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순정만화 가운데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라는 제목의 만화가 있었다. 만화의 내용보다 어쩌면 제목이 더 기억에 남는 만화였을 것이다. 어수선한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선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선 두 남녀가 수화로써 서로 사랑을 속삭인다. 서로 말로써 전하지 못할 말을 사랑하는 이를 위해 배운 손짓을 통해 먼 거리에서도 진심으로 전하고 들린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손짓이 아름다웠다. 인상적이었다.
원래 노래란 이야기였을 것이다. 넘치는 말이 노래가 되었다. 그러고도 다시 넘치는 노래가 몸짓이 되었다. 소리로 다 하지 못할 이야기가 벅찬 몸짓이 된다. 말 이전의 말이었다. 문자 이전의 문자였다. 기호 이전의 기호였다. 몸짓이란. 가장 원초적인 본능의 언어다. 소리로 부르는 노래와 함께 몸으로 부르는 노래가 흐른다. 손짓을 따라 가사와 함께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한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고, 그 하나에 다시 하나를 올리며, 그렇게 소리로 부르는 노래와 몸짓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듣는 이의 심장으로 와닿는다. 울컥. 눈물은 눈이 아니라 벅찬 심장이 흘리는 것일 게다. 귀로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사를 들려주고자 급하게 연습했다는 마음이 정성어린 손짓과 함께 가슴을 울린다.
아마 소냐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어쩌면 현장에서는 무대에 선 소냐의 섬세한 손짓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TV를 통해서는 워낙 카메라가 가까이서 클로즈업까지 해가며 보여주는 성의를 기울인 탓에 그 하나하나가 선명히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와 거리가 먼 현장의 객석에서 그녀의 손가락 끝이 어떤 모양을 하고 어떤 선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다지 명확하게 보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TV로 보는 감동과는 달리 현장에서 소냐의 무대에 매긴 점수는 얼핏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낮았다.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가장 멋진 목소리이며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온몸과 온목소리로 모든 감동을 전하고 있었다.
소냐의 손끝이 부르는 노래가 노래의 가사 하나하나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었다면 박재범의 몸짓은 그 이전의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격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냐의 손끝에서 풍부한 표정과 다양한 감정이 손으로 전하는 말속에 녹아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면, 박재범의 몸짓에서는 그러도록 만드는 원초적이면서 본능적인 에너지 그 자체가 표출되고 있었다. 외롭고 흐뭇하고, 슬프고 행복하고, 차갑고 따뜻하고, 쓰면서도 달고, 쓸쓸하면서도 화려하고, 길지만 짧은, 짧지만 긴, 사랑이란 격정이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행복과 불행이 함께한다. 희망에 들뜨고 절망에 좌절한다. 젊기에 더욱 사랑이란 격정에 사로잡혀 고뇌하는 청년이 있다. 박재범이다. 마지막 헤드스핀을 마치고 넋두리처럼 무대에 눕는 동작에서 그같은 치이고 지친, 그러면서도 자신을 불태울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는 젊은 청춘을 보게 된다. 아마 필자도 그 무렵에는 그렇지 않았겠는가.
소냐의 노래가 애절하고 폭발적이라면 박재범의 노래는 원초의 그 어딘가를 후비고 긁는 매력이 있다. 더욱 표현이 깊어진 것 같다. 자기의 노래다. 자기의 무대다. 자신의 언어다. 노래만이 아닌, 아니 목소리만이 아닌 몸짓으로도 노래를 들려준다. 가사가 될 수 없는 원형의 감정을 몸짓이라는 자기만의 목소리에 담아 눈으로 들려준다. 그는 몸으로 노래한다. 복근 또한 어쩌면 그를 이루는 목소리의 하나일 것이다. 패티 김의 평가를 그대로 들려준다. 그는 '꾼'이다. 자신의 무대로 만든다.
김태우의 노래는 그에 비하면 상당히 산만하기도 했을 것이다. 세 번이나 노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무대의 구성도 바뀌고 있었다. 일관성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자신을 위한 노래가 아니었다. 선배인 패티 김을 위한 노래였다. 그에게 들려주려 한다. 그에게 보여주려 한다. 그녀에게 바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단지 원곡자인 패티 김에게 후배로서의 존경과 애정을 담아 전한다. 그를 위한 노래다. 마치 어른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아이처럼 그 자리에 모인 모두와 함께 올곧게 패티 김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 한다. 패티 김의 54년 무대인생을 떠나보내는 자리였다. 김태우가 마지막에 박재범을 꺾고 우승을 거둔 이유였다.
강민경은 참으로 예뻤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쁘고, 목소리도 예쁘고, 무엇보다 눈물이 예뻤다. 예쁜 여자는 울기도 예쁘게 운다. 예쁜 여자는 슬퍼하기도 예쁘게 슬퍼한다. 처절하지 않다. 비장하지도 않다. 그런 자신을 연민한다. 목소리에 실어 흐르는 감정의 선이 예쁘다. 더욱 그녀의 눈물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한없이 예쁘게, 그러다 마지막 울컥 넘쳐흐르는 눈물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녀는 참으로 예쁘다.
태민도 예뻤다. 하지만 오랜만에 그의 무대에서는 두께가 느껴지고 있었다. 감정의 폭이다. 그동안 단지 목소리가 예쁜 노래 잘하는 아이돌에서 어느새 노래를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려드는 가수가 되어 있었다. 기술적으로 잘하고 타고나기를 예쁘게 타고난 아이돌에서 진심으로 노래에 담긴 감정을 전하고자 하는 가수 태민이 있었다. 샤이니의 컴백준비로 말미암아 며칠을 밤을 새며 지쳐 있던 상태였지만, 하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 있기에 힘을 뺀 솔직함도 가능할 것이다. 춤도 훌륭했다. 기본적으로 필자도 잘생긴 남자 싫어한다. 염치없는 무대였다. 아쉬웠을 것이다.
먼데이키즈의 이진성은 반면 남자였다. 격정이 넘친다. 박진영의 격정이 안으로 삭이며 고뇌하는 격정이었다면 이진성의 격정은 겉으로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격정이었다. 술에 취하면 담벼락이라도 두들길까? 한껏 토해내고 그리고 후련해하며 후회한다. 거칠 것이 없다. 패티 김과는 분명 다르다. 노래에 충실한다. 가사와 멜로디에 충실하려 한다. 그러나 전혀 다른 감정이 전달된다. 패티김과 이진성은 다르다. 나이며 성별이며 살아가는 세대 모든 것이 다르다. 가수마다 아무리 편곡이 같아도 노래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데뷔 8년차라는 말이 더없이 어울리게 들리고 있었다.
항상 행복하다.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 그녀를 기억해주고 앞으로도 기억해 줄 이들이 있다. 54년의 시간을 돌이킨다. 그 동안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좌절, 그 모든 순간들이 수많은 감정과 함께 뇌리를 스친다. 그 시간들을 너무나 믿음직한 후배들이 대신해준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자랑스런 후배들에 의해 계속해서 이어진다. 소냐가 부른 '사랑의 맹세' 그대로 그것은 영원의 맹세였을 것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군자는 죽지 않는다. 예술가는 영원한 삶을 살아간다.
한 바탕 즐거운 잔치였을 것이다. 대선배가 있고 그녀를 기억하는 후배들이 있다. 한 가수가 있고 그녀를 기억하고 기리려는 후배들이 있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 시간들을 공유한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영원의 시간이 이어진다. 그래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들 사랑스럽지 않고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후배들과 그들의 무대에 대해 보이는 대선배의 무한한 애정은 그들을 이어주는 질기고도 단단한 끈일 것이다. 음악이라고 하는 그들을 엮는 운명이다.
아무튼 소냐의 무대가 끝나고 김구라가 감탄하며 한 이 한 마디로서 모든 감동을 대신하려 한다.
"가수분들이 정말 여러가지 방법으로 대중들을 감동시킬 줄 아는 방법을 아시는 분들이라서..."
차마 글로는 그 손짓을 대신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글이란 너무 명확해서 그 나머지의 감정을 전하는데 그다지 적합하지 못하다.
"사랑합니다."
패티 김의 뺨에 입맞추던 박재범처럼. 아름답다는 말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다. 외모가 아름답기도 하고 사람이 아름답기도 하다. 그리고 그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이 아름답기도 하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다. 그들은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경의를 보낸다.
소냐가 오히려 박재범에게 패해 내려오면서도 오히려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더라도 함께 있을 수 있어 좋다. 서로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서로의 무대를 즐길 수 있어서, 서로의 복근(!)을 볼 수 있어서, 무엇보다 함께 한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다. 음악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좋은 이유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22
'예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후의 명곡2 - 현인 10주기, 그러나 노래가 불리는 한 영원히 살아있다. (0) | 2012.04.15 |
---|---|
불후의 명곡2 - 전설 이은하, 박재범 몸으로 노래하다. (0) | 2012.04.08 |
위대한 탄생2 - 구자명 우승, 가장 멋진 드라마가 완결되다. (0) | 2012.03.31 |
불후의 명곡2 - 최초이자 최고의 디바, 당신의 열정과 사랑에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0) | 2012.03.25 |
위대한 탄생2 - 프로페셔널한 기준이 아닌 위대한 탄생 기준입니다. (0) | 2012.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