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게 하라. 그리고 부끄러워하게 만들라. 꿈이란 욕망이다. 부끄러움이란 열패감이다. 욕망은 탐욕을 부르고, 열패감은 존엄을 잊게 만든다. 존엄은 곧 양심이다. 약간의 이익만으로도 얼마든지 불의와 타협한다. 이익만 있다면 얼마든지 악을 저지르고 죄를 짓는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노력만 한다면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한 집 자식이더라도 열심히만 한다면 서회장(박근형 분)이 그랬듯이 부와 권력은 한손에 쥐고 세상을 굽어보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난이란 부끄러운 것이다. 아무런 노력도, 현실을 바꾸어 보려는 의지도 없었다는 뜻일 것이니.
거꾸로 남들만 못한 것이 부끄럽다. 남들 다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남들 다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다. 그래서 어떻게든 가지려 한다. 대등해지려 차라리 거짓말을 한다. 없는 것을 있다고.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고 있다고. 훔쳐서라도 가지려 한다. 속여서라도 누리려 한다. 저 앞에 그렇게 지게꾼에서 대기업 총수의 자리에까지 오른 서회장이 있었다.
강동윤(김상중 분)이라고 하는 괴물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무엇으로부터 태어나서 어떻게 자라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가? 너무나 적나라하다. 작가가 현직 교육자라 했다. 아마 교육현장에서 작가 스스로 평소 느껴오던 것이었을 것이다. 위인전으로 대표되는 유명인의 성공담과 성적표와 같은 숫자로써 계량된 현실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저 유명인들의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으로 그치면 좋을 것을 굳이 그 가운데 성공의 조건을 구체화하고, 그런 가운데 학생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우등과 열등을 나눈다. 더 위를 봐야 다. 더 위를 보지 않으면 안된다. 현실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터무니없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제 고작 초등학생들인데 선생님이 앞에 나와 스스로 손들라 시킨다. 집안에 수입은 어떻게 되고, 삶의 수준은 어떻고, 부모는 어떤 사람인지. 적나라하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까발려지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어떤 조건에 있는지. 자신과 비교해서 다른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별 것도 아닌 것에도 열등감과 굴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거꾸로 우월감과 자존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것이 때로 아이들 사이에서 서로 따돌리고 따돌림당하는 이유가 되었었다.
결국 강동윤은 아버지의 존재를 친구들에게 숨기게 되었다. 허름한 이발소와 흑백TV를 더 이상 친구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보여주기를 무척 꺼려한다.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성공을 손에 넣으려 한다. 서회장처럼. 서회장의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서회장으로 인해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사적으로 꿈을 움켜쥐었다. 설사 그것이 무고한 한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강동윤 자신의 목숨과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이미 하나의 당위다.
백홍석(손현주 분)과 강동윤이 서로 비교되는 지점이었을 것이다. 백홍석은 굳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려 하지 않았다. 괜히 무리하게 큰 꿈을 꾸려고도 하지 않았다. 현실에 만족했다. 아내가 있고 딸이 있는 현실에서 행복을 얻으려 했었다. 크게 욕심도 내지 않고, 그런 만큼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일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최정우(류승수 분)와 서지원(고준희 분), 황반장(강신일 분)과 조형사(박효주 분) 등등 위험을 무릅쓰고 불이익마저 감수해가며 자신을 도와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강동윤에 대한 원한을 곱씹으면서도 백홍석이 어쩌면 강동윤보다 더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였다. 강동윤을 심판해야 한다는 당위가 그를 절박함으로 내몰지만, 그러나 절박한 가운데서도 백홍석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고 나올 한참 뒤의 일까지 주위 사람들과 기약할 수 있다. 그것은 귀소본능과도 같을 것이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자신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미안함을 돌려주고 고마움을 갚는다. 다시 만나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 과연 강동윤에게도 그러한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 있기는 있을까?
강동윤의 아버지 이발소 벽에 걸린 강동윤의 상장이 그 답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바랐던 과거였다. 그가 간절히 바라던 그의 어린시절이었다. 가난하던 시절 그는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고단한 삶 가운데 그것만이 유일하게 아버지의 기쁨이고 자랑이었다. 그것을 강동윤 역시 뿌듯하게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집주인의 단지 질투에 의해 치워지고 말았다. 아버지의 이발소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그토록 뿌듯하던 기쁨도 자랑도 사라져 있었다.
굳이 아버지의 이발소가 있던 건물을 사들여 아버지로 하여금 이발소를 계속 하도록 배려한 이유였을 것이다. 아버지 역시 이발소의 벽을 그때 어쩔 수 없이 치워두어야 했던 아들 강동윤의 상장들로 채워놓는다. 그곳에서 아들과 아버지는 만난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로서 만난다. 만일 과거 강동윤에게도 그와 같은 시간들이 허락되었으면 어땠을까? 굳이 서회장을 노려보지 않고서도 아버지와 함께 있어 따뜻하고 행복했던 시간의 기억들을 가져 볼 수 있었다면 그는 지금과 같은 괴물이 모습이 되어 있었을까?
현실에는 없었다. 당시 어린 강동윤의 주위에는 없었다. 따뜻함이란. 행복이란. 희망이란. 기쁨이나 즐거움과 같은 것은. 그래서 꿈꾸었다. 현실에 없는 저 멀리에 있는 것들을. 닿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대학졸업도 누이의 보상금으로 겨우 할 수 있었던 강동윤이 당시 꿀 수 있었던 꿈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지금의 현실이 소중하다. 자신과 맞바꿔서라도 반드시 이루고 싶다. 양심마저도 그를 위해서는 태연히 접어둔다. 존엄조차 지금은 가치가 없다.
강동윤의 선거구호에서도 그런 강동윤의 내면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굳이 꿈을 꾸어야 하는가? 굳이 꿈을 이루어야 하는가? 노숙인들이 진정으로 재활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보다 엄격하고 각박하게 그들을 대해야 한다. 노숙을 한다는 현실을 부끄러워하고, 보통의 삶을 동경하여 목표로 삼도록 해야 한다. 부자가 되어야 하고, 권력을 쥘 수 있어야 하고, 대단한 명예나 지위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위만을 바라본다. 그것을 개혁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국민들은 그런 그를 지지한다. 누구도 자신이 지금 이대로 행복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없다.
그야말로 우리사회의 자화상 그 자체였을 것이다. 검사 박민찬(송영규 분)이 보여주는 또다른 현실일 것이다. 법이란 오래전부터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부잣집 아이들고 경쟁해서 사회적인 성공이라는 것을 거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었다. 꿈을 꿀 수 있었고 기대도 가져졸 수 있었다. 그런 만큼 필사적이 되어야 했었다. 대개 그런 경우 집안전체가 짐처럼 어깨에 지워져 있는 경우마저 있었다. 포기할 수 없다. 그만둘 수 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잠시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따위 현실을 위해서는 전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결국 모든 혼란을 정리한 것은 다름아닌 서지수의 동생 서지원이었을 것이다. 이미 강동윤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아버지 서회장도 그렇게 설득하고 있었다. 자기에게는 서지원의 아버지로서의 자신과 한우그룹의 회장으로서의 자신, 두 가지의 모습이 있다고. 서지원도 선택한다. 자신은 기자인가? 아니면 서회장의 딸이며 서지수와 서영욱(전노민 분)의 동생이며 처제인가? 그보다는 가족간의 정과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맞물린다.
언니와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언니는 이미 정신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 핸드폰을 찾으려는 서지수의 집요함은 눈앞의 서지원에 대해서조차 동생으로서보다는 단지 강동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타인으로서 대하려 한다. 서지수가 타인으로서 대한다면 서지원도 마찬가지다. 기자로서 보도하고 가족으로서 미안해하며 사과한다. 나름 필사적이며 절박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어쩌면 최정우와 가족이 되기 위한 수순의 하나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다시 위기다. 이번에는 크다. 서지원까지 가세했다. 몰레카메라로 찍은 동영상과 서지원이 확인한 계좌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위기는 여러차례 있어 왔었다. 이번에도 단지 위기로 끝날 것인가? 확실하게 결말로 내달리게 될 것인가? 이제 곧 드라마의 끝이다.
흥미롭다. 단지 살인자와 살인자를 쫓는 추적자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분노와 원한의 쫓고 쫓기는 관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원인을 되짚는다. 그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모순에 주목한다. 부디 복수에 성공할 수 있기륵. 혹은 강동윤이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모순이 얽힌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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