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장철환(전광렬 분)이 아닌 강기태(안재욱 분)이 쳐들어갔어야 했다. 쳐들어가서 독설을 퍼붓고 복수를 다짐했어야 했다. 그러나 상황이 역전되었다. 강기태는 앉아 있고 장철환은 서있다.강기태는 말없이 웃고 있는데 장철환만 혼자서 성을 낸다. 성장했다.
전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좌충우돌하던 강기태는 더 이상 없다. 시련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지난 4년 간의 시련이 강기태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다. 적당히 자신을 감출 줄도 알고, 웃는 얼굴 뒤에 벼린 칼을 숨기는 법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차수혁(이필모 분) 앞에서 아닌 척 던진 한 마디는 그의 가장 솔직한 기만이었을 것이다.
"절대로 무식하게 덤빌 일 없을 테니까 걱정마라."
차수혁이 웃은 이유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갑다. 친구의 성장이 고맙다. 그리고 기대가 된다. 강기태에 대한 미안함과 열등감이 만족한 기대와 분노로 들끓어 오른다. 어찌하나 보겠다. 어쩌면 차수혁 자신도 자신의 악의에 지쳐있던 터였을 것이다. 머리 좋은 차수혁이니 더욱 간절히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 포기할 수도 없다. 과연 차수혁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조금은 뜬금없기도 할 것이다. 김재욱(김병기 분)에, 유채영(손담비 분)에, 심지어 홍콩영화자본의 거물 란란쇼 회장까지. 몽테크리스토 백작처럼 강기태 또한 어디 숨겨진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벤허처럼 대단한 거물의 목숨을 구해주고 양자라도 된 것일까? 지난 4년간의 성과라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 국제무기거래상까지 나오고 있다. 복수의 스케일이 너무 커졌다. 오히려 강기태가 복수하려는 대상들이 지나치게 초라해 보일 정도다. 복수란 의미가 있을까? 하기는 아직 남은 분량으로 복수를 마무리하기에는 갈 길이 급하기는 할 것이다.
감정은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다. 지난 4년의 시간동안 유채영은 자신의 불같던 열정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가고 있었다. 화산같이 타오를 줄만 알던 열정이 온천처럼 은은한 열기로 상대를 감싸안는다. 그리고 반대편에 차수혁에 대한 의리와 강기태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정혜(남상미 분)가 있다. 비록 강기태를 위해서였기는 했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강기태를 떠나 차수혁에게로 왔다. 그나마 차수혁에게 빚을 졌는데 그조차 다 갚지 못했다. 그동안 함께 해왔던 시간들과 미안함이, 그리고 강기태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절망이 그녀를 붙잡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강기태를 잊지 못한다. 항상 누군가는 기로에 서 있다.
이정혜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떠밀렸을 뿐이었다. 운명이, 상황이, 주위의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 그와 같은 선택을 강요했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그녀가 스스로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잔인한 것이다.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다. 어째서 그녀는 그토록 당당하지 못하고 항상 주눅들어 휘둘리기만 하는 것일까? 이정혜의 비극이다.
너무 순조롭다. 순조로울 것이 예감된다. 쇼브라더스의 란란쇼 회장과의 계약 역시 별다른 큰 어려움 없이 강기태는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분위기가 그렇다. 차근히 성장을 이루어가며 따내야 하는 계약이 아니다. 그의 성장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따내야 하는 그런 성격의 계약이 아니다. 복수를 위해 돌아왔는데 과연 얼마나 복수를 위한 자격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과시를 위한 계약이다. 그동안 얼마나 복수를 위한 준비를 미치고 있었는가. 이제 와서 다시 다투고 갈등하며 성장까지 이루기란 남은 분량이 얼마 없다. 그는 미친듯이 내달려야 한다.
조명국을 쓰러뜨린다. 유채영을 이용해 장철환까지 쓰러뜨린다. 차수혁은 김재욱의 몫이다. 강명희(신다은 분)가 불안하다. 그녀는 아직 차수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유채영과도 친하다. 유채영이 하는 일에 대해 묻던 아무렇지도 않은 관심은 자칫 강기태의 계획을 노출시키는 위험을 내포한다. 강기태와 강명희의 사이는 그다지 오빠와 여동생이라는 관계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간절함이 관계를 정의한다. 그녀는 또한 비극의 주인공이 될까? 아마 이후의 과정 가운데 드라마가 있다면 강기태와 이정혜의 관계를 제외하고 그것이 유일할 것이다. 강기태와 이정혜의 관계는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곤란한 처지에 놓인 노상택(안길강 분)의 몰락이 안쓰럽다. 양태성(김희원 분)에게조차 무시당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처지가 되어 있다. 앞에서는 애써 좋은 얼굴을 해 보이며 뒤에서는 한 대 치고 싶어 손이 근질거린다. 신정구(성지루 분)와 순애의 관계도 미묘하다. 애증일 것이다. 결국에 신정구를 떠나고 나서도 순애의 감정은 신정구에 구애된다. 어떻게 해결은 될 것이다.
자칫 드라마가 일방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위기도 있고 굴곡도 있어야 하는데 지난 4년간의 시간이 조커가 되어 드라마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 아무런 위험도 불안도 없다. 위기감도 긴장도 느껴지지 않는다. 짜릿한 결말을 위한 숨죽인 긴장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 그래도 드라마인 이상 한 차례 풍파는 있을 것이다. 언제일까? 어디에서일까? 누구로부터일까?
너무 멀리 갔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시놉시스를 읽으며 과연 같은 드라마인가. 한국드라마제작의 안타까운 현실일 것이다. 드라마를 만들며 대본도 쓴다. 드라마가 언제 어디로 가게 될 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차라리 운에 맡기고 만다. 다행히 그나마 재미는 있다. 미묘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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