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패션왕 - 이가영을 데려나오는 버스안, 강영걸 화내다.

까칠부 2012. 4. 3. 09:04

말한다. 전형적인 캔디라고.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마냥 착해서 참고 견디며 기다린다. 마냥 사랑하고 마냥 사랑받으며 주위에 이끌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리라. 그러나 이가영(신세경 분)은 그런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기 전에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부터 생각한다. 그녀가 결코 캔디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다.


원래 그런 캐릭터였다. 조순희(장미희 분)에게 쫓겨날 때도 그녀는 죽은 어머니의 지분을 이야기하며 당당히 조순희에게 돈을 요구한다. 자신의 장래를 위해 뉴욕패션스쿨에 원서를 내고 그 비용을 조순희에게 얻어내려 한다. 조순희에게 쫓겨난 다음에도 그녀는 꿋꿋이 일자리를 구하며 작은 짝퉁공장에서마저 디자이너의 꿈을 접지 않는다. 어찌 보면 철이 없어 보일 정도다. 짝퉁으로 먹고 사는 공장에서 독자적인 디자인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아니나 다를까. 강영걸의 공장에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하고 짐마저 뺐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는 오히려 조순희를 찾아간다. 억울할 것이다. 화도 날 것이다. 수치스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 더 이상 기댈 곳도 갈 곳도 없는 상황에 조금의 억울함이나 부끄러움은, 그리고 분노는 그다지 생각할 것이 되지 못한다. 눈물을 꾹꾹 눌러가면서 그녀는 끝까지 그녀를 거부하며 모욕주려는 조순희에게 심지어 협박까지 한다. 이대로 자신을 내쫓으려 한다면 기자들이 좋아할 것이다. 대외적인 이미지에 많은 신경을 쓰는 조순희에게 딱 적당한 협박이다. 그녀는 결코 마냥 착하기만 한 여자가 아니다.


조순희의 가게에서 잠시 머물 수 있게 된 뒤에도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아 손놓고 있지 않는다.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무섭고 부끄럽고 억울하고 화나고. 조순희를 찾아와서 다시 한 번 모욕과 수치를 당했다.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다. 쉴 만도 하다. 울 만도 하다. 아주 조금만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려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그녀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옷부터 디자인한다. 남는 천과 재료들을 모아 그 디자인대로 옷을 만든다. 그리고 그 순간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정재혁(이제훈 분)에게 전화한다.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디자인과 재능을 팔기 위한 전화였다. 정재혁의 오해 속에 그녀는 심지어 그를 만난 자리에서 직접 패션쇼까지 선보인다.


과연 그녀는 캔디였을까? 물론 울기도 많이 운다. 이를 악물기도 많이 악문다. 그러나 그녀는 억지로 하늘을 보며 웃으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앞을 보며 달려간다. 부지런히 길을 찾으며,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의 손과 발을 놀린다. 눈물도 감수한다. 억울함과 분노도 받아들인다. 그녀는 땅에 산다. 그녀는 현재에 산다.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앞을 보며 걸어간다. 그녀가 믿는 것은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동화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손끝이다. 자신의 재능을 믿는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녀 자신을 믿는다. 


다만 그녀도 사람이기에 힘들어질 때가 있다. 이대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만은 살아갈 수 없다.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강영걸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다. 자신이 두고 떠나온 여동생, 돈 많이 벌어오라며 그를 배웅하던 다시는 보지 못할 여동생이다. 차라리 이가영과의 과거 대신 여동생의 이야기를 보다 많이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여동생과의 약속이, 여동생의 바람이 있었기에 그는 결코 한순간도 포기할 수 없다. 체면이고 염치고 양심이고 그는 그렇게 비틀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가영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마냥 강영걸에 기대려는 이유다. 지나칠 정도로 강영걸에 집착한다. 아무것도 해 준 것 없이 폐만 끼치던 그였다. 자신도 힘들던 터에 뉴욕까지 찾아와 빌붙으려 하고, 심지어 그로 인해 뉴욕패션스쿨이라는 겨우 잡은 기대와 희망마저 억지로 접어야 했었다. 아니 내쫓겼다. 강영걸의 공장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수모와 고통이란 어린 아가씨가 감당하기 차마 힘든 것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상처투성이로 내쫓겼을 때 그녀는 조순희의 가게로 찾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시 한 번 그 굴욕과 분노를 감당해야 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강영걸이 조순희의 가게로 찾아오자 기꺼이 그의 손을 잡고 무작정 따라나선다. 사랑이었을까?


아마 사랑이라기보다는 각인이었을 것이다. 새끼새가 깨어나 처음 보는 존재를 어미로 인식하며 따르듯 이가영에게 강영걸이란 처음으로 기댈 수 있는 무언가였다. 도저히 더 이상 꿈이란 것을 꿀 수 없을 것 같을 때 그는 그녀에게 꿈을 보여주었다. 뉴욕패션스쿨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었고, 뉴욕에서도 고작 매일 고기를 먹게 해주겠다는 약속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 작은 희망이나마 힘차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가영이 아직도 간직하고 있던 그 시절의 강영걸과의 사진이란 미처 이뤄지지 못한 그 약속과 희망에 대한 그녀의 기대와 미련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가영의 강영걸에 대한 감정이란 매우 소극적이면서도 간절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그녀도 비로소 꿈을 꿀 수 있었다. 기댈 곳 없이 막막하기만 하던 그녀에게 강영걸이란 꿈 자체다.


결국 강영걸도 마지막 선을 넘지 않았다. 거기서 그대로 도망쳤더라면 강영걸은 다시 돌아오기에는 너무 먼 어려운 길을 그대로 떠나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돌아갔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고모를 찾아가고 거기에서 죽은 여동생을 만나고 난 뒤 오히려 사채업자 황태산(이한위 분)에게 먼저 전화를 건다. 사기꾼에 가깝던 사업가로서의 그의 수완이 거기서 빛을 발한다. 스스로 기회를 얻어내고 이가영을 찾아가 그녀를 데려온다. 공장까지 찾아가 그녀의 짐을 찾아주고 그녀에게 일자리를 준다. 말이야 거칠게 하지만 그 또한 강영걸 나름의 이가영에 대한 미안함이고 배려였을 것이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책임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민망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남자였다.


조부띠끄에서 이가영을 데리고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가며 짐짓 내뱉는 강영걸의 거친 말들이 그런 그의 안타까운 속내를 보여준다. 나한테 책임지라는 거야, 뭐야? 나더러 미안해 죽으라고? 그러면 내가 고마워할 줄 알았냐?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미안해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간절히 고맙다는 뜻이다. 화가 난다. 어째서 이렇게 미안해해야 하는지. 이렇게까지 고마워해야 하는지. 무엇보다 도저히 어떻게 책임져야 할 지 모르겠다. 


이가영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화를 내는 것이다. 무력하고 무능한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울부짖음과도 같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이며 그가 입고 있는 상처다. 이가영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과 책임감이며 그로 인해 그가 입어야 할 자존심의 상처다. 그래서 그는 이가영을 데리고 나왔다. 함께 공장으로 찾아가 짐을 챙기고 그녀에게 일자리를 소개시켜준다. 동생을 만났다. 두고 온 동생과 이가영이 서로 겹쳐보인 것은 아닐까? 확실히 이가영과의 과거보다는 동생과의 기억을 더욱 강조해 보여주는 쪽이 나았을 뻔했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아마 드라마 내내 가장 핵심이 되는 최고의 명장면이었을 것이다. 조부띠끄에서 나와 자신의 공장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강영걸과 이가영이 함께 울던 장면은.


이가영도 알았을 것이다. 강영걸이 어떤 뜻에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어째서 그렇게 자신에 상처입히는 말들을 하는지. 이가영 자신만이 아니라, 아니 오히려 강영걸 자신에게 더 큰 상처가 되었을 말들일 것이다. 이가영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이가영의 말이 서운하다거나 억울해서가 아니라 울음처럼 쏟아내는 강영걸의 말 뒤에 숨은 그의 진심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쁜남자에게 사로잡히는 아주 전형적인 패턴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원래의 뻔뻔한 강영걸로 돌아간다. 고맙던 것도 순간 그는 다시 태연히 그녀의 앞에서 최안나(유리 분)와의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버스 안에서 울음보다 더한 분노를 쏟아내며 서로 상처입히던 눈물이 그리도 아프게 가슴에 새겨진 것을. 큰 반전의 계기가 없는 한 이가영은 강영걸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최안나의 절망이 읽힌다. 정재혁은 거꾸로 자신감이 넘친다. 정재혁이 사는 세상은 모든 것이 명확하다. 그의 태생과 그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어려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좌절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세상에 그늘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는 심지어 최안나의 절망조차 알지 못한다. 최안나가 갖고 있는 짙은 그림자조차 전혀 알려 하지 않는다. 그가 지금껏 실패를 겪는 이유다. 어째서 그는 굳이 명품브랜드라고 하는 타이틀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반면 최안나는 그녀의 위축된 자신감이 그녀의 재능을 가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안나는 확실히 이가영과는 다른 캐릭터다. 이가영은 먼저 디자인부터 한다. 옷부터 만든다. 패션이야 말로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전부이며, 그녀가 내세울 수 있는 전부다. 그러나 최안나는 아니다. 그녀에게는 명품브랜드에서 일했다고 하는 커리어와 정재혁과의 관계가 항상 그녀의 실력에 우선해 이야기되어진다. 그녀의 이름 앞에는 항상 마이클이 따라붙는다. 강영걸이 최안나와의 재회를 반가워하는 이유였다. 과연 최안나 자신만이었어도 강영걸은 반가워했을까? 그녀의 성공은 그래서 공허하다. 다만 드라마를 통해 채워갈 수는 있을 것이다. 성장드라마가 된다.


이렇게 네 사람이 모였다. 하나같이 간절한 꿈이 있다. 그보다 깊은 절망을 가지고 있다. 정재혁의 절망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그것을 어떻게 채워나가는가가 중요하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아직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에 불과하다고 하는 현실의 한계로부터, 그리고 과연 그가 바라보는 것은 이가영인가? 아니면 최안나인가? 확실히 한국드라마는 인정에 이끌린다. 이가영과의 만남에서도 그는 그녀의 옷이 아닌 그녀의 처지를 먼저 떠올리고 연밀을 갖는다. 강영걸과의 관계는 어떻게 그를 성장시켜 나갈지.


힘든 고비를 넘겼다. 늦었지만 이제 비로소 앞으로의 전개를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이가영의 꿈과 강영걸의 의지와 최안나의 열등감, 그리고 정재혁을 둘러싸고 있는 굴레들. 절망한다. 좌절한다. 그래도 꿈을 꾼다. 꿈을 이루려 한다. 아직 정재혁에게는 그같은 간절함이나 절박함이 없다. 그는 어떻게 일어서 제 발로 딛고 달리게 될까? 기대한다. 재미있어지려 한다. 간만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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