는 오랜만에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상당히 굵은 톤인데도 절묘한 밸런스가 온몸을 긁고 싶어질 정도로 사랑스럽게 흐르도록 만든다. 하이라이트에서 터지는 부분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 절제하는 아름다움이 알리다웠다. 원래 알리의 음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녀의 목소리에 반했다. 사랑스러움이라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할 줄 아는 가수였다. 다만 역시 조금은 기교적이지 않았을까? 하기는 프로가수에게 기술로써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흠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완숙하다.
가수란 참 잔인한 직업이다. 아니 다른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다. 코미디언 역시도 부모의 상을 당하고서도 정작 카메라 앞에서는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아픔마저 무대로 끌어와 감동을 더하려 했을 터이건만 끝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린의 말처럼 프로가수의 무대로서는 실패였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로 사람들은 그같은 진심에 마음이 움직이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린 개인에게는 아픔이지만 그것이 청중에게는 감동이 될 수 있다. 그조차 미리 계산하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프로의 냉혹함이다. 그녀는 프로다. 분명 그것은 맞다. 굳이 린의 '혼자만의 사랑'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는다. 그녀의 눈물이 곧 노래였다.
허영생의 무대를 보면서는 허영생이 아직은 젊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목소리가 상당히 달콤하다. 알리와는 다른 느낌의 달콤함이다. 아직 인생의 어려움을 알기 전의 무모할 정도의 순진함일까? 당연히 사랑은 이루어지고 행복할 것이라는 천진한 믿음이 있다.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이렇게나 맑고 투명하다. 허연생이라는 가수를 다시 보게 된다.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닐 텐데. 그런데도 이와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허영생이라는 인간이 내는 목소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 애교댄스는 그의 목소리와 어우러지며 같은 남자조차 어느새 옆구리를 긁게 만든다. 민망하다. 민망할 정도로 그의 무대는 사랑스러웠다. 단지 상대가 나빴다.
태민은 유일하게 아쉬운 무대였다. '잘못된 만남'이 그렇게 격렬한 춤을 춰가며 불러도 좋을 정도로 쉬운 노래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노래에만 집중해도 과연 소화하 수 있을까 싶은 버거운 노래였다. 실제 무대에서 태민의 힘겨워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귀로 들리고 있었다. 춤도 멋있었고 퍼포먼스도 화려했지만 정작 노래가 너무 아쉬웠다. 차라리 박재범처럼 자기가 자신있는 부분에 집중하며 나머지는 포기하는 전략을 썼으면 어땠을까? 퍼포머가 반드시 노래도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노래에 너무 어려운 선택을 했다. 그래도 하나의 무대를 혼자서 완결짓는다는 경험은 프로가수로서 태민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가수로서도 어른이 되었다.
역시 대선배였을 것이다. 성훈의 무대를 함께 즐기는 김건모의 모습에서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필 작은 김건모라 불리우는 성훈의 무대였다. 김건모의 가창력과 김건모의 익살맞으면서도 여유로운 무대매너, 그러나 그것은 또한 성훈이었다. 노래란 이렇게 즐겁다. 무대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다. 역시 상대가 안좋았다. 운이 나빴다. 성훈이 작두를 탔다. 하늘로 날아오른다.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보면 볼수록 빠져들고 있다. 이번주는 김건모, 그리고 다음주는 페티김, 루시아와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에게도 대중과 만나는 기회가 되어준다. 태민과 같은 아이돌그룹의 멤버에게는 가수로서 자신의 무대를 갖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노브레인은 이미 완숙한 음악인이다. 어쩌면 음악과 음악인이, 대중이 그 한가운데에 있다.
김구라의 역할이 소중하다. 모든 것이 사소하다. 린의 눈물에조차 가볍게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신동엽의 시답잖음이 지나치게 진지해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음악에 지나치게 침잠하지 않도록, 음악인에 넘치도록 집착하지 않도록, 음악은 즐기는 것이다. 무대는 즐거운 것이다. MC의 역할분담이 훌륭하다. 김건모는 최고의 게스트였다. 감탄했다. 최고의 음악예능프로그램일 것이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04
'예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대한 탄생2 - 프로페셔널한 기준이 아닌 위대한 탄생 기준입니다. (0) | 2012.03.24 |
---|---|
남심여심 - 같은 별에 사는 외계인, 남자 오만석에 남자로서 공감하다. (0) | 2012.03.19 |
위대한 탄생2 - 갈수록 왜소해지는 '위탄2', 어쩌면 답은 멘토스쿨에 있다. (0) | 2012.03.17 |
불후의 명곡2 - 전설 김건모와의 만남, 보컬이 주인공이던 때를 떠올리다. (0) | 2012.03.11 |
위대한 탄생2 - 벌써 6개월, 참가자도 지치고 시청자도 지치다! (0) | 2012.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