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빛과 그림자 - 조명국의 파멸, 강기태 순양극장을 되찾다!

까칠부 2012. 4. 10. 09:50

바로 그것이었다. 드라마 스스로 극중인물의 입을 빌어 그것을 지적한다. 강기태(안재욱 분)가 달라졌다.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강기태란 한 마디로 돈키호테이며 삼국지의 유비였다. 허황될 정도로 낙천적이고, 그러면서도 답답할 정도로 정도만을 걸었다. 중앙정보부장이라는 대단한 지위에 있는 이와도 인연이 있으면서도 그를 이용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운과 실력만으로 헤쳐나가려는 무모함도 보였다. 그래서 꼴통이었다. 강기태라고 하는 인물이 갖는 매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물론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말하는 것이며, 표정짓는 것이며, 행동하는 모두가 이전과 똑같다. 당연하다. 배우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배우는 안재욱이다. 강기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다만 이제까지 없던 겉으로 보이는 강기태와는 다른 그 뒤쪽의 모습이 생겨나고 말았다. 머리를 쓰기 시작한다. 거짓을 말하고 사람들을 속이려 한다.


전직 중앙정보부장인 김재욱(김병기 분)과 자신과 인연이 깊던 유채영(손담비 분)까지 끌어들여 장철환(전광렬 분)과 조명국(이종원 분)을 파멸시키기 위한 덫을 놓는다. 쇼브라더스의 란란쇼 회장의 대리인으로 조명국과 계약을 맺은 인물조차 원래는 조태수(김뢰하 분)를 통해 의뢰한 그의 하수인이었다. 도대체 어떤 것들을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 이제는 강기태가 기득권이 되어 버렸다. 한 발 한 발 복수를 위해 차수혁(이필모 분)등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아닌,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응징하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강기태가 그들의 위에 있다.


통쾌함은 있다. 그동안 강기태가 그들에게 당해온 것이 있다.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고, 강기태 자신 또한 누명을 쓰고 쫓기듯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차수혁의 곁에 있는 그녀는 원래 강기태와 연인사이이던 이정혜(남상미 분)였다. 송미진(이휘향 분)과 노상택(안길강 분)과 신정구(성지루 분) 역시 그들에게 당한 것이 있었다. 지금도 장철환과 조명국은 악역으로서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폭력과 협박으로 타인의 재산을 빼앗고,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다른 이를 압박하고 겁박한다. 당해도 싸다. 다만 그 방법이다.


당당하기를 바랐다. 오히려 무도하고 불의한 무리들이기에 보다 정의롭고 당당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복수가 아닌 응징을 가하기를 바랐다. 제아무리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불의한 시대라 할지라도 드라마속에서나마 상식과 정의가 지켜지기를. 그런 기대를 가져보기에 충분한 캐릭터였다. 아예 처음부터 사기나 계략에 능숙한 캐릭터로 묘사되었다면 그런 기대를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도하고 불의한 시대였기에 더욱 그같은 당당하고 정의로운 모습이 승리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주인공이 승리하는 판타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강기태가 선택한 것은 저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속임수와 기만이었다.


일본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본에서 강기태가 마침내 손에 쥐고 돌아온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김재욱까지 끌어들이고 유채영마저 동원해 일을 꾸미도록 만드는가? 그러나 결국 힘을 손에 넣자 그가 기대는 방법이란 역시 장철환 등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복수라는 명분을 앞에 내걸고는 있지만 강기태란 결국 그들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 그랬기에 지금의 복수를 위한 힘도 가질 수 있었던 것일 터다. 엄밀히 말하면 패배다. 불의한 시대에 무도한 무리들과 강기태는 닮아가고 말았다.


입맛이 쓴 이유다. 당당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올곧게 나아가 복수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편법을 통하지 않고서도 불의한 상대를 쓰러뜨리는 판타지란 드라마에서조차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정도를 걸어 자신들이 그동안 저지른 죄와 악행들에 대한 심판을 받고 진심으로 후회하고 반성케 하는 이야기란 드라마로조차 볼 수 없는 불가능한 꿈이없던 것일까? 그렇게밖에는 살아갈 수 없다. 어느새 다가오는 광주민주화운동과 삼청교육대의 공포처럼. 그나마 강기태는 저들과 다르게 선량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사기를 치고 도둑질을 해서 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하면서도 모두가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필자 역시 결코 선량한 사람은 아니다.


아무튼 급조한 드라마라는 티가 여기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분명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임에도 정작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경은 4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기태의 집과 원래 빛나라기획의 사무실, 빅토리아의 대기실, 송미진과 노상택과 조명국의 사무실, 사람을 끌고와 폭행과 협박을 가하던 창고 역시 의자 하나까지 너무 똑같이 닮아 있다. 그나마 추가된 것이라면 차수혁의 사무실과 유채영의 새로운 가게, 그리고 이정혜의 집 정도일까? 같은 장소만을 반복한다. 몇몇 제한된 장소를 통해 인물들이 마주치며 그들의 대사를 통해 모든 사건이 준비되고 전개되고 해결된다. 아마 더 다양한 배경이나, 그같은 배경을 필요로 하는 사건이란 처음부터 준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다양하게 사건을 전개하고 그를 통해 이야기를 마무리짓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제약이 있다. 허용가능한 범위 안에서 이제까지의 전개된 이야기를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얼굴을 마주하고서 말로써 모든 일들을 풀어가야 한다.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이면에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다. 정작 강기태가 꾸민 것은 별로 없이 말 몇 마디로 그 모든 것은 완결되어지고 만다.


조명국이 파멸했으니 이제는 장철환 차례다. 차수혁의 차례에는 이정혜와 강기태의 동생 강명희(신다은 분)이 개입하게 될 것이다. 서로 엇갈리게 된다. 조태수와 이혜빈(나르샤 분), 최성원(이세창 분) 사이의 삼각관계도 흥미롭다. 최성원이 일방적으로 잡혀사는 것 같더니만 의외로 최성원도 순정파다. 극중 무대에서 보여지는 가수로서의 나르샤의 모습도 매력적이다. 신군부가 정권을 잡는 과정에 강기태와 그의 주위에서 겪게 될 사건들이 관심을 자아낸다. 그것은 또한 강기태와 그 주위의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확실히 방향을 잃었다. 잃었다기에도 너무 멀리 왔다. 노상택도 강기태와 라이벌이 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단순한 단역이 되어 버렸다. 조명국도 너무 쉽다. 장철환도 너무 쉽게 넘어간다. 차수혁은 아니리라 기대해 본다. 전광렬과 김병기의 연기가 드라마의 중심을 확실히 잡아준다. 두 사람이 등장하는 순간의 아우라가 다르다. 전광렬은 미쳐 있고 김병기는 독사를 품고 있다.


마침내 강기태가 순양극장을 되찾았다. 이정혜가 출연하는 영화마저 그 권리를 인수하고 있다. 복수는 가속된다. 인연이 얽힌다. 기대한다. 많은 아쉬움이 있다. 재미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