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유령 - 정보화시대의 진정한 힘, 마침내 진짜 유령을 찾아내다!"

까칠부 2012. 7. 13. 08:55

사실 어느시대에든 정보란 가장 큰 무기였다. 나일강이 언제 범람하는가를 안다. 나일강에 의지해 농사를 짓던 이집트 사람들에게 그것은 생존이 걸린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파라오는 신이 되었고, 사제들은 이집트의 지배자가 되었다.

 

어디에 얼마의 돈을 투자하면 되는가를 안다. 언제 투자하고 언제 빠질까를 정확하게 예언한다. 적중율이 높을수록 사람들은 그를 따르게 된다. 그의 말에 의지하고, 그의 몸짓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속되기 시작한다. 지배자란 원래 예언자였다.

 

상대의 약점을 안다. 상대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비밀이다. 알려지면 상대는 죽는다. 알리지 않는다면 상대는 살 수 있다. 살기 위해서라도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복종하지 않는다면 약점을 밝혀 그를 파멸케 만들면 그뿐이다. 그는 힘일 쥐게 된다.

 

어차피 권력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돈이라는 것도 역시 다르지 않다.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을 허무는 것도, 돈을 흩어버리는 것도 다름아닌 정보라는 것이다. 정보를 쥔 자가 권력도 돈도 손에 쥔다. 다만 정보를 얻기란 무척 어렵다.

 

과연 남의 집 금고 안에 고이 모셔진 장부를 무슨 수로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개인의 사생활까지 일일이 모아 기록해두는 정보집단이란 원래 무협소설에나 나오는 것이었다. 말은 흘러가고 행위는 몸짓을 따라 바람결에 흩어진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오느니 음모론 뿐이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두 개의 뇌를 가지게 되었다. 원래의 자기의 뇌와 그 뇌를 보좌할 컴퓨터라고 하는 또다른 뇌다. 그리고 그 뇌가 인터넷을 통해 네트워크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결국 정보를 얻는 통로는 예나지금이나 바로 사람의 네트워크를 통해서다. 과거에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정보를 얻었고, 지금은 뇌와 뇌가 직접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는다.

 

정보의 바다로 모든 정보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단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격리되어 있을 뿐 그것은 거대한 네트워크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여러 정보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굳이 일일이 만나고 뒤지고 다니지 않아도 정보의 바다를 이루는 법칙만 안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자기 손에 넣을 수 있다. 완벽해 보이는 그것은 크기 만큼이나 너무나 허술하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제기되어 온 상상이기도 했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심지어 인터넷이 생겨나기 전에 벌써 쓰여지고 있었다. 그나마 조지 오웰의 '1984'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저장해 놓는 또다른 뇌의 존재란 전제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소름끼쳤다. 네트워크의 법칙을 알고 그 법칙을 이용해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세상을 지배한다. 독재자의 꿈이 아닐가?

 

비단 세강만이 아니다. 세강 이외에도 세강세이프텍의 백신이 설치된 컴퓨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조현민(엄기준 분)은 그 정보를 얼마든지 빼돌려 자기를 위해 이용할 수 있다. 협박을 할 수도 있고, 상대보다 앞서서 이익을 취할 수도 있고, 상대를 좌절시킬 수도 있다. 선별되거나 가공된 정보를 통해 대중을 선동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함한다면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전체를 한 손에 틀어쥔 것이나 다름없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세강그룹의 총수 작은아버지 조경신(명계남 분)과의 대결은 바로 그런 시대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바깥세상의 권력과 금력을 손에 쥐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그에게 아직 작기만 한 조현민이 도전한다. 그야말로 힘을 주어 밟으면 그대로 짓이겨질듯한 약한 상대였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힘을 지닌 것은 조현민 자신이었다. 조경신의 권력과 돈이 전혀 통하지 않은 채 철저히 조현민에게 농락당하고 만다.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그 힘이 더 이상 그를 지켜주지 못하고 그는 절망속에 자신의 형이 그랬듯이 죽음을 택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조현민이 노린 계획이었을까? 처음 세강증권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통해 세상에 보안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다시 대한전력에 대한 공격을 통해 보안에 대한 위기의식을 고취시킨다. 보안에 대한 불안이 높아질수록 해커의 공격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세강 세이프텍에 대한 신뢰와 의존도는 높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확보한 세강 세이프텍의 백신프로그램이 깔린 컴퓨터들로부터는 얼마든지 원해는대로 정보를 빼낼 수 있다. 정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그야말로 유령이다.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도 않는다.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존재한다. 존재하며 작용한다. 평상시에는 아주 깊숙이 숨어있다가 필요한 때가 되면 언제든지 표면으로 올라와 세상에 작용한다. 비로소 진짜 유령을 잡는다. 경찰이 아니면서도 경찰이 되어 있는 김우현 아닌 박기영(소지섭 분)이 아닌, 경찰 내에 숨어 있던 조현민의 스파이 강응진(백승현 분)도 아닌, 배후의 흑막이 만들어낸 진짜 유령이다. 그 거대한 크기가 다시 김우현에게로 향한다.

 

약점이 많다. 당장 김우현이 아니라는 사실이 가장 큰 약점이다. 그는 김우현이 아니다. 경찰조차 아니다. 서로 확신은 없다. 하지만 위기는 찾아온다. 조현민은 김우현을 제거하려 하고 그를 위해 가장 확실한 무기를 사용한다. 검찰에 의한 체포라는 막다른 상황 앞에 김우현은, 그리고 어느새 같은 방향을 보며 달리기 시작한 동료 권혁주(곽도원 분)는 어떻게 대처하려는가? 벌써 백신에까지 다가갔다. 강응진은 놓쳤지만 더 큰 것을 찾아냈다. 아직 그것을 알리지조차 못하고 있다.

 

조작된 정보와 조작된 사실들, 그리고 조작된 죄목, 김우현도 조작되었다. 김우현이 아닌 박기영이다. 그 목줄을 조현민이 움켜쥐고 있다. 모든 살인사건의 범인도 역시 조현민이다. 대신 김우현의 뒤에는 권혁주가, 국가라는 공권력이 있다. 싸움은 치열해진다. 일단은 조현민이 이겼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작다. 고작 세강그룹만이 아닌 더 큰 범위에서 이루어졌다면. 세강그룹의 총수자리를 노린 복수가 아닌 보다 큰 스케일의 국제적인 범죄를 다루고 있었더라면. 하지만 적은 조현민 한 사람으로 족하다. 김우현이 조현민을, 박기영이 해커그룹을 맡는다.

 

마침내 유령의 존재를 찾았다. 그러나 아직 경찰내 유령은 찾지 못했다. 조현민이 반격이 시작된다. 거세다. 일개경찰인 김우현과 권혁주로서 감당하기 힘든 반격이다. 도다른 반전이 예견된다. 버거운 싸움이 시작된다. 승리할 것을 알기에 그래서 더 흥미롭다. 엄기준의 연기는 최고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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