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 고소공포증보다 무서운 시월드, 고난이 시작되다.

까칠부 2012. 4. 9. 09:14

공자가 어느날 산길을 가다가 문득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을 호랑이에게 잃고 이제 하나 남은 아들까지 잃었다며 서럽게 울고 있던 여인에게 공자는 공자는 그렇게 물었다. 어째서 다른 안전한 곳을 놔두고 이런 위험한 곳에서 살고 있는가?


여인은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백성을 괴롭히는 관리도, 감당할 수 없는 높은 세금도 없다."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하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의 유래다.


고소공포증에도 불구하고 놀이기구에 올라탄 여성이 있다. 고소공포증이 아니더라도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상당한 담력을 요구하는 놀이기구였다.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 놀이기구의 안전바를 내리려는 그 여성에게 누군가 그렇게 물었다.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선배 고소공포증 있잖아요?"


그러자 여성은 대답했다.


"고소공포증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시월드, 시댁월드..."


어떻게 해서든 일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 해야만 했다. 아니면 시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일을 쉬거나 하게 되면 꼼짝없이 시어머니에게 붙잡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무슨 일이든 어떤 어려움이든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사실 그렇게 시집살이를 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 시어머니 엄청애(윤여정 분)에게는 며느리 차윤희(김남주 분)가 어렵다. 그나마 아들 방귀남(유준상 분)과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확실한 혈연관계가 있다. 30년이라는 긴 시간적 공백에도 불구하고 피의 이끌림으로 얼마든지 그 어색함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30년만에 찾은 아들의 며느리 차윤희는 단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을 뿐이 전혀 남남이다. 아들과 결혼하기까지 적응기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들과 함께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앞집 새댁에서 며느리가 되어 나타났다.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다. 다투기도 여러번 다투었다. 서로에 대한 안좋은 말도 여러차례 주위사람들에 하고 있었다. 그것이 또 미안하다.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던 이웃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되었다. 며느리인 차윤희야 당연히 시어머니인 엄청애가 불편하지만 엄청애 입장에서도 느닷없이 나타난 차윤희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마냥 내사람이다 싶기에는 아직 서로가 너무 낯설고, 그렇다고 타인으로 거리를 두기에는 30년만에 겨우 찾은 아들의 며느리다. 더 큰 꿈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려던 것을 마음을 돌린 것은 고맙지만 역시 마음에 안드는 것 투성이다. 이래저래 도무지 어떻게 대해야 할 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마냥 시어머니로서 잘해주어야겠다.


문제는 그조차도 며느리된 입장에서 결코 달갑지 않다는 것일 게다. 자기만의 공간이다. 자기만의 시간이다. 이제껏 방귀남과 차윤희 자신만이 머물던 그들만의 시간과 공간이다. 그곳을 다른 사람이 침범하려 한다. 방귀남에게야 엄청애와 그 가족들은 그의 오래전 잃어버렸던 혈연이었다. 그러나 차윤희에게 시댁식구란 방귀남이 긴 세월만에 겨우 다시찾은 가족에 불과하다. 남편을 사랑하기에 그들 또한 애정을 가져보려 하지만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침을 같이 먹는 것은 물론 시시때때로 그녀의 집을 찾아와 그녀의 삶속에 개입하려 한다.


굳이 시집살이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 사춘기의 아이들은 부모가 자기 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보고 만지고 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었다. 자기만의 공간이다. 자기만의 삶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려 한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는 그래도 품안의 자식이다. 다시 찾은 아들이기에 방귀남 역시 엄청애에게 품안의 자식이다. 그리고 이미 방귀남과 차윤희는 독립하여 자기들만의 가정을 꾸리고 자기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차라리 차윤희가 보이는 겉모습처럼 영악하고 이기적인 인물이었다면. 시부모따위 상관없다. 시댁식구따위 전혀 상관없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녀는 이미 남편 방귀남의 사랑에 감복하여 그를 위해 스스로 양보를 선택한 터다. 거절하기에는 늦었다. 거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시어머니이기에 어쩔 수 없이 며느리로서 져주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도망치려한다. 자신의 집 현관 비밀번호를 물어오는 어머니로부터. 밑반찬을 챙겨주고자 선의로 비밀번호를 물어오는 시어머니로부터. 이제 비밀번호까지 알게 되면 시어머니와의 사이가 어떻게 발전하게 될 지 모른다.


너무나 당연하다. 어머니로서 아들의 집에 들어가는 것도,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의 냉장고를 열어보는 것도, 하지만 며느리의 입장에서 그것은 당연하지 않다.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다. 그다지 지독스럽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것이 불편해서 차윤희는 도망치고 만다. 시어머니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고소공포증따위 무시하고 놀이기구에 오를 수 있다.


결국은 모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만든 원죄일 것이다. 당장 차윤희의 친정어머니 한만희(김영란 분)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어머니가 시집살이하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항상 보며 자라왔다. 이제는 한만희가 며느리 민지영(진경 분)을 시집살이시키고 있다. 그녀의 주위에도 항상 시집살이의 고충을 털어놓는 며느리들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시부모인데 시부모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안좋다. 오죽하면 능력있는 고아가 이상형이라 했겠는가? 시집살이만 피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아마 가장 간명하게 고부갈등에 대해 정의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며느리가 갖는 근원적 공포. 그럼에도 여전히 선의로 배려하며 묻고 있는 시어머니 엄청애에 대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시집과 거리를 두려는 많은 며느리들의 욕구와 바람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그 간절함이 드라마의 비극을 극대화한다. 스스로 자청해 스스로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상황을 초래하고 만 차윤희에 대한 짓궂은 웃음 만큼이나. 똑부러지는 영리한 그녀인 터라 그녀가 겪는 비극들이 우스꽝스럽고 재미있기만 하다. 마냥 재미있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웃는다.


어떻게 그들은 서로 화해할 수 있게 되려는가. 결국은 서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서로의 다른 입장을 조금씩 알아가며 이해해가는 수밖에 없다. 엄청애의 천진할 정도의 당연하기만 한 모습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차윤희가 그토록 꺼려하는 모습들이 단지 꺼려하기만 할 것이 아님을. 갈등은 더 깊어져야 한다. 골이 패이고 균열이 일어야 그 위에 새살을 돕는다.


이숙(조윤희 분)과 천재용(이희준 분)의 로맨스가 점입가경을 더한다. 맞선까지 보게 되었다. 오해가 깊어지고 오해가 깊어지는 만큼 진실이 밝혀졌을 때 당황하는 것도 커진다. 그동안 천재용이 기가 죽었다면 이제는 이숙이 기가 죽을 차례다. 일진일퇴 공방을 이어간다.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깊어가고 그런 가운데 서로의 존재가 깊숙이 새겨진다.


실패한 결혼이 어쩌면 일숙(양정아 분)으로 하여금 오래전 오빠를 꿈꾸게 만든 것이 아닐까? 그동안도 그녀는 오빠 윤빈(김원준 분)의 팬이었을까? 윤빈의 뻔한 거짓말에도 그녀는 꿈에서 깨는 것을 거부하며 그대로 믿어버리고 만다. 진심이거나 아니면 진심이라 여길 정도로 철저한 거짓말이거나.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윤빈은 그녀에게 위로와 휴식을 줄 수 있을까?


말숙(오연서 분)은 너무나 확실해 보이던 정답이 사실은 정답이 아닐 수 있음에 당황하는 모범생같다. 너무 자신감이 넘쳤다. 너무 남자를 잘 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자기 예상과 다르게 접근하는 차세광(강민혁 분)의 방식에 여지없이 흔들리고 만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마냥 자기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 전혀 알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들고 만다. 다른 이유에서 서로 만나게 된 이 두 남녀의 앞날은 어떻게 펼쳐질까. 분명한 것은 차윤희에게 차세광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말숙의 서툴과 어색한 사랑을 기대해 본다.


너무나 올곧은 성격이라 방귀남이 장차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해서도 예감해 본다. 가족이 필요할 것이다. 방귀남이 힘들고 외로울 때 아내 차윤희가 그의 곁을 지킨다.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다시 찾은 가족들이 그를 지탱하고 위로해준다. 그는 운이 좋다. 그밖에도 미국에도 그를 길러준 부모와 함께 자란 다른 많은 형제들이 있다. 다만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두 사람의 갈등을 어떻게 중간에서 조율하며 해결해나갈 것인가. 착한 것이 지나치면 답답해 보인다. 다행히 방귀남은 착하면서도 할 말 다하는 소직한 성격이다.


차윤희의 친정분위기가 참으로 깨알같다. 시숙 방정배(김상호 분)의 아들 장수가 올케 민지영의 학생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좁다. 드라마적 선택이다. 범위를 좁힘으로써 관계와 사건을 집중한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은 주말드라마이기에 범위를 넓히면 산만할 수 있다. 단정하게 고개를 저으며 내뱉는 민지영의 모순된 말들이 현실의 그늘과 그럼에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설움을 보여준다. 공교육에 종사하면서 받은 월급을 사교육에 쏟아붓는다. 참 현실적인 캐릭터다.


자초한 고난이다. 바로 후회하고 말 선택이다. 스스로 지옥문을 열었다. 지옥문을 피해 차라리 고소공포증을 택한다. 아마 남자로서 그다지 공감가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느끼는 연민과 약간은 악의가 섞인 통쾌함이 있다. 재미있어진다. 더 재미있어지고 있다. 동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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