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 방일숙의 서러운 눈물, 어머니의 맹목적 사랑...

까칠부 2012. 7. 15. 06:36

어느새 일상어가 되다시피 했지만 '엄친아'처럼 슬픈 단어도 없을 것이다. 엄마 친구 아들. 공부 잘하고, 효성 깊고, 행실 바르고, 그림이며 노래며 운동이며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나이를 먹어서도 결혼도 잘해, 돈도 잘 벌어, 자식도 훌륭해, 그저 부러운 것 투성이다. 너는 어째서 그처럼 하지 못하는가?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되어 버린다. 차라리 비교대상이라도 없었다면. 그러나 다름아닌 엄마 친구라니까. 엄마가 친구와 비교된다고 하니까. 비교되는데 꿇린다고 하니까. 나는 어쩌면 이리도 못난 자식인 것일까? 때로 아예 견디지 못하고 엇나가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나란 이렇게 가치없는 존재인데 더 노력해서 무엇하는가? 그런 걸 두고 자포자기라 말한다.

 

물론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일 게다. 기대치가 높다. 그리고 혹시나 항상 불안하다. 물가에 내놓은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경험한 세상의 흉험함 만큼이나 그 세상을 헤쳐가야 할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혹시나 다칠까. 혹시나 아파할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고착되어 버린다. 이 아이는 내가 걱정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렇게 한정되어 버린다. 이 아이는 이것 밖에는 안된다고.

 

기대치가 높으니 마음에 들기도 어렵다. 모든 것이 못나 보이고 모든 것이 부족해 보인다. 실망스럽고 불만스럽다. 그런데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고 한다. 귀한 자식 매를 아끼지 말라고 한다. 잘되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다그치고 재촉한다. 야단치고 힐난한다. 비하하고 비웃는다. 그러나 말이 사실을 정의한다. 관념이 구체화되어 확정된다. 부모나 자식이나 그렇게 여긴다. 너는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자신은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부모는 자식이 불만스럽고, 자식은 그런 자신이 그저 죄스럽기만 하다. 열등감에 짓눌려 사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다.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나 보며 자기에 대한 확신 없이 주위에 휩쓸린다.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항상 먼 곳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아니면 더 이상 나아가기를 포기하고 주위에 집착하며 안주하려고만 한다. 한 마디로 정체된 삶을 산다. 움츠러든 채. 더 이상 밖으로 나가기를 포기한 채. 그럴 자격이 안되니까. 그럴 주제가 안되니까.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단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단지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것만으로. 하지만 그조차 믿지 못한다. 그조차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앞으로 한 발짝을 내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을 달리 자신이라 말한다. 그런 자신이 없다.

 

부모이기에 누구보다 자식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낳았기에 자기보다 자식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착각한다. 심지어 당사자보다 부모인 자신이 자식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굳게 확신한다. 문제는 그것이 불신에 대한 확신이라는 것이다. 자식을 믿지 못한다. 자식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비교대상을 찾게 된다.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친구의 아들이다. 친척의 딸이다. 엄친아와 엄친딸이 나오게 되는 이유다. 차라리 타인은 믿어도 자식은 믿지 못한다. 자식을 믿지 못하기에 타인을 믿고, 타인을 믿기에 자식을 믿지 못한다. 슬픈 모정일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기에 믿지 못하고 자식을 아끼기에 인정하지 못한다.

 

방일숙(양정아 분)이 심지어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남편인 남남구(김형범 분)에게 저자세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당장 방일숙이 이혼했다는 말을 듣자 그녀를 낳아준 어머니인 엄청애(윤여정 분)는 다짜고짜 뺨부터 때리고 만다. 모두 방일숙의 잘못이라고. 방일숙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어째서 엄마인 자신을 실망시키느냐고. 지금이라도 남남구를 찾아가 빌라고. 방일숙을 사랑해서다. 방일숙을 걱정해서다. 그래서 방일숙도 자신의 이혼사실을 엄청애에게 밝히지 못했다.

 

법이 엄하면 사람은 법을 피할 생각부터 하게 된다. 부모가 엄하면 자식은 부모의 눈치만 살피도록 되어 있다. 필요이상으로 엄하다는 것은 존엄이 없다는 뜻이다. 인격이 없다. 독립된 주체로써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란 없다. 비루해지고 비겁해진다. 어차피 자기란 그것밖에 안되니까. 체념하면서 살고 있었다. 자기란 이것밖에 안되는 존재라고.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시부모로부터도 버림받고, 친정엄마에게조차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철저한 고립감 앞에. 가장 의지해야 할 낳아준 어머니에게 사실을 밝히지조차 못하게 만든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네까짓게 뭘 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찾은 일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보람을 찾은 그녀의 일이었다. 그런데 네까짓게 뭔 일이냐며 그만두란다. 고작 그런 일이라며 비하하고 윤빈(김원준 분)과의 사이를 불순하게만 본다. 딸 보기에 부끄럽지 않느냐고까지 말한다. 남남구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인 엄청애가 가장 먼저 확신을 가지고 단정한 사유가 바로 윤빈과의 관계였다. 그녀에게 방일숙이란 그렇다. 한 번도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단 한 번도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는 딸. 그것을 그녀는 사랑이라 생각했고 부모의 마음이라 믿었다. 그리고 방일숙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정작 바람을 핀 남남구에게 비굴하게 매달려가며 이혼을 막으려 했고, 이혼하고 나서도 남남구에게 사정하여 사실을 숨기도록 부탁해야 했다.

 

그 순간에조차 엄청애는 자신의 딸이 아닌 남남구의 편을 든다. 아직 확실한 내막도 모르면서 일단 남남구의 편을 들어 딸을 야단치려 한다. 자식이 못미더워 남을 믿는다. 자식이 불안해서 남에 의지한다. 차라리 남남구를 믿고 의지한다. 미덥지 못한 불안하기만 한 딸을 남남구에게 맡기려 한다. 그런데 과연 딸인 방일숙이 남남구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이혼하고 나서도 방일숙은 한참을 남남구에 구애되어 살아야 했었다. 그나마 그런 방일숙을 구해준 것이 과거 그녀의 아이돌이었던 윤빈이었다. 윤빈과 함께 하며, 그리고 시누이인 차윤희(김남주 분)의 전폭적인 지지덕에 그녀는 비로소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다. 존엄을 깨닫는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바로 설 수 있게 된다.

 

아마도 의도적이었을 것이다. 전형적인 어머니 엄청애와 전형적인 딸 방일숙, 당연하게 이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가 되고 불효가 된다. 누가 잘못했는가는 다음이다. 누구의 잘못이든 이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딸은 죄인이 된다. 아마 딸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더 못미덥고, 그래서 더 불안하고, 그래서 타인인 사위에게 의지하려 하고, 그래서 무조건 사위에게 잘못했다 빌라, 이혼은 안된다. 하기는 우리사회가 이혼한 여성에게 관대한 사회는 아니다. 이혼하고 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경제적인 문제다. 아직 우리 사회는 이혼한 여성이 홀로서기에 너무 가혹하고 무심하다. 부모부터가 자식을 죄인으로 여긴다. 많이 나아졌다.

 

딸에게 상처를 준 남남구를 혼내주려 딸과 며느리와 함께 출동해봐야 이미 늦었다. 이미 상처는 줄대로 준 뒤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방일숙에게 남기고 말았다. 미안하다 말한다고 끝난다면 법도 경찰도 필요없다. 부모라고 해도 타인이다. 부모라고 자식을 모두 알 수 없듯, 부모라고 해서 모든 것을 용서받을수도 없다. 그럼에도 부모이니 용서해야 한다. 자식이니까 용서해야 한다. 아마 이 순간에도 엄청애는 자신의 잘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리라.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다. 부모이기에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생각한다.

 

방일숙의 서러운 눈물이 그래서 우울하다. 그녀의 마음고생이 읽힌다. 단 한 번도 부모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기쁨을 주지 못한 딸. 미덥지 못하고 불안하기만 한 자식. 그래서 남편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어했다. 시부모에게라도 믿음을 얻고 싶어했다. 그조차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자기가 이혼한 사실로 인해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어머니로부터 비난부터 듣고 만다. 그렇게 자라왔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작가란 어느 시대에나 가장 존경받는 지식인이었다. 바로 이같은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차윤희의 말이 맞다. 차윤희는 누나다. 가족이지만 타인이다. 가족이기에 자기 의견을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아닌 남의 의견이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고작 차윤희가 무서워 끝내고 말 사이라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무서운 누나라 할지라도 맞서서 지킬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랑하는 사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방말숙(오연서 분)이 옳았다. 누나가 무서워 사랑하는 여자도 지켜주지 못하는 남자를 뭘 보고 믿고 사귀겠는가?

 

하기는 차세광(강민혁 분)의 친형 차세중(김용희 분)도 그다지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 그나마 차세중의 아내 민지영(진경 분)이 성격이 만만치 않아 시어머니인 한만희(김영란 분)와도 곧잘 맞서며 자기주장도 하고 있다. 차윤희와 방말숙의 사이였다면 방말숙이 결코 견디지 못한다. 차윤희가 강해서도 있지만 방귀남(유준상 분)이 든든히 버텨주기에 시댁과의 사이에서도 당당히 주도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방말숙은 차세광을 잊지 못하고 차세광도 방말숙을 놓지 못한다. 마치 비련의 주인공같다.

 

뻔한 계략에 방이숙(조윤희 분)이 넘어간다. 이 아가씨는 기본적으로 면역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한 번도 사랑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게 되리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그런데 천재용(이희준 분)이 자신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것은 아는데 그것이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규현(강동호 분)의 고백도 방이숙에게는 남의 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천재용의 집에서 자신이 선물한 곰인형을 보며 난감한 가운데 묘한 실감을 하게 된다. 이미 천재용과 내외하기 시작했다. 거리낌이 생겼다. 의외로 이야기가 급격히 흘러간다. 천재용에게도 봄날은 오기 시작한다.

 

역시 사람은 능력이 있고 볼 일이다. 아무리 임신을 했어도 실력이 있는 이상 주위에서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한다. 출신 일주일 앞두고 회사에 출근한 여성을 알고 있다. 대신할 사람이 없다.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겠다 했을 때 난리가 났었다. 대체불가능한 인력이란 그 능력이 남아있는 한 결코 홀대받는 경우란 없다. 그렇더라도 만에 하나라도 다른 두 여자PD들이 차윤희만 못하더라도 별 무리없이 일을 끌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자가 아닌 남자PD들이었다면?

 

여전히 숙제는 남는다. 남들보다 탁월해야 한다. 한참 남들 위에서 굽어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란 쉬운가? 같은 여성이 아닌 남성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실이란 그렇게 쉽지 않다. 드라마는 결국 드라마일 뿐이다. 차윤희의 복귀가 현실에 던져주는 메시지란 아무것도 없다. 흔히 하는 말처럼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한 마디 뿐. 억울하면 능력을 갖추라. 남들과 비슷한 능력이 아닌 한참 더 나은 능력을. 아직은 현실이다.

 

윤빈이 방일숙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성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일까? 조금 아쉽다. 팬과 스타의 관계였어도 좋았을 것이다. 굳이 남녀관계가 아닌 서로 힘을 주고 힘을 받는 팬과 스타의 관계로서 계속 이어갈 수 있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이제는 매니저와 스타다. 방일숙이 윤빈보다 생일이 빠르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오빠는 오빠, 누나는 누나다. 그것은 아이돌이라는 것이 세상에 나타난 이래 정해진 법칙이다. 영원히 방일숙에게 윤빈이란 오빠다. 아마 그 오빠가 다른 의미에서의 오빠로 바뀌게 될 모양이다.

 

아무튼 차윤희도 인정한다. 윤빈도 인정한다. 그러나 엄청애만 인정하지 않는다. 남남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혀 남인 윤빈과 이제 겨우 가족이 된 지 일 년도 되지 않는 차윤희만이 방일숙을 인정한다. 가족이기에 어쩌면 오히려 남보다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안타까운 이유다. 방일숙을 동정한다.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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