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했다. 그만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기분좋게 웃어 본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더구나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웃어 본 것이 정말 오랜만이지 싶다. 바로 이것이었다.
다른 말이 필요없다. 바로 이거다. 아무래도 임신한 며느리가 걱정된다. 며느리가 임신한 아이가 걱정된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일을 그만두게 하려 시어머니와 시할머니가 계획을 꾸몄다. 모르는 척 은근슬쩍 임신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 일을 그만두게 하자. 하지만 며느리 또한 가족이었다.
설마 며느리 차윤희(김남주 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시어머니 엄청애(윤여정 분)도 시할머니(강부자 분)또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막연히 무언가 드라마를 만드는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는 채였다. 그런데 정작 며느리로 하여금 일을 그만두게 하려 찾은 그녀의 직장에서 그녀가 하는 일들에 대해 알게 된다. 그 중요성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며느리 차윤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자신들도 알 것 같기에 결코 며느리로 하여금 그것을 포기하게끔 만들고 싶지는 않다.
아니 이미 이전에 복선은 있었다. 딸이자 손녀인 방일숙(양정아 분)을 앞에 두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녀를 며느리 차윤희와 비교하고 있었다. 야무지다. 능력있다. 비록 시할머니이고 시어머니인 입장에서 아쉽다거나 서운한 일이 적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자신들의 며느리에 대해 이미 십분 인정하고 있었다. 얄미운 올케를 모함하려는 의도로 시작된 방말숙(오연서 분)의 험담에 대해서도 화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감탄하는 기색이다. 역시 바깥일을 하니 머리쓰는 게 다르다. 하기는 자신들도 집안에만 갇혀 사는 여자로서의 삶에 회의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당당히 자기 일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일이란 단순히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닌 인간의 근원적인 존엄을 지키는 가장 적극적인 수단인 것이다.
그래서 정작 며느리가 임신하고 일을 계속하는 것을 반대하던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일을 지켜주려 나서고 있다. 시할머니마저도 그에 동조하고 있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 내 며느리도 내가 지킨다. 일을 그만두게 하려던 것도 며느리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며느리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며느리를 큰 곤란에 빠뜨릴 수는 없다. 그것은 별개다. 결국 임신을 하고서도 일을 계속 하고자 하는 여성에게 있어 - 아니 임신이 아니더라도 일을 하는 여성들에게 있어 가장 큰 아군은 같은 여성인 가족이 아니겠는가? 가족이야 말로 그들의 가장 큰 우군이 되어야 할 터다.
심각하지 않다. 진지하지도 비장하지도 않다. 돌발적이다. 충동적이다. 전혀 계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순수하고 솔직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며느리와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자신들의 욕심인가? 아니면 며느리 자신의 꿈과 행복인가? 다만 이후 차윤희가 계속 자신의 일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주게 될 것인가?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이제까지 드라마 가운데 가장 기분좋은 반전이 아닐까?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화해를 말한다. 항상 화해와 포용을 말한다. 용서를 말한다. 단지 실수였다. 그럴 수 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문득 무심코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아직 방귀남(유준상 분)이 버스에 타고 있는 채였더라. 그래서 뒤늦게 찾으려 애써보는데 전혀 찾을 수 없더라. 유산을 하고 충격에 방심을 했으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그 일이 있고 그녀는 자신의 죄를 씻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방귀남을 잃어버린 것은 둘째작은어머니 장양실(나영희 분) 그녀였지만 거꾸로 방귀남이 사라진 집안을 지탱해 준 것도 장양실 자신이었다. 용서할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방귀남 자신도 혼란스럽지만 충분히 그같은 각오를 다진 듯하다.
문제라면 그런 장양실을 윽박지르며 용서와 화해 자체를 막아버리는 방정훈의 존재일 것이다. 피곤한 것이 싫다. 거추장스러운 것이 싫다. 그는 전혀 장양실을 걱정하지도 배려하지도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입장 뿐이다. 진정 장양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아무런 노력도 의지도 없이 그저 편한대로 장양실의 말에 맞장구쳐줄 뿐이다. 장양실이 진정 바라는 것은 이해와 용서인데 기만과 강압으로써 그것을 막아버린다. 그저 편하게 자신을 속이도록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인정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으로부터도 용서받지 못하고 방귀남으로부터도 용서받지 못한다. 소통부재의 단상을 보게 된다.
무엇이 가족인가? 결국 항상 같은 편이 되어주기에 가족인 것이다.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기에 가족인 것이다. 잘잘못을 따지려 든다면 그것은 가족이 아니다. 자기 욕심만 챙기려 든다면 그것도 가족이 아니다. 그래서 차윤희도 이미 아이를 가진 채로도 일을 계속할 것을 결심한 상태임에도 굳이 시어머니와 시할머니의 뜻을 존중해 가족투표에 붙였던 것이었다. 최소한 시어머니와 시할머니의 뜻을 존중하고 최대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보자.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차윤희는 현명하다. 그녀가 주인공인 이유다. 바로 그녀의 행동에 답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답이 없기로는 방장군(곽동연 분)을 따를 수 없을 것이다. 차세광(강민혁 분)이 두손두발 다 들었다.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모르는 차세광을 바라보는 방정배(김상호 분)의 표정에 얼핏 통쾌함이 스치는 것 같은 것은 어째서일까? 천재용(이희준 분) 역시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직 서툴기만한 감정에 자신에 솔직하지 못한 탓에 자기앞에 다가온 기회마저 날려버린다. 과연 천재용과 방이숙(조윤희 분) 사이에 모두가 바라는 썸씽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절망적인 커플이다. 여전히 방이숙은 첫사랑 규현(강동호 분)에 대한 호감만을 내비치고 있다.
방일숙의 홀로서기를 응원한다. 결국 그것이 문제다. 너는 할 수 없다. 얼마나 자주 듣고 자랐을까? 하필 맏딸이다. 맏딸로서의 중압감도 있다. 그렇게 길들여진다. 가족에 묶이고 만다. 딸로써, 아내로써, 그리고 어머니로써. 그래서 아이돌이다. 스타란 꿈이다. 자신의 대신이다. 윤빈(김원준 분)은 방일숙의 젊은 시절이며 지금의 자신이다. 잃어버린 꿈이며 되찾아야 할 꿈이다. 윤빈이 만일 스타이기를 포기했다면 방일숙은 그조차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윤빈에 대한 투자는 윤빈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닌 방일숙 자신에 대한 것이다. 어째서 팬들이 아이돌에, 자신의 스타에 바리바리 값비싼 선물을 하고 하는지 어느 정도 답이 되었을까? 그녀는 성인이다. 다만 항상 바라보며 믿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다. 윤빈이 그 대상이 되어준다.
하여튼 재미있다. 그보다는 즐겁다. 기쁘다. 항상 기분이 좋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시원해지는 것이 쩌릿쩌릿 한기마저 든다. 이런 것도 있구나. 너무 당연한데 잊고 있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말하는 것은 어찌 이리 어려운가? 쉬운 것은 쉽기에 더 어렵다. 진실을 다시 깨닫는다.
보물같은 드라마라 할 것이다. 작가든, 배우든, 그리고 제작진 모두에게. 우리에게 일상을 돌려준다. 소중한 것도 몰랐던 소중함을 다시 되찾게 한다. 가족이 소중한 이유다. 항상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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