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추적자 - 권력의 실체, 서회장이 강동윤을 꺼려한 이유...

까칠부 2012. 7. 3. 09:13

권력이란 무엇인가? 아마 이런저런 많은 주장과 이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권력이란 곧 상대의 약점을 틀어쥐는 것을 의미한다. 약점을 틀어쥐고 있기에 권력이 되고,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상대의 약점을 한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다.

 

신혜라(장신영 분)가 PK준의 핸드폰을 무기로 강동윤(김상중 분)과 서회장(박근형 분) 두 권력자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신혜라가 겨누고 있는 무기가 강동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할 때 - 정확히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무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신혜라의 우위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만다.

 

서회장이 그토록 강동윤을 꺼려하는 이유일 것이다. 서회장이 가진 권력의 비결이다. 서회장이 가진 막대한 부는 어지간한 욕망따위 아무렇지 않게 채워줄 수 있을 듯하다. 때로 자신이 기대한 욕망보다 더 큰 욕망이 서회장으로부터 주어지기도 한다.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라면, 그 본능이 가리키는 곳은 당연히 서회장인 것이다. 이미 탐욕에 맛들린 사람들에게 있어 더 이상 이전과 같이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은 차라리 공포이기도 할 것이다.

 

약점이 없다면 없는 약점을 만들어서라도 그것을 틀어쥔다. 당연히 이미 있는 약점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찾아내 상대를 손안에 쥐려 한다. 신혜라는 고작 우연히 손에 넣은 PK준의 핸드폰을 통해 강동윤의 약점을 잡고 그것을 이용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서회장 쯤 되면 제아무리 청렴결백하고 공평무사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더 큰 욕망을 이용해 자신과 주위를 흔들어 버릴 수 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이라면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하기는 신혜라도 안다. 아니 정확히는 강동윤이 그것을 안다. 백홍석(손현주 분)의 친구인 의사 윤창민(최준용 분)으로 하여금 의사로서의 양심과 오랜 우정을 저버리도록 하는데는 30억의 돈이면 충분했었다. 범죄자와 되어 쫓기는 백홍석에 대해 심지어 탈옥까지 도왔던 황반장 황일관(강신일 분)의 의리 또한 고작 10억이라는 돈에 아내가 먼저 흔들리면서 한 순간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고작 10억이고 30억인데, 강동윤의 아내이며 서회장의 딸이기도 한 서지수(김성령 분)은 이혼한 올케가 빌려간 50억의 돈을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물며 서회장이 가진 부의 크기란 그런 정도가 아니다. 한 나라의 총리와 당대표마저 그가 내미는 유혹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것이 곧 서회장이 갖는 무소불위의 힘의 정체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물론 강동윤에게도 욕망은 있다. 그에게도 간절히 바라는 탐욕의 대상이 있다. 만일 그것을 채워준다면 강동윤 또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서회장의 혀가 되고, 손발이 되어, 그를 위해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서회장은 강동윤에 대한 그같은 시도를 이미 모두 접은 바 있었다. 채워줄 수 없다. 채워주더라도 감당할 수 없다. 아무리 서회장이라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강동윤에게 넘겨준 채 그의 위에서 군림하려 해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서회장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강동윤이 탐내고 있는 바로 그것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기꺼이 아내인 서지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치 아름다움을 사랑하듯, 그녀의 고결한 성품을 사랑하듯, 서지수가 가진 서회장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사랑한다. 서지수 또한 강동윤이 말한 뜻을 알아듣는다. 그만큼 강동윤에게 있어 서회장이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탐욕이 간절하고 절실하다는 뜻일 테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가능케 해 줄 서지수에 대한 강동윤의 감정 또한 진심일 수밖에 없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바로 자신이다. 서지수 또한 서회장의 딸로써 자라왔다.

 

채워줄 수 없다. 그 말은 곧 그의 욕망을 약점으로 잡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협박은 소용없다. 위협을 해봐도 잠시 뿐이다. 강동윤이 바라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자신의 위협따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높은 지위와 강한 힘을 그는 바라보고 있다. 그때가 되면 도리어 강동윤에게 물릴 수 있다. 차라리 아들 서영욱(전노민 분)을 큰딸 서지수에게 했던 것처럼 포기하고 버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럴 수 있었다면 강동윤은 서영욱을 대신해 서회장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회장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영욱에게로 가 있었고, 그런 서영욱을 위협할 수 있는 강동윤의 존재란 거추장스럽기만 한 위험요인에 불과한 것이다. 마땅히 서영욱과 자신을 위해서라도 배제해야 하고 치워버려야 한다.

 

강동윤이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강동윤과 신혜라가 갖는 근본적인 차이일 것이다. 신혜라는 머리가 너무 좋다. 머리가 너무 좋다 보니 근심걱정이 많다. 불필요하게 너무 먼 앞으로의 걱정까지 미리 사서 하게 된다. 그러나 강동윤은 지금만 본다. 지금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그 한 가지만을 본다. 장차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한 가지만 판단하려 한다. 영화 <아저씨>에서도 원빈은 말하고 있었다. 오늘만 사는 자신을 내일을 사는 너희들은 결코 이길 수 없노라고. 신혜라라면 앞으로의 불안과 두려움을 미끼로 얼마든지 약점을 잡아 이용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러나 강동윤에게는 오로지 그의 의도하는 바를 채워주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죽이거나, 혹은 이루어주거나. 그것은 또한 서회장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강동윤과 서회장이 끝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그들은 결코 서로 양립할 수 없다.

 

그래서 신혜라는 변명을 하려 하지만 강동윤은 연설을 하려 한다. 신혜라는 상대의 입장에서 납득시키려 하지만, 강동윤은 오히려 자기의 입장에서 설득하려 한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며 이해를 구하기보다, 너무나 당연한 진실을 가르치듯 들려준다. 자기가 옳다. 자기는 틀리지 않았다. 세계는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서회장과 강동윤이 닮은 부분이다. 그래서 거스르면 짓밟고 부수고 나가고, 그 과정에서의 밟히고 희생되는 이들이야 굳이 생각할 것도 없는 것이다. 신혜라가 자신을 위협하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강동윤의 정치적 동지가 아닌 단지 흔한 도구이며 대상에 불과하게 된다. 이미 한 번 강동윤을 배신한 이상 그녀는 얼마든지 자신을 위해 그를 배신할 수 있다.

 

예정된 것이다. 페어한 세상을 만들겠다. 그래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어쩔 수 없이 편법과 범죄까지 서슴없이 동원하게 된다. 지시한 것은 강동윤이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신혜라 자신이었다. 한 번 이상이 꺾였다. 한 번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접었다. 두 번은 쉽다. 마찬가지로 한 번 강동윤을 배신했다면 두 번도, 세 번도 배신할 수 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배신이었기에 더 그렇다. 그녀는 자신을 잃었다. 갈 곳을 잃었다. 과연 지금 그녀가, 아니 앞으로 그녀가 서게 될 곳은 어디일까? 서회장의 앞일가? 강동윤의 뒤일까?

 

아무튼 어째서 그토록 서영욱이 강동윤을 싫어하는가 이유가 어렴풋 지나갔다. 서영욱이 어쩌면 진정으로 증오하는 대상은 강동윤이 아닌 아버지 서회장이었을 것이다. 그의 꿈을 꺾었고, 그의 사랑을 빼앗았다. 아버지가 바라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과연 자신의 삶인가? 아버지의 삶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너무 크고 강하다. 원망이라는 감정조차 아버지 앞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침 서지수가 데려온 남편감이 꼭 아버지를 닮았다. 아들로써 아버지와 같은 그를 질투하고, 아들이기에 아버지를 닮은 그를 증오한다. 강동윤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서영욱의 의도는 그같은 아버지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의 표현일 수 있다.

 

시를 잘썼다. 국문학과를 지망했다. 6년동안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때마다 반항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매번 굴복했었다. 어머니는 바랐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지 않기를. 딸은 아버지를 닮은 남자와 결혼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쫓아 그런 딸의 남편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이미 강동윤의 약점을 잡아 고삐를 쥐게 된 뒤에도 그의 증오는 멈추지 않는다.

 

약점을 잡혔다. 신혜라가 가지고 있던 그의 약점이 마침내 서회장에게로 넘어가고 말았다. 과거 서지수가 그러했듯 서회장 또한 강동윤의 약점을 잡으며 비로소 그를 자신의 곁에 둘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든 자기에게 이익이 되도록 강동윤을 이용할 방법을 강구한다. 이제껏 용납하지 못하던 강동윤의 존재에 대해서도 이제는 용납할 수 있다. 권력에게 있어 공존이 뜻하는 것이다. 대등한 관계란 없다. 오로지 일방적인 관계만이 존재하며, 내가 그 위해 존재해야 한다. 강동윤은 과연 이같은 상황을 받아들였는가. 서지수에게는 강동윤이라는 약점이 있었지만 서회장에게는 서지수라고 하는 약점조차 이제는 없다. 말하지만 강동윤과 서지수는 같다.

 

백홍석이 말한다. 모두가 강동윤에게 속고 있다. 속고 있는 것 없다.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인도 사람이다. 한 개인에 불과하다. 가족도 아니다. 친척도 아니다. 친구도 아니다. 사실상 정치인과 자기와는 전혀 아무 관계도 없다. 완전한 남이다. 과연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아닌 완전한 남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어느 만큼 적극적으로 희생하며 위하려 하는가? 가족끼리도 그러기란 쉽지 않다. 설마 화장품 판매원이 자기를 두고 아름답다 했다고 그것을 거짓말이라 고소하겠는가? 옷을 사러 갔는데 어울린다 말했다고 그를 사기죄로 고발하겠는가?

 

미디어에 속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자주 미디어를 통해 보게 되는 얼굴에. 가족의 이름보다 더 많이 그 이름들이 들린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보다 그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허상이다. 미디어를 통해 자신은 그를 보지만 그는 자신을 보지 못한다. 거리로 나서더라도 자신은 수많은 그의 지지자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장사꾼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정치가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소비자가 진실을 본다. 유권자 개인이 진실을 본다.

 

검사 최정우(류승수 분)를 통해서도 권력의 실체를 보게 된다. 박용식(조재윤 분)에 대해 최정우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단지 멸시의 뜻을 더해 '깡패'라 부를 뿐이다. 용의자인 배상무 또한 최정우의 입장에서 일개 '깡패'에 불과할 뿐이다. 증거를 잡았으니 대법관을 지낸 장병호(전국환 분) 앞에서도 당당해진다.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이제는 유력한 대선후보인 강동윤까지 노려볼 수 있다. 권력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권력 앞에 가장 먼저 엎드리는 것이 검찰이면서 또한 권력 앞에 가장 당당한 것이 검찰이기도 하다. 그렇게 권력은 서로 물고 물린다. 박용식에게 이름을 불러주겠다며 조건을 내걸 수 있는 오만이 바로 권력인 셈이다. 그래도 그는 건사라는 권력이다.

 

사람이 그립다. 배신이야 그럴 수 있겠거니. 어차피 뻔한 처지다. 사는 것이 궁핍하면 사람은 몸도 판다. 사는 것이 피폐해지면 양심도 판다. 그런 삶이 있음을 백홍석도 안다. 조형사(박효주 분)도 안다. 미워할 수 없다. 사소한 심술과 응징이면 어느새 그들은 다시 옛동료로 돌아간다. 윤창민은 어떨까? 물론 다시 윤창민과 백홍석이 친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딸을 죽였다. 의도는 다시 되돌릴 수 있어도 행위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죄는 끝까지 윤창민과 함께 하게 된다.

 

권력의 주변에 있다. 서영욱은 사실상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권력자인 서회장의 아들이라는 위치에 있을 뿐이다. 그가 누리는 모든 것은 서회장의 것이다. 질투도 하고, 그래서 탐욕도 가져 보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분노란 없다.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거세되었다. 그에게는 권력욕이 없다. 단지 학습된대로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신혜라는 자신에게 학습된대로 이상을 연기하고 있다. 그녀에게도 진정한 분노는 배제되어 있다. 오로지 서회장과 강동윤만이 권력이다. 그들만이 중심에 있다. 무력한 신혜라의 처지가 우울하다. 그녀의 한계다. 서영욱의 한계다.

 

그래서 마치 짐짝처럼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백홍석에게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복수를 하려 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쫓기고 몰리다 겨우 목숨을 구하고 사람들에 의지한다. 검사와 재벌의 딸이라는 든든힌 버팀목이 그를 구해낸다.

 

뜻은 좋았다. 용기도 훌륭했다. 행동에는 감탄하며 공감했다. 하지만 어느새 드라마의 중심은 서회장과 강동윤에게로 옮겨가 있다. 그들을 중심으로 세상은 돌아간다. 마치 현실의 이야기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백홍석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자신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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