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만 강하다. 그대로 앉아서 자신의 불운만을 탓하는 타입이 아니다. 세상의 악의를 원망하고 자신의 무력함을 그저 견딘다. 스스로 하는 일 없이 누군가 구원해주기만을 기대며 기다린다. 숲속의 공주님이다. 그러나 이가영(신세경 분)은 다르다. 그녀는 먼저 움직인다.
조여사(장미희 분)의 학대와 착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순간에도 뉴욕패션스쿨에 입학할 꿈을 키운다. 보내달라는 것이 아니다. 먼저 원서를 쓰고 당당하게 유학비용을 요청한다. 조여사에게 누명을 쓰고 쫓겨나야 하는 상황에서도 먼저 나갈 것을 이야기하며 우연히 본 구인전단지에 주저없이 찾아가 일단 일부터 시작하고 본다. 짝퉁을 만드는 공장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자기 디자인의 옷을 만들 수 있는 당당함이란 그녀의 그같은 치열함에서 비롯된 것일 터다.
설마했다. 오로지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왔다. 뉴욕패션스쿨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리라는 기대만을 가지고 먼 미국까지 날아왔다. 그런데 그 기대가 좌절되었다. 어떻게 할까? 이제까지의 전통적인 여주인공이라면 조여사의 악의를 알았더라도 그저 눈물만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조여사와 그녀의 딸 신정아(한유이 분)의 악의를 깨달았더라도 자신의 불운만을 한탄할 뿐 무언가 스스로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는 법이 없었다. 그것을 선량함이라 믿었다. 딱 신문광고를 보고 무작정 봉숙(유채영 분)을 찾아가 그녀의 일을 도우며 그녀의 아파트에 머무는 정도가 고작이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가영은 정재혁(이제훈 분)을 찾아갔다. 조부띠끄에서 잠시 스친 희미한 인연에 기대어 그를 찾아가 하소연하고 있었다.
비굴하지 않았다. 간절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녀 자신과 그녀 자신의 꿈을 위한 치열함이고 충실함이었다. 자신을 오해하고 쥐어준 돈을 잘 쓰겠다며 뻔뻔스럽게 고개를 숙여 보일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그것은 분노였다. 자신을 무시했다. 멋대로 단정짓고 모욕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존엄은 물론 그녀가 간직한 꿈의 존엄을 해치는 행위다. 그녀는 당당하다. 당당하기에 당연히 그 댓가를 요구한다. 그 순간에조차 자신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뻔뻔함은 그같은 당당함에서 비롯된다. 누구보다 자신이 소중하고 자신이 꾸는 꿈이 소중하다. 그래서 그녀는 그 꿈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눈물만 흘리는 여주인공은 아니라는 뜻일 게다. 무엇이든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내려 할 것이다.
강영걸(유아인 분)의 캐릭터도 보통을 넘어서기는 마찬가지다. 외국인선원들을 학대하는 한국인 선원을 나서서 말릴 수 있는 선량함과 자신이 차고 있는 시계를 미끼로 외국인 선원들을 속여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임기응변, 기껏 이가영을 찾아간 뉴욕패션스쿨에서 그녀를 찾지 못하자 우연히 만난 정재혁에게 바로 빌붙을 수 있는 뻔뻔함, 세계가 멸망해도 그는 죽지 않을 것 같다. 아니 바로 그러한 그의 악운에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악운으로 세계가 멸망한 가운데 그는 혼자서 살아남아 꿋꿋하게 살아간다.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지도 절망하지도 않는다. 이가영의 당당함과 자존이 강영걸의 비굴한 낙천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꿈을 꿀 것이고 살아가려 할 것이다. 그들은 밑바닥의 강함을 알고 있다. 절묘한 커플이다.
뉴욕에서 벌어질 일들이 벌써 궁금해 진다. 최안나(유리 분)는 명품브랜드의 디자이너다. 이가영은 뉴욕패션스쿨에 입학하려 한다. 강영걸은 동대문에서 짝퉁으로 업계의 밑바닥을 경험해 봤다. 정재혁은 대기업의 후계자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뉴욕에서 런칭할 야심을 가지고 있다. 강영걸의 낙천과 뻔뻔함이 정재혁과 얽히고 최안나와 이가영이 다시 두 사람과 이어지며 한 바탕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이미 선상반란을 일으킨 주범이 되어 있는, 더구나 사채업자 황태산(이한위 분)에게 쫓기는 처지이기까지 한 강영걸로써 당당히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라도 제법 큰 사건이 터져주어야 할 것이다. 자체브랜드를 런칭하겠다는 정재혁의 선언과 최안나와의 재회, 그리고 강영걸과 이가영과의 우연한 만남이 그 단초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쉽다면 아니나 다를까 정재혁과 이가영 사이의 과거회상씬일 것이다. 정재혁도 이가영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새 이가영을 눈여겨보고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과거에 의지한다. 최안나와 과거 연인사이였던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물론 강영걸과의 관계는 강영걸이 일방적으로 빌붙고 있는 것이다. 강영걸과 정재혁 사이의 과거의 일들에 대해서는 아예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영걸과 이가영 또한 과거의 인연으로 얽혀 있다. 지겹다. 그나저나 설마 이가영이 신세지고 있는 봉숙마저 또다른 과거에 얽혀 있는 것은 아닐가?
다행히 조순희는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가영이 모든 것을 걸고 쓰러뜨릴만한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위협이 된다면 정재혁의 어머니 윤향숙(이혜숙 분)일 것이다. 그녀는 권력이 무엇인가를 안다. 줄 땐 주고 받을 것은 확실히 챙긴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수준에 맞춰 철저히 거리를 둔다. 그녀에게 조순희란 그저 조금 쓸모있는 패션숖 주인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받을 것이 있는 이상 베풀 것은 확실히 베푼다. 아들이 선택했다고 그대로 따라줄 타입은 절대 아니다. 복수극이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더 커진다. 이가영은, 그리고 강영걸은 과연 어디까지 올라가게 될 것인가? 그리고 정재혁은? 최안나는?
억지스럽던 설정들이 회차가 지나가며 하나씩 정리되어가는 느낌이다. 이가영의 캐릭터를 보여주어야 했다. 강영걸의 캐릭터도 역시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만나야 했다. 어째서? 바로 그 필연을 보여주고자 할 것이다. 정재혁은 전형적이지만, 최안나 역시 너무 전형적이다. 주인공이 누구인가 너무 분명히 드러난다. 전형적이지만 개성강한 주인공과 독특한 상황설정이 나름의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어쩌면 재미있을 것이다. 이미 상당히 재미있다.
유리의 연기가 썩 나쁘지 않다. 정극연기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것인데 이만하면 준수하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정재혁의 캐릭터의 폭이 좁은 만큼 이제훈의 고전도 예상해 본다. 연기가 아닌 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유아인은 완벽히 강영걸이 되어 있다. 신세경은 예쁘다. 괜찮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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