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패션왕 - 이가영의 고백과 성장통, 젊음이란 아프고 외롭다.

까칠부 2012. 5. 2. 09:25

세계는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입체로 점차 확장되어간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아기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장년으로, 그리고 노인으로... 넓어지고 깊어지고 그늘이 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깊은 그늘을 갖는다는 뜻이다.


평생 함께 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다. 강영걸(유아인 분)이나 이가영(신세경 분)이나. 그래서 그토록 서로 상처주며 응석을 부렸던 것이리라. 당연하다는 듯 강영걸은 이가영을 부러 무시하고, 이가영은 그런 강영걸을 떠난다.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떠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떠나고 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비장한 고백이었다. 아름다운 사랑고백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이대로 놓아버리고 싶지 않다. 이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떠나고 싶지 않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이다. 더 이상의 기회란 없다. 불안과 초조, 그리고 두려움, 하지만 그만큼 절박하다. 간절함이 이가영의 등을 떠민다. 기약없는 고백이다. 믿음이 남아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고백이다. 그래서 그녀는 고백하면서도 운다. 이제껏 감춰왔던 마음을 전하면서도 마냥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 진정 마지막이라는 듯.


그녀는 앓고 만다. 성장통이다. 조순희(장미희 분)로부터 벗어나 세상에 나왔을 때 그는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준 그녀의 첫사람이었다. 가족이었고 연인이었다. 아빠였고 오빠였고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 정확히는 내쫓기고 만다. 자신의 잘못으로. 작은 오해에서 비롯된 엇갈림으로. 자신을 질책한다. 원망하기보다는 그것이 그녀에게는 더 편하다. 자기를 탓하며 자기에게 원망을 돌린다. 후회하며 상처입힌다. 미련이 독이 되어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강영걸로부터 끝내 거절당하고 홀로 외로이 앓아누운 그녀의 곁을 하필 정재혁(이제훈 분)이 지킨다.


이룰 수 없는 사랑과 당장 곁에서 손을 내밀어주는 누군가. 더구나 그는 그녀를 무척이나 필요로 한다. 아마 상징적이었을 것이다. 정재혁에게 식사초대를 받고 그의 집을 찾아가서 이가영은 묻는다. 무어라도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자기가 한 초대이고 자기가 준비하는 요리지만 정재혁은 기꺼이 그같은 이가영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강영걸은 한 번도 그녀에게 도와달라 말한 적이 없었다. 만일 이가영이 정재혁에게 이끌리게 된다면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정재혁이 진정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그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정재혁과 함께 있으면 이가영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무척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강영걸도 애처롭기는 마찬가지다. 강영걸이라고 이가영에 대한 미련이 없을까? 새로운 브랜드네임 GG는 역시 YGM과 마찬가지로 강영걸과 이가영의 이름에서 이니셜을 따온 것일 게다. 굳이 그것을 정재혁 앞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 최안나(유리 분)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는 경영자다. 영영어패럴의 사장이다. 과거 이가영에게 상처입히던 그때처럼 그는 사장으로서 회사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가영인가? 아니면 최안나인가? 최안나가 거부한다면 강영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세계유수의 명품브랜드와 국내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한 그녀의 경험은 아직 걸음마단계인 영영어패럴에 무엇보다 필요하다. 


오해가 아니었다. 출발은 오해였지만 어느새 서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서로가 떠나 있는 사이 서로의 빈자리가 다른 사람에 의해 채워졌다. 강영걸도 이가영을 믿는다. 이가영이 전한 진심을 믿는다. 하지만 이가영의 곁에는 이미 정재혁이 있다. 자기가 선물한 옷을 입고 정재혁의 초대에 응했다. 그리고 자기는 최안나와 함께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었다. 서로의 거리를 확인한다. 이가영이 쫓기듯 강영걸에게 진심을 전한 것처럼 그 또한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그의 곁에는 최안나가 있다. 같은 상처를 안은 동지다. 그녀를 필요로 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이별이었을 것이다. 이가영은 자기를 필요로 하는 상대를 찾는다. 강영걸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상대만을 원한다. 서로 마음이 이어진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을 놓았다. 그래서 마음놓고 서로를 대했다. 첫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다. 그것이 서로에게 상처입히고 말았다. 이가영은 강영걸의 필요를 모두 채워주지 못했고, 강영걸은 이가영이 있을 자리를 온전히 만들어주지 못했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조금만 작았다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만 부족했다면. 하지만 세상에는 헤어지고 싶어서 헤어지는 연인만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식은 채 허무하게 끝나고 만 정재혁과 최안나 커플에 비해 여전히 서로를 원하면서도 함께 할 수 없는 강영걸과 이가영 커플이 그래서 대비된다. 정재혁은 여전히 이가영으로부터 사랑을 갈구하고, 최안나는 아직도 끝나버린 사랑의 상처를 곱씹는다. 이가영은 마지막 순간 솔직해질 수 있었지만 강영걸은 마지막 순간에조차 솔직해지지 못한다. 하필 정재혁과 이가영이, 그리고 강영걸과 최안나가 서로의 빈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 공교롭다.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두 사람은 사랑을 원하고 두 사람은 상처를 곱씹는다. 어쩌면 정재혁과 이가영보다 더 간절한 것이 그래서 강영걸과 최안나일지도 모르겠다.


포기를 배우게 된다. 좌절을 배운다. 절망을 배운다. 지혜라는 것이다. 세상 일이란 원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간절히 원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도저히 안되는 것들이 있다. 서로 깊이 원하는데도 끝내 헤어지는 연인이 있다. 아무리 정재혁이 노력해도 결국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것은 강영걸이다. 그토록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 온 자기 대신 강영걸을 칭찬하며 그와 가까이 어울리라 말한다. 정재혁에게는 아버지지만 강영걸에게는 단지 경쟁업체의 사장일 뿐이다. 지금까지는 정재혁이 우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강영걸이 우위에 있다. 이가영도 그렇고 도대체 강영걸과 엮여서 좌절과 열등감만 커질 뿐이다.


그래서 외롭다. 사람의 그림자란 고독의 그림자다. 자신만만하다. 일직선이고 평면이다. 한 방향으로만 가면 되고, 한 눈에 모든 것이 비쳐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뒤가 있다. 직선이라 여기던 것이 현실과 만나 멋대로 휘며 자기 의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자기 것이란 없다. 자신의 몫이란 없다. 강영걸도, 이가영도, 정재혁도, 최안나도. 강영걸로 인해 상심한 마음을 술로 달랜 이가영의 자는 모습이 쓸쓸하다. 자신의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 있음에도 그녀의 곁에 자기의 자리가 없음을 알기에 지켜보는 정재혁의 눈빛도 스산하다. 이가영이 없는 자리를 인형으로 대신해야 하는 강영걸 또한 마찬가지다. 최안나는 이미 그같은 외로움에 익숙하다. 


외로움에 서로를 원하고, 외로움에 다시 서로를 상처입힌다. 상처로 인해 다시 서로를 원하며, 그 상처를 위해 서로에게서 위로를 구한다. 네 남녀가 서로 얽히게 되는 이유다. 단지 이들 네 남녀 뿐일까?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같은 이유로 술에 취해 쓰러져 누운 남녀가 있을 것이다. 서로를 원망하며 원망으로 자기를 상처입히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울고 웃고 화내고 애원하며 폭풍같은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앓아누운 이도 있다. 애써 독하게 외면하려는 이도 있다. 아직 열정이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젊다. 감당할 수 없는 열기가 자신을 상처입힌다.


조순희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그녀의 딸 신정아(한유이 분)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 얽혀있는 것이 없다. 그들은 타인이다. 악역이 따로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악역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주인공이 된다. 그들은 닮았다. 강영걸과도 정재혁과도 이가영과도 최안나와도 닮았다. 삶이란 그렇게 한심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한심하고 비참한 것이다. 과연 그들에게도 밝은 날은 찾아올 것인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빛도 있다는 뜻이다. 정재혁은 이가영이라는 빛을 찾았다. 정재혁의 캐릭터에 대한 호감이 높다. 다른 젊음들은? 그들은 빛을 찾을 수 있을까?


설명이 부족했다. 그보다는 너무 엉뚱했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통해 보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니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고는 있었어야 했다. 제목만 패션왕이지 패션업계와는 상관이 없다. 패션디자이너라는 전문직과도 패션업계라는 기업의 이야기와도 전혀 상관없다. 물론 아주 약간은 연관이 있다. 하지만 그 주된 내용은 오로지 패션과 업계를 배경으로 하는 네 남녀의 엇갈린 욕망과 감정에 있을 것이다. 수많은 시대의 군상을 서늘할 정도로 짙은 그늘 아래 그려 보인다. 


멋지지 않아서 좋다. 대단하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 그래서 재미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굳이 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TV 앞에서 고단한 삶과 마주한다. 고단한 삶에 지친 한심한 군상들을 보게 된다. 그래도 모두는 믿고 싶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게 아니다. 삶이란 보다 아름답고 보다 명쾌한 것일 터다. 저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로서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는가. 오락드라마로서 시청자들에게 진정으로 기쁨을 주고 있는가?


강영걸이 마침내 정재혁의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짜릿한 성취감따위는 없다. 오히려 더 시린 고독과 절망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뭐 이런 드라마가 있는가? 현실이 그렇다. 하지만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다. 기쁨을 누리고 싶다. 드라마를 통해서도 현실에서 얻지 못할 만족을 얻고 싶다. 더구나 유아인과 신세경, 정재혁, 유리 모두 매력적인 배우들이다.


물론 단순히 그같은 의도가 대중의 취향과 맞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바로 기술이다. 기술이 곧 실력이다. 충분히 대중을 설득하지 못했다. 대본이며 연출이며 대중의 요구를 이해하고 작품의 의도를 이해시키는데 실패하고 있었다. 작가와 감독의 한계다. 유리를 제외하고 배우들은 훌륭하다. 말했듯 무척 매력적인 배우들이다. 이것은 오락드라마다.


도저히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게 서로의 감정이 얽힌다. 서로의 생각이 꼬인다. 관계가 엇갈린다. 도대체 이 모든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벌써 많이 달려왔다.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연장은 어림도 없을 테고 어떻게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마무리지을 것인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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