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2년의 시간이 흘렀다. 흥왕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최충헌을 죽이고자 봉기가 일어난 것이 1217년, 몽골군이 거란족을 쫓아 동진국의 병사와 더불어 고려로 들어온 것이 이듬해인 1218년 12월, 다시 1219년 2월 16일에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은 강동성을 함락시키고 있었다. 의외로 김준(김주혁 분)이 포로로 잡혔다가 격구경기에서 우승하기까지 1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야말로 소리소문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김준(김주혁 분)이 최충헌을 죽이고자 일어난 승려들의 봉기에 연루되어 충령사에서 월아(홍아름 분)와 더불어 포로로 잡힌 것도 겨울, 그리고 축성장에서 자원하여 격구대회에 출전한 것도 겨울이다. 같은 겨울이지만 연도가 다르다. 1217년 겨울과 이듬해 1218년 겨울, 이 또한 드라마적인 왜곡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1년 내 있었던 일들을 모두 시시콜콜 다룬다는 것은 무모하고 무의미하다.
결국 덕분에 김준이 격구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하는 장면이 생략된 채 강동성 함락이 나오고, 충령사에서 함께 잡혀온 김준과 월아 두 사람의 결혼 이야기가 오간다. 그만큼 그 사이 나이를 먹었다는 뜻일 것이다. 한 살이라도 더 나이를 먹게 되었으니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사를 주위에서 먼저 챙기게 된다. 그토록 중한 상처를 입었던 김준이 어느새 멀쩡한 것과도 관계가 있다. 그새 김준과 월아는 물론 최송이(김규리 분)까지도 한 살을 더 먹었다.
문제라면 과연 그것이 의도한 것인가?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몽골군이 러시아의 전신인 키예프 루시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것이 강동성전투가 끝나고도 4년 뒤인 1223년이었다. 그리고 당시 모스크바 공국이란 키예프 루시를 이루는 여러 공국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었다. 고려의 장수들이 그 이름을 듣고, 더구나 몽골군이 모스크바 공국을 몰아붙였다는 이야기에 새삼 놀라거나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세계라는 말도 또한 당시에는 쓰이지 않던 단어였다. 역시나 이만큼 강성했던 몽골과 맞서 버텨냈다는 대몽항쟁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키예프 루시 - 혹은 키예프 공국보다는 알려진 모스크바 공국을, 더구나 미처 키예프 루시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 사실을 몽골의 대표가 말하고 있다.
한 마디로 그동안 내내 지적해왔던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지나치게 목적에 충실한다. 어떠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나머지를 끼워맞추려 한다. 도방의 사병이 고작 500명밖에 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아우인 최향(정성모 분)에게 최충헌(주현 분)의 가신들이 거의 몰려가 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최향은 그로 인해 자신만만해 하고 최우는 그것을 두려워하여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도방의 병력이 원래의 수천의 규모에 이른다면 설득력이 있을까?
바로 그래야 원래 열세이고 약자였던 최우가 마침내 역전하여 정권을 잡게 되는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연민 또한 최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한 근거가 될 것이다. 어차피 최씨정권의 모든 힘은 도방에 있었다. 도방이야 말로 최씨정권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그것을 최우가 가지고 있다. 이미 최우가 강자였다면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최향을 동정하게 될 수 있다. 사실보다는 드라마의 재미가 더 중요하다.
단지 바로잡을 뿐이다. 혹시라도 오해하게 되는 경우를 위해. 김준이 처음 충령사에서 최씨정권의 포로가 되었던 것은 1217년, 격구경기가 열리던 것은 이듬해인 1218년 12월, 그리고 김준이 최씨정권의 노비로써 노군이 되고 월아와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지금이 1219년 2월, 더불어 아직 몽골군은 모스크바 공국은 커녕 키예프에 대한 공격도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최우 또한 최향보다 열세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최씨정권의 처음이자 끝이 도방이었고 최우가 바로 그 도방을 틀어쥐고 있었다. 오히려 약자의 입장에서 최우를 의식하던 것은 다름아닌 최향이었다. 하긴 어디 바로잡아야 할 것이 한둘이겠냐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요즘에는 '막부'라는 말을 잘 안 쓰는 것 같다. 무리임을 알게 된 때문일 것이다.일본 이외의 어느 나라도 무사정권을 막부라 부르지 않았다. 홈페이지의 내용들과는 달리 최씨정권의 실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덕명(안병경 분)과 최준문에 대해서 누가 그들을 그 자리에 올리고 있었는가? 심지어 최준문에 대해서는 자신이 정을 통하던 동아라는 노비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그가 과연 대장군에 어울리는 인물인가 하는 비판 이전에 고작 자신과 정을 통한 노비의 말 한 마디로 자격도 없는 이를 대장군의 자리에 올렸다. 그런 최충헌의 입바른 소리란 얼마나 공허한가? 안다면 마땅히 부적격자는 걸러내야 하는 것이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그에게 주어진 의무일 것이다.
아무튼 최송이의 들끓는 격정이 갈수록 관심을 집중시킨다. 김준은 노비다. 최송이는 당당한 최씨정권의 후계자 최우의 유일한 적녀다. 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다. 김준도 언감생심 최송이에게 마음을 품어서는 안되지만 최송이 또한 마찬가지다. 자칫 자신을 해치고 김준마저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마음으로만 품는다. 플라토닉한 사랑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강제된 플라토닉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질투와 좌절로 그녀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격구경기에서 마지막 승자가 되고 김준이 월아의 이름을 입에 올렸을 때 그녀는 분노했다. 질투로 격한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준의 말 몇 마디에 그녀는 풀어지고 있었다. 월아와의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 오히려 애써 태연한 척하려는 그 속내는 무엇일까?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이대로 김준을 놓아주고 싶지는 않다. 그 복잡한 속내도 알지 못하고 옆에서 김준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몸종 춘심(김하은 분)이란 얼마나 얄밉고 화가 나는가. 그런 그녀의 들끓는 격정이 결국은 드라마를 비극으로 몰고가지 않을까. 사랑이란 체념한 듯해도 더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법이다. 최송이의 비극이기도 하다.
역시나 노비의 처지란 난장(고수희 분)이라고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아무리 주방의 노비들을 관리하는 제법 높은 자리에 있어도 그래봐야 노비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어디에서 일하는가? 누구 밑에서 일하는가? 하다못해 결혼조차 뜻대로 할 수 없다. 월아가 부럽다. 그리 주방에서는 위세를 부리더니만 이제는 높으신 분의 곁에서 그의 총애를 받으며 편히 지내는 월아의 신세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의외로 시대의 설움이 그녀에게 있다. 문득 울컥했다. 어찌되었거나 바로 그것이 노비의 삶이다.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도 허락되어 있지 않다.
이제 곧 최충헌이 죽을 것이다. 죽어야 한다. 벌써 1219년이다. 한 해만 넘어가면 최충헌도 유령이 된다. 최충헌이 죽고 나면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이미 자신이 이겼다 여기며 여유를 부리는 최향과 여전히 열세 속에 탈출구를 찾아 고민하는 최우, 어쩌면 그런 가운데서도 김준은 활약하게 될 지 모르겠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우유부단을 여유로, 두려움을 신중함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최향이 주도권을 쥔 현재상황은 드라마를 위해 역사와 상관없이 만든 상황이다. 몽골의 사자가 개경에 도착하게 되었으니 몽골과의 관계도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드라마가 시작된다.
극적인 의도라는 것은 알겠다. 아니라면 어처구니없이 기본적인 자료조사 없이 드라마를 쓰고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기본은 지켜주어야 하지 않는가. 각각의 심리묘사는 괜찮다. 드라마로서도 재미가 있다. 그러나 정작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드라마가 배경 속에 녹아들지 못하도록 한다. 시대와 드라마가 떨어져 있다. 아쉬운 부분이다.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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