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패션왕 - 신세경은 참 예쁘다!

까칠부 2012. 3. 20. 08:45

뭔가 정신이 없다. 결국 이가영(신세경 분)이 일하던 조여사(장미희 분)의 가게가 원래는 죽은 이가영의 어머니의 것이었고, 그런 가게에서 구박덩이로 일하다가 마침내 뉴욕패션스쿨로부터 입학허가를 받고 기회를 손에 넣었는데 그만 누명을 쓰고 가게에서마저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다가 동대문의 짝퉁업자인 강영걸(유아인 분)과 만나 뉴욕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참 옛스럽다. 어쩌면 한국드라마만의 고유한 특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관계에 얽매인다. 패션이란 단지 패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패션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결국 패션이라는 수단을 통해 적을 쓰러뜨리고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그 와중에도 과거의 인연까지 얽히며 적이 만들어진다. 원수가 되고 그와 싸워야 할 필연이 드러난다. 이가영의 성공은 조여사의 실패가 되고 따라서 과거의 악연까지 얽히며 두 사람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사랑 또한 그저 만나서 좋아하게 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관계란 충분하다. 어딘가 속물스런 동대문 짝퉁업체의 사장, 그런데 알고 보니 나름대로 의외의 다정함이 있다. 이가영의 독단적인 디자인을 질책하는 모습에서는 짝퉁업체 사장다운 속물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심지어 그런 이가영의 디자인을 팔아넘기는 모습에서는 비굴하고 야비한 모습마저 보인다. 그러나 이가영의 디자인에 자극받아 자기만의 스케치를 만들고, 결국 뉴욕패션스쿨에 입학이 결정된 이가영을 위해 돈을 건네는 모습에서는 그가 가진 인간적인 매력이 엿보기에 된다. 


과연 이만하면 이가영이 이 대책없는 남자에게 호감을 보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강영걸의 입장에서도 궁지에 몰릴대로 몰려 절망적인 상황에 그래도 꿈을 잃지 않는, 더구나 재능까지 가진 이가영이란 호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강영걸에게는 그런 와중에도 이가영의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볼 줄 아는 눈이 있다. 굳이 과거의 이야기가 필요했겠는가.


더구나 아니나 다를까 대기업 오너의 2세인 정재혁(이제훈 분)이 등장하며 불쌍한 콩쥐를 위한 구색을 맞춘다. 도대체 정재혁은 이가영과 어떤 관계가 될 것이며 그녀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그러나 그런 정재혁과의 만남을 위해 이가영은 정재혁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 이가영과 만나기 위해 정재혁은 프랑스에서 왔다는 디자인에게 떠밀려 뉴욕지사로 향하고, 이가영은 강영걸에게 받은 돈으로 뉴욕패션스쿨을 찾아간다. 


강영걸이 조직폭력배 두목 황태산(이한위 분)의 애인과 밀회를 갖다가 들통나 원양어선을 탔다가 미국에 표류한 것 역시 이가영이 조여사의 음모에 의해 뉴욕패션스쿨로부터 거절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설정일 것이다. 뉴욕에서 그들은 만날 것이고 서로 얽힐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진행된다. 시놉시스에 나온 대로 최안나(유리 분)까지 더해지며 복잡해진 관계 속에 얽히고 섥힌 감정들이 패션드라마의 나머지를 채우게 된다. 확실히 배우들은 멋있다.


어쩌면 너무 멋진 배우들이라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조금은 못나고 한심한 배우들이었다면... 하지만 과거의 경우를 보더라도 굳이 그렇게 잘나고 멋진 배우가 아니더라도 배우들은 사랑을 한다. 서로 사랑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갈등하면서 드라마의 동기와 결과를 만든다. 패션은 단지 거들 뿐. 그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복잡한 설정과 촬영을 진행할 수 있는 노력이 놀라울 뿐이다. 미국까지 갔다. 그저 동대문에서 별 볼 일 없는 짝퉁업체에 일하면서도 꿈을 가지고 하나씩 이루어가는 이야기일 것이라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기대해 보고 있었는데 결국 미국까지 가고 말았다.


신세경은 참으로 예쁘다. <뿌리깊은 나무>와는 또 다르다. 특히 강영걸의 공장에서 숙식하며 때로 남자인 강영걸을 경계해 각목까지 챙겨들고 잔뜩 긴장해서 잠자리에 들 때는 도저히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잠옷까지 귀여웠다. 조여사와 맞서는 당당함과 미싱에 집중하는 진지함, 그리고 때때로 보이는 사랑스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디자이너의 권위마저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 있는 정재형의 오만할 정도의 당당함 역시 하나의 매력이다. 그 반대편에서 밟혀 짓이겨진 잔디처럼 그럼에도 꿋꿋이 일어나려는 비굴한 또다른 강영걸의 당당함이 있다. 뻔뻔함이란 자신이 불리한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지나치면 사람이 염치없어진다. 염치가 없어지면 죄의식도 사라진다. 그 경계에 있다는 것이 강영걸이 갖는 불안함이며 매력이다. 최안나는 어떻게 그려질까?


일단 배우들 보는 재미는 있다. 그러나 드라마의 줄거리나 설정은 참으로 옛되고 전형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언가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스케일만 키워 버렸다. 스케일을 키워 놀라고 감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야기가 더 복잡하게 꼬여버리며 혼란스럽고 번잡스러워지는 결과만 낳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정재형과 이가영이 굳이 함께 뉴욕에 가야 할 이유란 무엇이며 강영걸은 어떻게 우연히 미국에 표류하게 되었는가? 대사관부터 찾아가야 한다.


앞으로가 중요할 것이다. 잔뜩 벌려놓고 꼬아놓은 이야기를 어떻게 수습하며 앞으로를 위한 필연을 만들어가는지. 시작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결국 이가영이란, 강영걸이란, 그리고 정재형이란, 최안나란, 그들 중심인물들이 만들어갈 드라마가 더 중요하다. 시작에서 조금 무리수가 있더라도 그것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필연이 된다면 무리가 아닐 수 있다. 지켜보는 이유다. 아직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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