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골든타임 - 의사가 의사가 되어가는 첨예함, 이민우와 강재인의 조화가 좋다.

까칠부 2012. 7. 11. 09:14

프로란 자신의 일이 곧 존재인 이들을 두고 일컫는 말일 것이다. 누구인가 묻는다면 이름보다 먼저 '의사'라고 하는 자신의 직업부터 대답한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는 의사로서 여겨진다. 당연히 책임이 지워진다. 그는 과연 의사인가?

 

의사같지 않은 의사는 더 이상 의사가 아니다. 의사인데 의사가 아니라면 그는 이미 가치가 사라진 것이다. 그같은 칼날같은 길 위를 걸어간다. 전문직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다. 전문적인 지식도 지식이지만 직업을 자신의 존재로 삼는 이들의 치열함이 드러난다. 의사란 무엇인가? 의사란 어떤 존재인가?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명색이 의사다. 그런데 정작 환자를 앞에 두고 그는 의사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작 자신이 의사인데도 다른 사람들에 의지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의사인가? 그래서 포기한다면 그는 더 이상 의사가 아니게 된다. 자신도, 주위의 누구도 그를 의사로서 여기지 않는다. 프로가 고독한 이유다. 자기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의사로서의 자신을 증명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오롯한 자신의 몫이다.

 

어쩌면 주인공 이민우(이선균 분)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민우의 의사로서의 가능성이기도 할 것이다. 의사가 아니다. 굳이 의사이고자 하지 않는다. 한방병원 임상강사로 인턴경력조차 없이 무위한 시간들을 보낸 것은 그래서였다. 치열하게 일선에서 환자를 상대하기보다 의사라는 신분을 이용해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싶었다.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위급한 환자따위 평생 보게 될 일이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보고 말았다. 그리고 겪고 말았다. 환자가 자기 앞에서 죽는 모습을. 의사가 아니라면 상관없다. 의사가 아닌 - 아니 의료인이 아닌 사람에게 아무리 죽어가는 사람이더라도 반드시 살려야 하는 당위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살려야 한다. 그래서 환자가 아프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의사를 찾고 그에게 환자를 맡긴다. 의사라고 당당히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란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가. 의사로서 당연히 자신이 했어야 했을 사망선고조차 다른 의사가 대신하고 있었다.

 

선택이 주어진다. 자신은 의사인가? 아닌가? 만일 그 순간 다른 대답이 나왔다면 드라마는 더 이상 의학드라마가 아닌 다른 장르의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의사이기를 선택했으니 과정이 따라와야 한다. 의사로써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이 따라붙는다. 드라마의 주제다. 의사되기. 단지 의사자격증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 이민우가 진정한 의사로써 거듭나기 위한 시련을 거친다. 그것도 가장 가혹한 외상외과에서. 외상외과 전문의 최인혁(이성민 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턴동기 강재인(황정음 분)를 통해. 최인혁은 스승이며, 강재인은 강력한 라이벌이며 의지할 수 있는 동지다.

 

구성이 좋다. 특히 이민우의 파트너 역할인 강재인의 경우 이민우의 정확히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이민우에게 없는 것을 그녀는 가지고 있다. 의사로서의 자각. 존재다. 같은 인턴이지만 의사로서 가져야 할 마인드적인 부분에서 그녀는 이민우에 한참 앞서고 있다. 그에 비해 이민우가 나은 것은 외국드라마의 영향인지 사소한 응용에서 매우 강하다. 둘이 합심해서 호송중인 환자를 살린다. 환자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며 삽관한 것을 빼내는 다급한 상황에, 둘다 초보라 허둥대는 와중에도 철저한 역할나누기로 적확한 처치를 하는데 성공한다. 상징적이지 않을까? 서로 다른 타입의 의사인데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함께 칭찬하며 북돋워주고 있다. 언제까지 그대로일지는 모르겠다.

 

당연한 정형외과 과장 황세헌(이기영 분)과 외과과장 김민준(엄효섭 분) 사이의 신경전도 볼 만하다. 황세헌은 속물이고 김민준은 이기적이다. 다른 과장들 역시 의사로써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병원에 정치에 더 몰입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 드라마보다도 강하다. 결국은 어른의 세계라는 것일 게다. 새파란 인턴인 이민우와 강재인은 어린아이인 것이고. 보모인 최인혁이 올곧게 그들을 지킨다. 하필 외상외과의 열악한 현실을 강변하고 있는 것은 이민우와 강재인이 곧 외상외과에 몸담게 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복마전 속에 순수한 의사로서의 열정이 존재를 증명해간다.

 

아무튼 그래서 필자 역시 처음 일을 시작하려는 신입들에게 항상 그같이 말한다. 열심히 하지 마라. 잘하려고도 하지 마라. 아직 한 사람의 몫을 하기에는 무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신입이기는 하지만 사원인데, 안으로는 아직 사원이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을 채우는 것이 경험과 훈련이다. 의사로서도 아직 충분한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데 괜히 열심히 잘하려 하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열심히 잘하게 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다.

 

그같은 첨예함일 것이다.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환자와 마주하는 치열함, 그러면서도 생명을 다루기에 누구보다 엄격해야 한다. 예리한 칼날과도 같다.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그들은 자신의 가진 바 재능과 가능성을 드러낸다. 신입이라기에는 이민우를 연기하는 이선균의 나이가 결코 적은 편이 아니지만,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민우의 진지한 어눌함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다. 이선균보다 어리면 그야말로 어리버리가 된다. 이민우는 정형외과 과장인 황세헌에게조차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재미있다. 무엇보다 긴장된다. 인턴주제에. 인턴인데 포부만 남다르다. 의사로서의 열정이 넘치는 강재인이나, 의사로서 자각해가는 이민우, 그리고 그들이 놓인 외상외과의 치열한 현실, 그 가운데 조금씩 성장해가는 엄격함까지. 이민우는 더구나 너무 허술하다. 강재인은 지나치게 야무지다.

 

얼추 그림이 그려졌다. 캐릭터가 제자리를 찾았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병원이 배경이니 환자가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성장해가는 인턴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쾌하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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