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사람들이 그렇게 본 것일까? 아니면 차수혁(이필모 분) 자신이 그렇게 느낀 것일까? 자격지심이란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스스로 하찮다 비천하다 여기기에 모두가 그렇게 여기는 것처럼 여겨진다. 괜한 분노와 원망이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고 만다.
하기는 누구나 하나씩은 그같은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다. 괜하게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지는 않는가. 멸시하지는 않는다. 어디서 안좋은 소리를 주고받지는 않는가. 안 좋은 일을 꾸미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후회막심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약한 부분이다.
그래서 껍질을 뒤집어썼다. 위선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위악의 갑주로 둘렀다. 그런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 보이지 않으려. 그가 과거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장철환(전광렬 분)을 쫓아 강기태(안재욱 분)의 아버지 강만식을 배신한 것도 마찬가지다. 장철환을 배신하는 장면에서 그는 그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한 꺼풀 벗기고 나면 여전히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아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울음과도 같다. 이정혜(남상미 분)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모습이 마치 울고 있는 아이와도 같다. 그래서 이정혜는 그를 연민한다. 그래서 차수혁은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제 다시 이정혜는 강기태에게로 돌아가려 한다. 그 강기태에게로. 강기태는 여전히 도련님이며 자신은 강기태의 집 식모의 아들이다. 아니라 우기고 싶어도 그것이 현실이다. 차라리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를 딛고 일어서려 할 수 있었으면.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속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더더욱이다. 단지 잠시 시간을 속이고 멈출 뿐이다. 언제고 다시 시간이 흐르게 된다면 미뤄두었던 그것이 오히려 더 거세가 자신을 휩쓸게 된다. 원하지 않더라도 그를 등떠밀게 된다. 차수혁이 이제까지보다도 더 독하고 악랄해질 것은 기대하는 이유다. 그가 자신의 본모습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강했다면 여지까지 오지도 않았다. 차수혁은 드라마속 누구보다 약한 한심한 군상이다.
드라마의 내용은 더 이상 없다. 조명국(이종원 분)은 건달들을 동원해 순양극장에서 영화시사회중인 강기태를 습격하려다 조태수가 앞을 막아서자 지레 겁먹고 도망치고 만다. 이제 더 이상 조명국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그가 소유한 영화사와 기획사에는 더 이상 제작할 영화도 활동중인 연인도 없다. 그저 소리치며 발버둥치는 것 뿐. 그리고 장철환은 강기태의 의도대로 차수혁과 대립하며 강기태가 복수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고 있다. 아직까지 장철환이 강기태나 유채영(손담비 분)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한 번은 위기가 찾아올까?
신정구(성지루 분)와 함께 순양극장 시사회 공연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노상택(안길강 분)을 보니 짠한 마음마저 든다. 그래도 한때는 강기태와 겨루던 라이벌이었을 텐데. 한참 위에서 힘으로 강기태를 찍어누르려던 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노상택이 강기태를 위해서 시사회의 공연 사회까지 본다. 독기는 모두 빠지고 이제는 아예 코미디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조태수 역시 이혜빈(나르샤 분)에 이어 지혜(홍진영 분)까지 카사노바에 개그캐릭터로 자리잡고 말았다. 한때 사시미칼로 밤거리의 질서를 허물던 전국구주먹 조태수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는지.
다행히 유채영이 X양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유신과 신군부의 차이일 것이다. 유신치하에서 최고권력자에게는 안방이 비어 있었다. 반면 신군부의 최고권력자는 처가로부터 신세를 많이 진 처지였다. 안방의 위세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권력을 쥐고 있다고 마음대로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그래서 더 돈욕심을 그리 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더 많이 죽였다. 하필 그 안방의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유채영은 위기를 넘기고 만다. 그래도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이제 유채영은 이정혜와 라이벌이지조차 못하다. 미현(김규리 분)은 왜 출연했는가 모르겠다.
하여튼 파장분위기라는 게 이렇게 서운하고 어수선하다. 원래는 한창 고조시키다가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정석일 텐데 <빛과 그림자>는 50주년특별기획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어울리게 그런 점에서 남다르다. 벌써부터 슬금슬금 정리하는 분위기다. 몇 주 되었다.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보다는 시청자 자신도 끝을 예감하고 대비한다. 드라마는 이미 끝나 있다. 끝나는 과정일 뿐이다.
차수혁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바닥을 드러냈다면 남은 것은 파멸 뿐이다. 드라마의 세계는 현실보다 더 냉정하다. 바닥을 드러냈으면 반등하거나 아니면 영영 추락할 뿐이다. 조명국도 가고, 차수혁도 이제 갈 테고, 남은 것은 장철환일가? 기대도 없다. 지켜본다. 조금은 허무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79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도의 남자 - 한지원의 원망과 죄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이장일의 선택... (0) | 2012.05.03 |
---|---|
패션왕 - 하필 제목이 '패션왕'인 이유... (0) | 2012.05.02 |
사랑비 - 진부함과 지루함, 참신한 의도가 참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음을 알다. (0) | 2012.05.02 |
패션왕 - 이가영의 고백과 성장통, 젊음이란 아프고 외롭다. (0) | 2012.05.02 |
빛과 그림자 - 그 터무니없는 소문이 현실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죠. (0) | 2012.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