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방말숙(오연서 분)에게서 어떤 깊은 슬픔과 좌절같은 것이 느껴졌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분노와 증오이기도 할 것이다. 누구때문인가? 무엇때문인가? 누구에게 화내야 하는가?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것인가? 알지 못하기에 절망은 더욱 깊다.
그래서 방이숙(조윤희 분)은 곰탱이가 되었다. 규현(강동호 분)을 좋아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한 마디를 끝내 하지 못하고 지레 물러서고 말았다. 어느새 규현의 곁에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묵묵히 참아낸다. 그녀는 인내에 익숙하다. 어지간한 상처따위 혼자 끌어안고 삭이고 만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그녀를 낳기 위해 병원에 간 사이 오빠 방귀남(유준상 분)을 잃어버렸다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그러한 강요된 죄의식을 내면화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말숙은 아니다. 그녀는 아직 어리다. 그런 사정따위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직접적인 연관도 없다. 차라리 방이숙은 그녀가 태어난 날이 방귀남을 잃어버린 날과 같다는 원죄라도 있다. 그러나 방말숙은 아무런 직접적인 연관 없이 단지 방씨집안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같은 음울한 분위기에 짓눌리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인데 어쩔 수 없이 그런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말숙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다. 충돌이 일어난다.
존엄하고 싶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갖는 본능적 욕구다. 스스로 대단해지고 싶다.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충돌이 일어난다. 결국 꺾인 존엄은 열등감이 되고, 억눌린 열등감은 좌절과 절망으로 바뀐다. 좌절과 절망은 곧 분노와 증오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그것을 발산할 특정한 대상조차 없는 정체도 알 수 없는 분노와 증오다. 그것은 밖으로 표출될 순간만을 노린다.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를 바꾸고,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며, 남자들을 농락하며 모욕주는 모든 행위들이 바로 그같은 연장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만만한 '올케'가 생겼다.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 며느리는 곧 남편의 가족인 시댁식구에게도 남편에게와 같은 순종과 공경을 내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11살이나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시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칭을 강요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형제들에 대해 스스럼없이 반말을 할 수 있지만 아내는 남편의 가족에 대해 어떤 경우에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시누이만이 아니라 시동생에 대해서도 나이가 몇 살이든 항상 공경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시댁과 며느리 사이의 역학관계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앞집 살면서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었던 차윤희(김남주 분)였다.
사실 이와 같은 목적없는 분노와 방향없는 증오는 인터넷 등을 통해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단지 이유가 필요할 뿐이다. 적절한 빌미가 필요할 뿐이다. 사소한 일에도 사실확인없이 한 순간에 타오르고 그러면서도 어떤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는다. 모두가 우습다. 모두가 만만하다. 네티즌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대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새 손에 권력을 쥐고 모두를 굽어보려 한다. 단죄하려 한다. 수십년을 한 길로 매진해 온 아티스트에게조차 그리 대단하냐며 핀잔을 주고 위에서 가르치려 드는 것이 바로 그 대중인 것이다.
대중이기에 가능하다. 네티즌이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그 권력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항상 눈을 부릎뜨고 트집잡을 거리를 찾아낸다. 한 가지를 찾아내면 모두가 달려들어 그것을 물어뜯으려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를 통해 자기가 우월함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밖에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 남을 물어뜯고 모욕주는 것 말고는 자기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방말숙에게도 너무나 잘난 올케 차윤희에 대해서는 시누이로써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 말고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바로 그 또래인 것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너무 일찍 세상을 보아 버렸다. 세상의 화려함과 대단함에 눈이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세상과 현재의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다르다. 그 위화감을 견딜 수 없다. 저것이 바로 나의 것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분노한다. 그래서 좌절한다. 그래서 절망한다. 그래서 다시 증오를 드러낸다. 자신의 존엄과 관련된 것이기에 그들은 누구보다 도덕적이고 정의롭다. 방말숙 역시 누구보다 도덕적이고 정의롭다. 그렇게 믿는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당장 이름부터가 말숙이 아닌 민지다. 그렇게 불리기를 바란다. 그래서 말숙이라 부르는 차윤희에게 화를 낸다. 말숙이야 말로 그녀가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초라한 자신의 모습 그 자체일 터이므로. 남의 눈을 의식하며 남의 것을 탐내고 그것을 질투하여 증오로 바꾼다. 그런 자신에 만족해 버린다. 비루한 것이다. 비루한 젊음일 것이다. 아직은 자신을 다스리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래서 방말숙은 아직도 철이 덜 든 철부지로 그려진다. 방말숙과 차윤희의 대립이 한 편으로 통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씁쓸한 이유다. 어쩌면 오래전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닐까?
아무튼 우려했던 모습일 것이다. 그토록 차윤희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내비치던 사장조차 차윤희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바로 태도를 바꾸어 버린다. 차윤희 자신의 그동안의 커리어와 능력으로 당장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오기는 했지만 결국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무단적인 자리이동과 동료들의 왕따에 가까운 거리두기다. 무슨 전염이 되는 심각한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오죽하면 뱃속의 아이에 대해 고맙고 사랑스러운 감정보다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감정이 먼저 든다 하겠는가?
"너 하필 왜 지금 왔니?"
아이를 낳으라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과연 여성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일을 그만두어야 하고. 그만두지 않으면 그만두도록 강요하고. 강제하고. 결국 스스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가운데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더 이상 엄마로서의 기쁨이나 숭고한 자연의 섭리와는 상관없는 불편하고 성가신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차윤희의 임신과 더불어 계속해서 지적하는 문제다. 차윤희가 임신을 거부하려 한 것도, 임신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임신이 불편한 것도 결국은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내전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나라들을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이다. 차윤희의 싸움을 적극 응원하는 이유다. 그녀는 승리해야 한다.
하여튼 괜한 말숙의 간섭으로 좋았던 분위기만 싸해졌다. 차윤희도 마냥 원망할 일은 아니다. 그런 의도로 시작한 것이더라도 결과적으로 자신의 며느리를, 가족을 지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자기 며느리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없다. 시할머니(강부자 분) 역시 며느리 엄청애(윤여정 분)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차윤희도 거짓말쟁이가 될 수 없었다. 바로 그것이 가족이다. 민망해하고 아쉬워하고 아까워하면서도 가족이기에 하나가 된다.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고 싸우면서도 어느새 가족이기에 하나로 돌아온다.
참 실없다. 심리테스트라는 것이 그렇다. 바쁘면 그런 것 할 여유가 없다. 주위에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상대하기만도 바쁘다. 단지 재미다. 심심풀이다. 심리테스트에 열심이라는 것부터가 외롭고 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대부분 누구나 한 자락씩 가지고 있는 부분들이다. 순진하다. 천재용(이희준 분)의 매력이다. 방이숙은 우직하고 천재용은 순진하다. 천연기념물 커플일 것이다.
방장군(곽동연 분)이 한 건 해냈다. 차세광(강민혁 분)에게 완벽한 KO승을 거두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와이프 얼굴이 바뀐다. 어떻게? 송나라 진종이 만든 권학가가 있다. 책속에 쌀이 있고, 책속에 집이 있고, 책속에 미인이 있다. 그래서 어찌되었는가? 책을 읽어 쌀을 얻고 집을 짓고 미인을 얻고자 평생을 공부에 매진해 온 이들이 결국 관리가 되어 어떤 모습을 보여왔던가? 아름다운 아내란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해 거둔 성공의 보상이던가? 그렇다면 아름다운 여성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을 거둔 남자란 외모에 대한 보상이 되는가? 그래서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머리는 나쁘지만 그런 만큼 올곧고 순수하다. 방정배(김상호 분)의 가족이 대개 그렇다.
아내를 위해 돈을 비굴하게 돈을 빌려서까지 과일탕수육을 사주려 하고, 그런 남편의 고생을 알고 아내는 먹고 싶은 것을 참고, 그런 아내를 위해 남편은 다시 조카 방귀남이 물어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어딘가 부조리한 듯 기분이 좋아지는 가족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별 것 아니지만 작은 행복을 그들은 보여준다. 가장 정감이 가는 가족일 것이다.
용서를 바란다. 화해를 바란다. 하지만 용서를 구할 수 없다. 화해를 기대할 수 없다. 장양실(나영희 분)이 진정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을 텐데도. 방귀남이 기대하는 것도 역시 그런 것이 아니었을 터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한다. 그런데 가로막힌 소통의 장벽이 그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무심한 방귀남의 사과에 오히려 더 크게 상처입은 것이 장양실 자신이었달까? 비로소 그녀는 진정으로 자신에게 죄인이 되었다. 상처가 더욱 아리다.
윤빈(김원준 분)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사실 작위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숙(양정아 분)에게도 기회가 된다. 윤빈에게 운이 돌아온다. 윤빈의 조언으로 시아버지 방장수(장용 분)은 이제껏 부진한 팥빙수의 판매에 활로를 찾게 된다. 방장수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직접 기타를 들고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어떤 낭만과 진정성을 보게 된다. 일숙이 윤빈을 위해 직접 책을 찾아 읽고 공부하듯 윤빈 또한 자신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제 차윤희의 시련이 본격화된다. 이제는 시댁이 그녀의 아군이 되어야 한다. 그녀를 지탱해주고 지켜준다. 그녀의 일이 그녀의 적이 되었기에 시댁이 가족으로써 그를 버텨준다. 방말숙과 차세광의 만남이 멀지 않았다. 진실어린 사랑의 고백이 과연 아름답게 돌아오려는가? 차윤희와의 갈등이 깊어지는 만큼 운명도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결국은 방말숙도 차윤희와 가족이 된다.
차윤희의 올케 민지영(진경 분)의 말에 십분 동의한다. 인터넷에서만이라도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 차세중(김용희 분)은 의외로 배려심깊은 남편이다. 인터넷에서까지 시어머니와 얽히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감추고 싶은 진실이 너무 많다. 필자로서도 너무나 공감가는 이야기다. 즐겁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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