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뜬금없는 멘트가 아니었다. 임태경이기에 그리 말한 것이었다. 73년생이다. 90년대 이후 한국대중음악의 흐름이 크게 바뀌면서 패티김 역시 대중들의 눈에서 많이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방송출연도 자주 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당대의 인기스타였다. 70년대 후반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과 그 느낌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그 시절의 패티김을 보았다.
"어렸을 때 장난감삼아 자주 가지고 놀던 게 턴테이블이었어요..."
어쩌면 다른 후배가수들에게 패티김이란 단지 <불후의 명곡2>에서 표현한 대로 전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미 흘러가 버린 역사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패티김이라는 놀랍고 대단한 이름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의 이름을 먼저 듣고 비로소 그의 노래와 무대를 찾아서 듣고 보게 된다. 그러나 임태경에게 패티김이란 그와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당대의 스타였다. 지난 역사로써 그 이름을 듣고 노래를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같은 시간 속에서 그 이름과 노래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그에게 패티김이란 그가 함께 공유하고 있던 그 소중했던 시간을 의미한다.
한 시대가 저문다. 무척이나 비감한 느낌이다. 한때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이다. 그로 인해 웃고, 그로 인해 울고, 그로부터 감동받고, 그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 자신을 떠나보내는 심정이다. 그와 함께 했던 자신의 시간들도 함께 떠나보낸다. 상실감이 크다. 그토록 좋아하고 열광하던 마음속의 영웅이었기에 그를 떠나보낸 빈자리가 너무나 휑하고 서럽다. 그럼에도 보내주어야 한다는 현실이 헤어짐을 아쉽게 한다.
물론 완전한 헤어짐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는 우연히 스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결코 무대가 아닐 것이다. 무대에서 가수로서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은퇴한 운동선수가 다시 코치가 되고 감독이 되어 경기장에 돌아오더라도 그는 더이상 예전의 선수가 아니다. 그의 플레이를 다시 볼 수 없다. 그의 연기를 다시 볼 수 없다. 그의 노래를, 무대를 다시 느낄 수 없다. 그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없다. 그런 작별의 시간을 보낸다.
정말 값진 무대였을 것이다. 말처럼 그녀는 최초의 디바였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었다. 누군가 불러서가 아니었다. 자기가 무대를 만들고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선다. 그녀를 보고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다. 리사이틀이라는 이름의 단독공연을 1962년 그녀가 처음으로 가졌다. 어쩌면 최초의 스타였을 것이다. 그저 노래만 잘 부르는 가수가 아닌 직접 그 노래부는 모습을 보고자 찾아나서게 만드는 대중의 우상이었다. 그녀는 여왕이었다. 음악과 무대를 지배하는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54년만에 처음으로 떠나보내는 무대를 후배들이 갖는다. 이보다 더 의미있는 무대가 있을 수 있을까? 그것도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들이다.
그러고 보면 <불후의 명곡1>에서 마지막까지 제작진이 그 이름을 외쳐부르던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패티김이었을 것이다. 섭외를 위한 상당한 노력과 정성이 있었을 터임에도 패티김은 끝까지 <불후의 명곡1>에 출연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불후의 명곡2>에서는 오히려 기꺼이 후배들과 더불어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스스로 출연해주었으면 하는 후배가수를 지목했을 정도로 그만큼 후배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기꺼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나같이 노래를 잘하는 후배들이다. 그들 세대만의 어법으로 자신의 노래를 소화해 부른다. 기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전설이기 이전에 음악을 사랑하고 후배들을 사랑하는 선배음악인이었을 것이다.
임태경은 과연 모두를 대표해서 헌사를 한 당사자다웠다. 패티김의 무대는 드라마틱하다. 하나의 완결된 드라마가 흐른다. 유장하면서도 아름답고 격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이다. 그래서 또한 그녀는 디바다. 스스로 노래속의 주인공이 된다. 자신의 무대 위에 배우가 되어 주인공을 연기한다. 임태경의 무대는 또한 뮤지컬배우답게 매우 드라마틱하다. 다른 것 없이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그는 드라마를 만든다. 패티김 또한 자신의 무대를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로써 완성한다. '사랑은 생명의 꽃'이란 그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라마가 되어 무대에 올려진다. 임태경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린이 들려준 '사랑은 영원히'는 사이키델릭이란 무엇인가를 그대로 들려준다. 사이키델릭이란 격정이다. 격정 속에 자신을 놓아보내는 것이다. 느끼는 그대로를 따른다. 그것은 본능이다. 애써 억누르려 했던 본능이 이성을 뚫고 멋대로 자신을 휘젓는다. 묘하게 다르면서도 패티김과 닮았다 여긴 것은 그래서였다. 몽환적인 사운드 사이로 나른한 린의 목소리가 역설적이게도 깊고 강렬한 격정을 들려준다. 그녀는 또한 패티김과 닮았다. 특히 마지막 자신의 목소리마저 놓아버린 듯한 정적의 여백은 무엇으로도 담을 수 없는 격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거세게 폭발시키는 것도 좋지만 폭발음이 너무 크면 아예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잠시 과연 이번의 최고의 무대라 생각했다.
에일리의 '빛과 그림자'의 무대는 린과는 또 달랐다. 그녀는 패티김 그 자체였다. 물론 다르다. 창법도 다르고 음색도 다르고 곡을 해석하는 방식도 다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가 같다. 물론 다른 모든 가수도 마찬가지다. '열창'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 하나하나에, 노랫말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 부르는 모습은 문득 소홀히 지나치기 쉬운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노래는 멜로디였을 터다. 그리고 가사였다. 이야기였다. 말로써 이루어지는, 그리고 말이 아닌 것으로 전하는 하나의 더욱 진한 이야기일 것이었다. 그 원점을 들려준다.
"부담되지는 않아요, 그냥. 제 무대는 자신있습니다."
그 되바라진 자신감이 좋다. 프로라면 그래야 한다. 이미 프로로써 데뷔했다. 프로로써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한다. 그렇다면 굳이 자신의 음악을 사고 일부러 공연을 찾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음악과 무대를 들려주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를 위해 노력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자신의 최선인가. 고민하고 갈등하고 부딪혀 깨지면서 자신의 음악을, 무대를 완성해간다. 그녀의 자신감은 그같은 그녀가 기울여 온 노력과 과정들에 대한 자신감일 것이다. 오로지 노래에 집중해 부르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의 자신감이 허튼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녀에게는 자격이 있다. 분명 그녀는 패티김의 말처럼 좋은 가수가 될 것이다. 자만하거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알리의 무대는 아이디어도 노래도 썩 훌륭했지만 오히려 그같은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과연 패티김의 '초우'와 볼레로, 둘 중 어느쪽이 주인가? 차라리 초우를 중심에 놓고 볼레로를 연주와 코러스로 한 발 뒤로 물렸으면 어땠을까? 초우의 멜로디와 가사에 집중하면서 볼레로를 그 배경으로 삼는다. 그러나 초우를 부르는 사이 지나치게 길게 이어진 볼레로의 파트는 볼레로가 갖는 뜻을 고려하더라도 주제를 흐트릴 위험이 있었다. 흥미롭지만 명확하지 않다. 볼레로가 갖는 원래의 뜻을 감안하더라도 썩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모호한 무대였다. 그래도 알리니까 좋다.
존박은 아무래도 고음이 약한 탓에 패티김의 폭발력강한 무대를 소화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대신 그가 부른 '못잊어'는 무척이나 감미로웠다. 힘은 부족하지만 목소리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분위기도 멋지다. 성훈의 경우도 부족한 파괴력을 라틴을 가미한 신명으로 대체해 훌륭히 소화해 보이고는 있었지만 역시 패티김의 원곡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 심연을 울리는 듯한 원곡에 비해 성훈의 목소리는 너무 가늘고 예쁘다. 어쩔 수 없이 패티김과 비교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케이윌의 경우는 노래가 갖는 섬세한 감성 대신 지나치게 힘에 의존한 것이 아닌가. 잘하지만 과연 어떤 노래였던가 제대로 감정전달이 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는 항상 완벽하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유독 명곡판정단의 점수가 짜게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김건모 때도 그렇지만 워낙 대단한 - 그래서 전설이라고까지 불리우는 가수들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비교될 수밖에 없다. 원곡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어느새 비교를 하게 된다. 어떤 가수도 패티김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르더라도 원곡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한 무의식으로라도 비교를 하게 된다. 차라리 존박과 성훈의 원곡이었다면 점수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패티김의 노래이기에 패티김의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로 평가에 아쉬움이 있다. 다음주는 과연 이번에 받은 점수를 뛰어넘는 대단한 점수들이 나올 수 있을까.
참으로 여왕과도 같이 품위있게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던 이일 것이다. 원래 창을 배웠었기에 창이 갖는 깊은 처절함과 그러면서도 스탠다드와 클래식에서 유래한 격조높은 우아함, 무대가 격정적이면서도 세련되다. 아마 모두가 생각하는 최고의 디바였을 것이다. 그를 향한 경의다. 그리고 애정이다. 그녀가 가는 길을 후배들이 모두 모여 지킨다. 그녀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가 아닌 자신의 노래를 부르면서. 한 바탕의 잔치다. 어린 후배들의 선배를 위한 재롱잔치다. 헌정이라 부른다. 진정한 헌정이라는 의미에 어울리는 무대였을 것이다. 그녀가 웃으니 보고 있는 자신도 좋다.
다시는 그녀의 무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서운하다. 이제 다시 가수로서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조금만 더 보았으면. 그러나 그런 그녀의 뒤를 이어 새로운 주인공들이 나타난다. 이번만 존박, 성훈, 임태경, 케이윌, 린, 에일리, 알리, 새로이 대중을 감동시키는 이들. 아름다웠다. 다른 말이 필요없다. 보기만 한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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