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 시어머니의 며느리 붙잡기, 애절하면서도 웃는 이유...

까칠부 2012. 4. 2. 08:49

이 드라마가 좋은 이유일 것이다. 일단 납득이 간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해 안 가는 부분이 거의 드물다. 마냥 호감이기만 한 인물들도 아닌데 어느새 드라마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이 있다. 어쩌면 과장되고 억지스런 부분도 있을 테지만 그같은 촘촘한 구조가 금새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든다.


무려 30년만에 만난 가족이다. 30년만에 겨우 찾은 가족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갑작스레 생겨난 시어머니와 시누이들로 인해 친구들에게 놀림받느라 미국으로 떠나야겠다는 다짐만 다잡는다. 떠나지 말았으면 하는 가족들 앞에서 그래도 끝까지 자기 입장만을 내세워 가고자 하는 고집을 내세운다. 그래도 남편의 가족인데 30년만의 기적같은 만남이 그녀는 기쁘지도 감동스럽지도 않았던 것일까? 며느리 차윤희(김남주 분)의 이야기다. 무척이나 그 하는 말이며 행동이 전통적인 가치관에 비추어 몹시도 얄밉고 얌체스럽다.


하지만 당장 그녀의 친정어머니 한만희(김영란 분)부터가 그녀의 올케이기도 한 며느리 민지영(진경 분)에게 시집살이를 시키지 못해 안달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딸에게는 시집식구는 남남이라 말하고 그러면서도 며느리는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양 마음대로 휘두르려 한다. 차윤희가 시집살이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은 그녀의 어머니와 올케가 시집살이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직접 보아왔던 탓이 크다. 결혼한 친구들도 하나같이 시집식구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토로하고 있고, 그녀가 참여하고 있는 드라마의 내용이 그러하다. 


주위의 사람들도 한결같이 말한다. 시집살이는 안하는 게 좋다고. 시집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훨씬 좋다고. 어려서 해외로 입양되었던 탓에 구속하거나 간섭할 시집식구가 없는 김남주의 처지를 모두가 부러워하고 있었다. 하기는 30년만에 찾은 아들의 아내에게 그새 시어머니노릇을 하려 드는 엄청애(윤여정 분)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이해하게 된다. 태어나기도 전에 잃어버린 오빠였음에도 그동안의 감정까지 더해져 시누이노릇을 하려드는 방말숙(오연서 분) 또한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째서 그녀가 그토록 시집과 시집살이를 싫어했는가? 어째서 가족을 찾고 방송에까지 출연한 좋은 자리에서 그녀는 그토록 허무한 눈물을 보여야 했었는가? 아들만을 챙기려는 친정어머니 한만희와 오랜만에 다시 찾은 아들에게 집착하려드는 엄청애에게서 어떤 기시감조차 느끼게 된다.


시어머니 엄청애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다. 참으로 곤란한 시어머니일 것이다. 차윤희의 남편 방귀남이 30년 전 잃어버린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이미 시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얼마전 방귀남의 혈액형을 잘못 전한 것으로 타박하고, 아침에 늘 먹던 빵을 내놓은 것을 지적하고, 전혀 아무런 악의도 의식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그리 하고 있다는 점이 딱 시어머니다. 심지어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욕심에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중요한 기회가 되어줄 미국행을 방해하려 한다. 아무리 가족의 정이고 어머니의 정이라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해야겠는가?


차윤희도 그렇지만 엄청애 역시 아마 그냥 아무런 설정이나 설명 없이 그대로 보여졌다면 비호감소리 깨나 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며느리가 있는데 아들을 데려가 함께 자려 하겠는가? 그러나 30년만에 찾은 아들이니까. 30년이라는 시간과 그 긴 시간동은 썩어왔던 어머니의 속이 그같은 그녀의 행동에 일말의 여지를 남긴다. 더구나 그토록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고 싶은 욕심에 명품가방까지 사서 선물 아닌 뇌물로 바쳐가며 일을 꾸미다가도 어느새 아들과 며느리의 장래라는 말에 눈물로 고개를 떨구는 모습에서는 바로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인가 싶다. 오히려 그런 엄청애의 어머니로서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한 채 미국으로 떠나려는 차윤희가 매정해 보인다. 


바로 고부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어제까지 전혀 모르는 타인이었다. 겨우 얼굴이나 알고 지내던 이웃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어머니라 말한다. 아들의 아내라 말한다. 남편이, 그리고 아들이 서로를 시어머니라 부르게 하고 며느리라 부르게 한다. 타인인데 어느 순간 가족이 되어 있고, 그들의 사이에 서로의 남편이고 아들이 있다. 아내로서 남편을 사랑하고, 어머니로서 아들을 사랑한다. 서로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있다. 그보다는 자신이 더 위해주고 싶은 집착이 있다. 전혀 타인이었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들과 남편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강조해 보여준다. 무려 30년을 애타게 찾아헤매던 아들이었다. 그토록 그리워하고 찾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끝내 죽었다 포기하려 했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 과연 어머니된 이로서 그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더불어 그 과정에서 전혀 남인 줄 알았던 앞집 남자가 사실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앞집 새댁 또한 어느새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전혀 타인으로써 그토록 서로 다투고 갈등하고 감정이 상하고 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시어머니이고 며느리라 한다. 


아니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마냥 며느리라고 양보와 희생을 강요당해서는 안되는 이유, 며느리란 아들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가려 한다. 좋은 기회가 생겼다. 더 많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들을 제대로 배워보고자 한다. 방귀남에게도 기회가 무척 좋다. 세계적인 명문대에서 중요한 연구를 수행한다면 그만큼 의사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겨우 힘들게 찾은 아들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고 싶은 욕심에 엄청애는 조윤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딸들을 동원해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들을 달래고, 비싼 돈을 들여 선물공세를 펴기도 한다. 그럼에도 며느리란 아들의 아내이며 아들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서로 사랑하는 반려이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그렇게 화해의 여지를 남긴다.


층층이 쌓는다. 촘촘히 배치해 놓는다. 그렇게 씨줄과 날줄이 엮인다. 억지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상황과 감정들이 그렇게 씨줄과 날줄로 엮여 정리된다. 얄밉지만 공감된다. 곤란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 상황들이 재미있다. 자칫 기분나쁠 수 있는 장면들마저 공감과 이해라고 하는 개연성 우에 한 바탕 즐거운 웃음이 된다. 역설이란 비극이기도 하고 부조리이기도 하지만 때로 한 바탕 유쾌한 웃음이기도 하다. 당사자는 무척이나 심각한데 보는 입장에서는 그런 모든 것이 우습고 재미있다. 과연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누이와 올케, 결코 반가울 수 없는 그들의 사이가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서로 마주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떻게 다시 가족으로서 만나게 될 수 있겠는가? 각각의 요소가 다 웃음이고 그것들을 잇는 것이 개연성이며 드라마가 된다.


마치 뱀과도 같다. 소리소문없이 조여온다. 떠밀리듯 유인되듯 작가가 쓰는데로 휘둘리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다. 하나 허투루 쓰는 장면이 없다. 그러면서도 장면 하나하나가 재미있다.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해가며 쓰는가를 알겠다. 쉽지만 결코 쉽지 않다. 쉽기에 절대 쉽지 않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란 그 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하나 어색한 배역이 없다. 재미있다. 진하게 남는 것이 있다.


둘째 이숙(조윤희 분)과 차윤희의 옛과외제자 천재용(이희준 분) 사이의 로맨스가 상당히 짓궂으면서도 재미있다. 여기서도 드라마는 중심과의 유기적 연계를 놓지 않는다. 이숙과 천재용 사이의 오해는 바로 차윤희와도 이어진다. 이숙은 차윤희와 천재용의 불륜을 의심하고, 자기가 무엇을 의심받고 있는지도 모르는 천재용은 당황스러운 가운데 더욱 이숙과 얽히게 된다. 또다른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가 있다. 그들 사이에 풀여야할 오해가 있다. 그것이 또다른 로맨스와 만난다.


막내 말숙과 차윤희의 동생 차세광(강민혁 분)의 관계는 조금 억지스러운 것이 있다. 불필요한 사족과 같다. 성형과 명품에 중독된 어떤 일부에 대해 응징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차세광이 말숙을 유혹하는 과정부터가 상당히 클리셰적이다. 진부하며 전형적이다. 굳이 그와 같은 장면이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그 부분만 따로 튀어나와 있다. 어쩌면 본격적인 관계는 차세광이 의도적으로 말숙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다음이 아닐까?


한물간 스타 윤빈(김원준 분)의 비참한 처지가 우스우면서도 짠하다. 없는 돈에 팬을 실망시킬 수 없어서 - 혹은 허세로 택시를 타고 택시비가 없어서 쩔쩔맨다. 겨우 얻은 옥탑방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팬에게 들킬까 허둥지둥 숨는다. 김원준도 한 때 잊혀졌던 시절이 있었다. 임재범이며 박완규며 한 때의 사람들로부터 잊혀지면서 겪어야 했던 아픈 사연들을 털어놓은 바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꿋꿋하게 발로 뛰며 활동을 이어나가려는 것이 무척이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인 듯하다. 한 마디로 강하다. 이미 한 번의 아픈 상처가 있는 일숙(양정아 분)에게 위로가 되어줄 듯하다.


똑똑하고 유식한 방정배(김상호 분)와 그녀의 어눌하고 천진한 아내 고옥(심이영 분)의 대비가 무척 흥미롭다. 한 마디로 웃긴다. 어떤 슬픔이 있다. 아련한 아픔이 고옥의 천연덕스러움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기분나쁘지 않은 웃음을 만든다. 방정배의 아들의 터무니없는 무식함조차 고옥의 자연스러움은 유쾌한 웃음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존재 자체가 코미디다. 김상호는 역시 연기를 잘한다. 아마 없었다면 드라마가 무척 심심했을 것이다.


차라리 가지 말라고 붙잡았으면 미안함은 덜했을 것이다. 노인의 한탄은 비겁하다. 다음에 만날 것은 기약하는데 그 다음이 무척이나 멀고도 두렵다.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도 아닌데 이래서야 괜히 무슨 큰 죄라도 짓는 것 같다. 할머니의 포근한 햇살이 차윤희의 차고 단단한 방어를 녹인다. 아니 그 전에 방귀남을 녹여버릴 것이다. 자식의 앞길을 막고 싶지 않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부모와 함께 있고 싶은 것이 자식의 마음인 것이다. 반전일 것이다. 엄청애가 포기하는 순간 포기를 종용한 할머니 전막례(강부자 분)가 그들을 설득한다.


내내 즐겁게 웃는다. 약간은 짓궂기도 하다. 얄궂은 악의도 있다. 그러나 뒷끝은 없다. 연민하기도 한다. 동정하기도 한다. 그 이전에 인간이기에 갖는 당연한 공감이 있다. 웃음 뒤에 가려진 깊은 슬픔이 있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슬픔이다. 그래도 웃는다. 드라마의 힘이다. 재미있는 이유다.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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