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빛과 그림자 - 그 터무니없는 소문이 현실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죠.

까칠부 2012. 5. 1. 10:42

과거 사업을 잘한다는 것은 좋은 물건을 잘 만들어 잘 파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차피 한국경제 자체가 취약했다. 자본도 기술도 보잘것 없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대신해 기업을 지탱해주던 것이 다름아닌 정치권력이었다. 흔히 정경유착이라 불리는 그것이다.


권력은 기업의 뒤를 봐준다. 기업은 권력에 현실적 도움을 준다. 더구나 특정한 개인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시절이라 권력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지금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국회가 견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론이 사실을 밝히고 비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민사회 역시 서슬퍼렇던 군사정권 아래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괜히 나섰다가는 빨갱이로 몰려 사회로부터 매장되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는데 해 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지만 그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양날의 칼이었다. 기업을 살릴 수 있다면 기업을 죽일 수도 있다. 작은 사업체를 큰 기업으로 키워낼 수 있다면 큰 기업도 한 순간에 망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많은 기업들이 독재정권 아래에서 권력자의 의지에 의해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불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권력에 아부해야 했고, 그렇게 떨어진 눈먼 혜택들은 기업이 당연히 가져야 할 기업가정신마저 흐트리고 말았다. 좋은 물건 잘 만들고 잘 팔아서가 아니라 얼마나 권력의 눈에 드는가가 기업의 흥망을 좌지우지한다.


원래는 주주들에게 돌았어야 했을 이익이었다.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의 댓가로 지불되어야 했을 돈이었다. 장차 먼 미래를 보고 투자되어야 했을 자본이었다. 그렇게 받아챙기고 남은 비자금이 무려 수천억이었다. 80년대 수천억이면 지금은 조단위를 훌쩍 넘어선다. 그러고도 경제가 제대로 돌아갔다면 그것이 미친 것이다. 은행에서 특혜대출을 받아 정부의 비호 아래 노동자를 착취하며 손쉽게 땅장사를 했다. 


기술이야 외국에서 돈주고 사오면 되는 것이다. 돈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도 되고, 대출받은 돈으로 땅장사를 하면 더욱 쉽게 벌린다. 그보다는 외형에 신경썼다. 문어발이라는 말이 그때 나왔다. 그렇게 내실 없이 외형만 키우다 부실화된 결과가 바로 IMF였다. 빚으로 규모만 키우고 그 내실을 갖추지 못했으니 무너지고 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많은 기업이 무너졌고 많은 기업이 공적자금의 도움으로 겨우 생명을 이어갔다. 지금 살아남은 기업들은 모두가 기업의 기본인 기술과 경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그런 기업들이다.


지금이야 얼마나 좋은가? 물건만 좋으면 팔린다. 장사만 잘하면 얼마든지 막대한 이익을 누릴 수 있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이 기업의 눈치를 본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기업하기 좋은 사회란 가장 민주화된 사회다. 가장 자유로운 사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권력과 야합한 기업에게 있어서는 그때보다 좋은 시절은 없었을 것이다.


당장 더 이상 정치자금을 내다가는 기업이 망할 것 같다는데도 정치자금을 더 내라 협박을 하고. 그러면서 실정법을 위반한 위법행위에 대해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다며 거래를 한다. 차수혁(이필모 분) 자신도 그래서 말하고 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나라 대한민국이라고. 아마 강기태(안재욱 분)가 몸담고 있는 연예계까지 디테일하게 그렸다면 더 말도 안되는 일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을 텐데. 그런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아무튼 과연 권력의 속성이라 할 것이다. 자유당이 공화당이 되고 공화당이 민정당이 되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에는 친일파가 있었고, 구한말에는 이리저리 외세를 따라 이합집산하던 기회주의자의 무리가 있었으며, 그 전에는 권력과 야합하던 모리배들이 있었다. 의로운 사람은 죽는다. 고집센 사람은 일찍 죽는다. 정의를 앞세워 고집을 부린다면 자신은 물론 일가친척마저 화를 면하지 못한다. 살아남는 것은 보다 일찍 현실을 깨닫고 그에 맞춰가는 사람들 뿐이다. 강기태에게 이익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를 위해 웃어줄 수 있다.


차수혁은 정치인감이 아니다. 차수혁과 같은 인물은 절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호불호가 명확하다. 전선이 분명하다. 적과 아군이 분명하면 타협이 불가능하다. 타협이 불가능하다면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한다. 강기태로 하여금 장철환(전광렬 분)을 이용해 자기를 죽이려 나서도록 빌미를 준 것도 차수혁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장철환은 이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과거의 원한을 뒤로 하고 강기태와 손잡을 수 있다. 물론 당장에 다른 이익이 주어진다면 그는 다시 차수혁과 손잡고 강기태와 적대할 것이다. 정치인이 살아남는 법이다.


오히려 차수혁보다는 강기태가 더 정치에 어울린다. 원수인 장철환과도 손을 잡는다. 장철환을 통해 권력에 접근한다. 자신이 소유한 빛나라기획조차 그 수단으로 삼는다. 심지어 차수혁과 적대하면서도 충분한 명분이 쌓일 때까지 자신을 감추는 신중함까지 보이고 있다. 장철환이 그동안 강기태에 호감을 보인 이유였다. 강기태와 적대하면서도 장철환은 강기태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강기태는 장철환과 닮았다. 차수혁이 장기태를 의식하며 열등감을 갖는 이유다.


복수의 완성에 다가간다. 장철환이 마침내 자신이 몰락한 원인을 알았다. 차수혁에게 칼을 간다. 그 칼의 손잡이를 강기태가 쥔다. 장철환과 차수혁이 싸우게 될 것이다. 장철환과 강기태로 인해 다급해진 차수혁은 무리수를 두어가며 그에 맞서려 한다. 그동안 최소한의 모양새는 갖추려 애쓰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조명국(이종원 분)이 폭력배를 동원해 강기태를 방해하려는 것마저 용납하고 만다. 순수한 사람은 쉽게 더럽혀진다. 차수혁의 몰락이 그의 타락만큼이나 애처롭다. 강기태는 그 와중에 조명국의 것이었을 아버지의 극장에서 조명국이 만들던 이정혜(남상미 분)의 영화를 걸려 한다.


아마 상징적일 것이다. 원래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순양극단에서 열렸던 빛나라쇼단의 공연이었다. 이정혜가 그 오프닝무대에 올랐고, 유채영(손담비 분)과 최성원(이세창 분)이 그 메인을 장식했다. 그때 처음으로 강기태는 쇼단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쇼비즈니스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장철환의 악의가 그를 구속하여 감옥에 보냈다. 신정구는 강기태를 배신하고 장철환의 협박에 못이겨 도망쳐야 했다. 그것이 벌써 오래전이다. 그에 비하면 순양극장의 주변 풍경이 너무 변화가 없는 것이 순양만 시대의 변화에서 뒤떨어진 듯 보인다. 모든 것이 시작이었듯 그것은 모든 것의 끝이 될까?


양념은 최대한 배제한다. 갈 길이 바쁘다. 신정구와 순애(조미령 분)의 신파는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치러야 했을 과정이다. 이 둘 사이를 일단 정리하지 않고는 끝낼 수 없다. 조태수(김뢰하 분)와 이혜빈(나르샤 분) 사이에 새로운 라이벌이 등장한 것 같지만 이 또한 사소하다. 송미진(이휘향 분) 사장의 조카 미현(김규리 분)은 거의 나레이터 수준이다. 강기태의 동생 강명희(신다은 분)도 그다지 분량이 없다. 오로지 강기태와 장철환, 차수혁, 조명국에게만 집중한다. 그조차 조명국은 이미 아웃이다. 급박해지며 긴장도 높아진다.


배경도 다양해졌다. 나오는 인물도 많아졌다. 그러면서도 중심이 분명하다. 무엇을 보고 기대할 것인가가 보다 명확해졌다. 막바지에 이르러 비로소 드라마다워졌다. 초반의 치밀함이나 스케일, 아기자기함 등에 비하면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의 실망스럽던 모습들에 비하면 한결 나아진 듯한 모습이다. 아쉽다면 너무 서두르다 보니 정작 주인공인 강기태마저 캐릭터를 잃어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랄까? 일상의 이야기가 배제되며 사건을 주도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존재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항상 모든 것을 만족하며 볼 수 있는 드라마란 드문 법이다.


이정혜의 선택이 흥미롭다. 결국 그녀는 차수혁을 외면한다. 그것이 더욱 차수혁을 궁지로 몬다. 외외로 강하다. 강한데 존재감이 없다. 바위와도 같다. 항상 그 자리에서 마모될 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답답할 정도로 조용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모든 사건의 중심에 그녀가 있다. 차수혁과 강기태가 그녀를 통해 얽힌다. 과연 남성드라마라고나 할까? 차수혁이든 강기태든 승자가 미녀를 차지한다. 과거 차수혁이 강기태보다 우위에 있었다면 지급은 입장이 역전되어 있다. 강기태의 승리를 이정혜가 보여준다.


어쨌거나 짧지만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말도 안된다면서도 태연히 그 말도 안되는 짓을 강요하는 차수혁이나, 검찰로써 그같은 행위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안도성(공정환 분)이나. 그것이 상식이던 시대였다.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차수혁도 이상하지 않다.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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