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무신 - 역사 없는 역사드라마, 김준조차 김준이 아니다.

까칠부 2012. 3. 18. 08:28

"김준의 초명은 김인준(仁俊)이며 그 아비 김윤성(金允成)은 본래 천예(賤隸)로서 그 상전을 배반하고 최충헌에게로 투신하여 종노릇하는 사이에 김준과 김승준(金承俊)을 낳았다. 김준은 풍골이 늠름했으며 천성이 관후하고 아랫사람에게 공손하였다. 또 궁술에 능했으며 남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해서 여러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고 날마다 호협스러운 청년 자제들과 교유하고 모여서 술을 마시었으므로 제 집에는 재산이라곤 없었다. 하루는 어떤 술수(術數)를 하는 중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이 사람이 뒷날에 반드시 국권을 쥘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김준전>>


필자가 드라마 <무신>에 대해 갖는 불만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역사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실제의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한다. 사실상 이름만 고려이고 최씨정권이지 기록에 나와 있는 고려와 최씨정권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주인공인 김준 또한 마찬가지다.


김준(김주혁 분)의 아버지는 만적의 난에 연루된 바 없었다. 오히려 원래의 주인을 저버리고 스스로 최충헌에게 투신하고 있었다. 김준의 성격 또한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음울하다거나 갑작스럽게 노비가 되어 위축된 기색 없이 오히려 여느 한량들처럼 활달하고 호방하기까지 하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가산을 탕진하는 모습 어디에 지금의 드라마에서의 김준이 있던가. 하기는 김준이라는 이름부터가 원래는 최의를 제거하고 권좌에 오르고 난 뒤 김인준에서 바꿔 부르게 된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김인준이어야 한다.


흥왕사승려들의 봉기와 굳이 김준을 얽으려 하는 자체도 무리수다. 흥왕사승려들의 봉기가 일어난 것이 1217년, 김준이 유경 등과 더불어 최의를 제거하고 최씨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 1258년, 그리고 그로부터 딱 10년이 지난 1268년에 그는 원종의 사주를 받은 임연등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만적의 난 당시 아직 강보에 싸인 아이였으니 1198년에 일어난 만적의 난으로부터 19년이 지난 지금 많아야 20살을 넘어가기 힘들다. 죽을 때까지 계산하면 70세다. 최우의 뒤를 이은 최항을 옹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가 1248년이니 50을 넘어가게 된다. 굳이 당시 고려인의 평균수명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노익장이 된다.


하기는 만전(백도빈 분)이 최항이라는 이름으로 최우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르는 것이 1248년인데 1217년 지금의 만전 또한 지나치게 성숙하기는 마찬가지다. 굳이 김준의 일대기를 몽골의 침략과 맞추려 하니 생기는 오류다. 몽골의 침략과 항쟁의 역사를 굳이 김준이라는 주인공에 맞추려 하다 보니 고려가 몽골과 처음으로 접촉하는 1217년 김준의 이야기가 나와야 했고 그것이 김준은 물론 김준과 관련한 만전(=최항)의 수명까지 늘려 놓는 결과로 이어지고 마는 것이다. 기록에 없는 내용이면 모를까 이미 있는 내용조차 드라마의 목적을 위해 아예 창작하려 든다. 역사드라마인데 이미 있는 기록조차 무시한다면 그것을 굳이 역사드라마라 불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사실 있는 기록만 가지고서도 얼마든지 김준의 일대기에 대해 매력적으로 구체적으로 재구성해 볼 수 있다. 풍채가 늠름하다 하니 외모도 뛰어날 것이다. 성품이 관후하고 아랫사람에게도 공곤하다 했으니 성품도 훌륭하다. 활을 잘 쐈다고 한다면 무예 또한 잘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 테고, 무엇보다 사람을 돕고 사귀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호방함에서는 영웅의 기개마저 느껴진다. 최소한 노비의 신분으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근거가 이미 젊은 시절의 그에게서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김준이란 어떤가? 그래서 결국 김준을 영웅으로 만들고자 기록에도 없는 허구의 격구로써 무려 8회에 이르기까지 분량을 할애해야 했던 것이다. 그조차 실제의 김준과는 상관없이.


차라리 역사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좋았다. 드라마는 드라마로서만 봐야 한다고 차라리 아예 <해를 품은 달>처럼 가상역사드라마를 표방했다면 그다지 실제의 역사와 비교해보며 실망하거나 아쉬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역사를 말하려 하니까. 드라마를 통해 고려인의 기상과 민족적 자존심을 내세우려 하니까. 판타지를 통해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려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사실은 교훈을 주지만 판타지는 단지 자기만족과 허황된 기대만을 품게 만든다.


굳이 고려를 고려제국이라 부르고 왕을 황제라 부르는 것도 거기에서 비롯된다. 외왕내제를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고려가 대륙의 여러 제국과 같은 제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고려의 왕이 황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최씨정권의 도방을 두고 당시 사람들이 절대 썼을 리 없는 막부라는 이름으로 부르려 하는 것도 그와 같은 목적에서 그리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도방보다는 막부가 더 대단해 보인다. 오죽하면 일본보다 막부가 빨랐음을 홈페이지를 통해 선전하려 하겠는가. 그러면서 그같은 목적을 위해 주인공마저 이미 있는 기록의 내용을 모조리 무시하고 새로 만들게 된다. 김준이되 김준이 아니고 더구나 실재했던 김인준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김준이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몹쓸 드라마인가? 의외로 최씨정권의 전성기와 몰락을 함께 했던 불우했던 군주 고종(이승효 분)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그럴싸하다. 고종은 심지어 <고려사>를 집필한 당사자로부터도 불쌍한 왕이라고 동정받던 그런 인물이었다. 무려 선선대의 희종까지 세 명의 앙을 갈아치운 최충헌에 대해 그의 힘으로 왕위에 올랐던 만큼 그는 결코 거역이라는 것을 몰랐던 충실했던 왕이었다. 어차피 그럴 힘도 주제도 안되었지만 그가 먼저 나서서 최충헌과 그가 세운 최씨정권을 제거하거자 의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최의가 제거되고 최씨정권이 몰락한 뒤에도 그 잔당을 처벌하는데 주저하고 있었다. 그조차 오래 살지 못하고 최씨정권이 몰락하자 이듬해 뒤따르듯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세상에 조금의 이익도 해도 끼치지 못했던 불행했던 왕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승효가 연기하는 고종이 실제의 기록의 고종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불만조차 갖지 못한다. 반감조차 스스로 꺼리고 삼간다. 살아남아야 한다. 순응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자신을 위하려는 충언에 경계심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아직 속내를 아주 감추지 못하는 것은 그가 어린 탓일 것이며, 그럼에도 최씨정권이 그를 내버려두는 것은 더 이상 고종까지 어떻게 마음대로 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고 고종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던 탓일 것이다. 얼핏 나름대로 존중받는 왕인 것처럼 보이더니만 실속없는 쭉정이임이 보인다. 아무리 최씨정권을 미화하려 해도 고종의 그같은 무력한 모습은 최씨정권의 실체를 보게 한다.


최우(정보석 분)의 딸 최송이(김규리 분)와 노비 월아(홍아름 분), 그리고 김준의 세 사람을 둘러싼 삼각관계가 흥미롭다. 최송이에게는 힘이 있지만 그렇다고 노비인 김준과 이어지기에는 그녀의 신분이 너무 높고 귀하다. 월아에게는 그녀의 순수함 만큼이나 자신의 사랑을 지킬 힘이 없다. 김준은 그 사이에 있다. 그는 영웅이 될 터다. 누구보다 최우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다. 다만 김준이 자신의 사랑을 지키게 되기까지 시간이 그를 기다려줄 것인가? 최송이에게는 이미 최충헌(주현 분)이 준비한 김약선(이주현 분)이라는 정혼자가 정해졌다. 비극은 잉태된다. 천한 어미의 출신으로 인해 뒤틀리고 일그러진 만종(김혁 분)의 사랑 또한 그들의 순수를 위협한다. 최송이와 만종의 이기와 집착이 어떤 큰 비극을 만들어내게 되려는가.


최충헌의 수명이 다해가며 최우와 최향(정성모 분)의 갈등 또한 본격화된다. 그보다는 그들을 앞세운 가신들의 싸움이다. 누가 주도권을 쥘 것인가? 누가 권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인가? 가신들에게 휘둘리는가? 아니면 가신을 손발처럼 움직이는가? 어차피 가신들의 충성이란 그들이 주는 반대급부에 비례하게 될 것이다. 누가 더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는가? 그러면서도 누가 더 많은 것을 그들에게 열어줄 수 있는가? 최우의 그릇이 크다는 뜻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최우는 상당한 인물이었다. 그 실력을 자신과 최씨정권만을 위해 써서 문제일 테지만.


어차피 굳이 가병이라 이름하지 않더라도 노비란 곧 가병이다. 평소에는 일을 부리고 유사시 무장시켜 싸움에 동원한다. 대단한 특혜랄 것까지도 없는 당연한 과정이다. 그런 가운데 김준은 격구의 부상으로 조금은 힘있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 어쩌면 이후 김준의 모습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사료에 나온 그대로일 것이다. 김준의 동생은 어찌 처리하려는가. 의형제라도 나타나게 될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사극에 의형제가 심심찮게 등장하게 되었다.


해석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해석만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사실 자체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증거에 입각해 접근해야 한다. 아니라면 판타지여야 한다. 이미 보이기는 완벽한 판타지드라마이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역사드라마라는 타이틀이 무척이나 거슬린다. 결코 역사드라마가 아니다. 역사드라마일 수 없다. 아쉬운 부분이다.


아무튼 걱정이다. 김준이 죽기까지 앞으로 51년, 많고 길기도 하다. 어떻게 사료에도 없는 당시의 사건들과 김준을 연결지으려는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부분이다. 이대로 판타지로 끝나고 말 것인가. 수기법사(오영수 분)의 지나치게 설명조의 대사도 마찬가지로 거슬린다. 팔만대장경에 대해서도 앞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재미있다면 굳이 그런 식으로 가이드하듯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이래저래 그다지 드라마로서는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도 기대해 본다. 최우와 최항의 갈등, 그리고 김준과 김약선, 최송이, 월아, 만종이 만들어내는 엇갈린 감정의 불협화음들, 당사자가 괴로울 때 드라마는 만들어진다. 비극에서 모든 드라마는 출발한다. 이제 불만 당기면 된다. 너무 많이 기다렸다. 드라마 자체는 재미있다. 아쉽다.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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