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추적자 - 검사 박민찬의 일갈, 최정우가 정의로울 수 있는 이유...

까칠부 2012. 7. 4. 09:36

하여튼 드라마가 별 사소한 데서까지 디테일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최정우(류승수 분)의 아버지가 판사가 아니었고, 출신대학마저 이름없는 지방사립대였다면, 그래서 가난한 집 자식이라 수많은 가족을 자기가 책임져야 하고, 출세를 하려 해도 믿고 의지할 동문조차 거의 없는 외로운 처지였다면, 그랬어도 그는 저와 같이 무모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할 수 있었겠는가?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서야 겨우 올라설 수 있었던 검사라는 자리였다. 결코 적지 않은 대학등록금을 감당하려 부모님과 형제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양보해야 했다. 심지어 형제 가운데는 자신의 대학진학을 위해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든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자신의 정의감을 위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검사의 자리를 내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자신이야 다시 변호사를 개업하면 된다고 하더라도 검사가 된 그의 모습에 뿌듯해하며 기뻐하던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동안의 모든 고생과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겠다. 그런데 그 기대를 배반해야 한다.

 

태생이 유복했다. 현직판사의 아들이라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디 가서 꿇리는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최정우의 아버지는 차기 대법관으로 유력하게 오르내리던 유능한 판사이기까지 했었다. 보건소에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는 의사였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없고, 절망에 쫓겨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도 아니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했을 것이다. 법이란. 법을 지키고 집행해야 하는 입장이란. 자신의 존엄과 역할에 대해서.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그같은 결정을 한다. 단지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단번에 높은 사회적 지위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우울한 현실을 한 번에 뒤집겠다. 그래서 강동윤(김상중 분)은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서지수(김성령 분)를 감히 내치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가진 조건을. 그녀로 인해 가능해진 자신의 꿈을. 야심을. 욕망을. 삶이란 전쟁이다. 전직 대법관출신의 변호사 장병호(전국환 분)에게 있어서도 법이란 단지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대법관이라고 하는 지위도 자신의 야심을 위해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검사 박민찬(송영규 분)이 같은 검사로서 최정우와는 달리 유력인사에 선을 대고, 윗선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였을 것이다. 집안이 가난한가는 모르겠다. 그래서 모두의 희망으로써 홀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 있는가도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렇게라도 억척을 부려 줄을 만들어 부여잡지 않으면 그에게는 무엇도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무리 미워도 내새끼이고 아무리 예뻐도 남의 새끼다. 최정우는 단히 한 번 얼굴만 비추고 허리만 숙여도 되는 것을 박민찬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쳐 얻지 않으면 안된다.

 

박민찬이라고 자존심이 없을까? 검사로서의 사명감이라는 것이 없을까? 그래서 비웃는 것이다. 자신을. 세상을. 그리고 모두를. 마치 무대 위의 배우처럼 과장된 몸짓과 표정을 연기하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더러운 세상을 자기로부터 유리시킨다. 그 세상에 물든 채 살아가는 더러운 자신을 자기로부터 분리한다. 그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이며 또한 무대 아래를 내려다보는 관객이다. 그나마 강동윤이나 장병호와는 달리 애써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은 그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며 자존심일 것이다. 다만 그것이 현실이기에 자기로서는 그렇게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화내고 있는 것이다. 자기와는 다른 선택을 한 최정우에게. 황반장 황일관(강신일 분)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놓아버리고 온 것이다. 자기가 포기하고 두고 온 것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다. 최정우는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그리고 황반장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어리석다. 이렇게 바보같을 수가 없다. 어느 순간이 되면 화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불쌍하고 가엾다. 박민찬이 장병호가, 강동윤이 되는 순간이다. 아직까지는 아니지만 멀지 않았다. 아니면 박민찬에게 전혀 예상치못한 반전이 있을까?

 

이제껏 전혀 문제없어 보이던 서회장과 서영욱(전노민 분)이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결국 서회장은 박민찬을 동원하고, 서영욱은 전혀 뜻밖에 최정우와 손을 잡는다. 절묘하게 어울린다. 더구나 최정우는 서회장의 딸 서지원(고준희 분)와 남다른 감정을 쌓아가고 있다. 하나같이 유복한 환경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라온 이들이다. 굳이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던 이들이다. 인간은 존엄한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가치있는 것이 인간에게는 있다. 최소한 자신에게는 있다. 서지수 또한 강동윤에 대한 사랑의 감정에 모든 것을 건다. 그에 반해 삶이 각박했던 강동윤이나 서회장이나 인간이란 그닥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꿈이 중요하다. 현실의 이익이 중요하다. 그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자기 자신마저 수단으로 내놓을 수 있다. 자신의 양심과 자신의 존엄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마저 얼마든지 양보하고 타협할 수 있다.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서회장은 자신을 거스르려는 서지수를 내치려 하고, 강동윤은 딸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백홍석(손현주 분)을 질타한다. 고작해야 진실따위. 고작해야 자존심따위. 미친* 머리에 꽂은 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항상 자기가 중심에 있던 서영욱과 서지원, 서지수, 그리고 최정우는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서영욱의 자존심을 따위라 여기는 서회장과 그럼에도 서회장과 맞서서라도 강동윤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서영욱이 그래서 바로 그곳에서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결코 자신이 하찮아질 수 없다.

 

바로 신혜라(장신영 분)의 한계다. 그녀는 경계에 있다. 그녀는 결코 자신을 수단으로 내놓을 수 없다. 도구로써 희생시킬 수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굴지의 대기업에서 중역으로 있던 이의 딸인 것이다. 서회장의 자식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녀 또한누구보다 유복한 환경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자기가 귀하다. 자기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궁지에 내몰리려 한다. 쉽게 꺾인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강동윤마저 저버리고 만다.

 

같은 상황에서 강동윤은 자신을 내던진다. 자신마저 희생시켜 상황을 반전시키려 한다. 그래서 여전히 강동윤은 자신의 의지로써 서회장과 맞서고 있지만, 신혜라는 어느새 서회장의 수족이 되어 그의 권력을 나눠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만다. 이만하면 되었다. 이만하면 훌륭하다. 만족할 수 있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서회장이지만, 그의 힘을 빌어 딸인 서지수를 곤란에 빠뜨릴 수 있다면 더 이상 불만 같은 것은 없다. 강동윤을 따르듯 서회장을 따르기 시작한다.

 

머리가 너무 좋다. 지나치게 영리하다. 지켜야 할 것과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안다. 정작 가장 소중한 지켜야 할 것을 놓치고서도 금새 포기하고 다른 것을 찾아나설 줄 안다. 새롭게 찾아낸 그것에 만족하며 안주하고 만다. 모험하지 않는다. 희생하지 않는다. 자신을 내던지지 않는다. 자신을 댓가로 무엇을 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을 굳게 지키려 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삶은 타인의 것이다. 강동윤의 것이었다가 서회장의 것이 된다. 그녀가 얻었다 여긴 모든 것은 단지 서회장의 말 한 마디에 그대로 사라질 뿐인 착각에 불과했다. 그것은 처음부터 서회장의 것이었다. 그것을 모른다. 그녀의 한계다. 그녀가 어리석은 이유다.

 

선이 그어진다. 강동윤과 서회장, 그리고 최정우와 서지원, 서동욱, 자신마저 수단으로 여기려는 이들과 도저히 어떻게 해도 양보할 수 없는 무엇을 간직한 그들. 서회장이 확실히 좋은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서회장의 아들과 딸은 어른이 되어 그의 곁을 떠난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현실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양심이란 바로 그런 현실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장을 살아온 이들과 평화로운 시대의 사람들이 만난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전장이다.

 

현실이 지켜주지 못했기에 백홍석은 범죄자가 되었다. 딸이 죽었다. 아내가 죽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형사였다. 그 가운데서도 흉악한 강력범을 잡아들이던 강력반 형사였다. 그런 그가 범죄자가 된다. 그런 그가 사람을 죽인 죄인이 된다. 법이 그를 지켜주었다면. 사회가 그를 지켜주었더라면. 경찰에 의해 강제로 범죄자의 길로 떠밀려야 했던 박용식(조재윤 분) 또한 그같은 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경찰이, 법이, 사회가 개인의 양심을 지켜주지 못했을 때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법이 지켜주지 못한 백홍석의 양심이란 백홍석으로 하여금 법을 어긴 범죄자로 만들고 말 뿐이다. 테러리스트가 된다.

 

최정우가 강동윤이라고 하는 감당할 수 없이 거대한 적과 맞서려 하는 이유로 백홍석을 앞세우는 이유일 것이다. 법이 지켜주지 못해 범죄자가 되어야 했다. 법이 지켜주어야 하는데 지켜주지 못했기에 죄인이 되어 도리어 쫓겨야 했다. 그것은 비단 법만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부채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어느 곳에서는 부당한 편견과 억압으로 인해 강요되듯 죄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죄를 짓지 않고서도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부조리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개인의 악인가? 사회의 악인가? 개인도 사회도 결국은 악하지 않다. 무엇이 악한가? 같은 고향 출신이다. 같은 학교 동문이다. 아버지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딸이다. 사위다. 친구다. 지인이다. 황일관도 그래서 죄인이 된 백홍석을 돕는다. 조형사 또한 죄인이 된 백홍석과 함께 경찰로써 오히려 경찰에 쫓긴다. 그럼에도 죄를 짓고 악에 물든다. 인간이 슬픈 까닭이다. 하필 박민찬조차 그런 어두운 그늘을 드러내고 만다.

 

최정우는 선인가? 선이다. 하지만 박민찬이 보는 최정우란 과연 선인가? 결과적으로 보자면 강동윤을 끌어내리려는 서영욱이 옳다. 그렇다면 서영욱은 선인가? 최정우와 서영욱은 서로 대립한다. 박민찬에게는 자신의 정의를 지킬 힘이 없다. 최정우가 정의로울 수 있는 이유다. 서지원이 선할 수 있는 이유다. 백홍석은 죄를 짓는다. 죄를 지으려 한다. 우울해진다. 드라마가 너무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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