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 모정 아닌 자기애, 그런 딸을 보는 제 심정은 어떤데요?

까칠부 2012. 7. 16. 09:01

한이 많다. 억눌려 있다. 그래서 그것을 발산할 곳을 찾는다. 자신의 억울함을, 분노를, 간절한 바람을 대신해 이루어줄 수 있는 누군가다. 딸이고 바로 며느리다.

 

어쩌면 지독한 이기일 것이다. 딸을 사랑한다.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과 동일시한다. 딸이 곧 자신이다.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된다.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현실과 그리고 지나온 과거와 닥치게 될 미래가 모두 딸을 통해 보여지게 된다. 저렇게는 말아야지.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지. 딸의 존재는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이다. 엄청애(윤여정 분)에게 딸 방일숙(양정아 분)이란 없다. 엄청애가 보고 있는 것은 딸 방일숙이 아니다. 엄청애 자신이 만든 관념이다. 자신의 후회와 미련과 꿈과 갈망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그것이 방일숙을 대신한다. 방일숙보다 한참 야무지고, 영리하고, 당당하고, 능력있는, 그래서 자신처럼 살지 않을 누군가. 그런데 현실의 방일숙이 그같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니 바로 화부터 내게 된다.

 

"그런 딸을 보고 있는 제 심정은 어떤데요, 어머니?"

 

정작 이혼으로 인해 가장 크게 상처입은 것은 방일숙 자신이다. 그토록 힘들게 한 결혼이었다. 모두의 반대 속에 겨우 결혼해서 모든 애정과 정성을 기울여 남편을 뒷받침해왔다. 그런데 배신당했다. 바람을 피우고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위자료도 양육비도 없었다. 딸 민지와 함께 이혼녀가 되어 혼자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도 정작 낳아준 엄마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방일숙이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런데도 엄청애는 자신이 더 불쌍하다. 엄마이기 때문에. 딸을 둔 엄마이기 때문이다. 딸의 행복을 바라기에 딸의 불행이 더 가슴아프다. 심지어 당사자인 방일숙보다도 엄마인 자신의 가슴이 더 앞아 원망을 쏘아내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아파하고 있는 방일숙에게 원망과 비난을 쏟아내고 만다. 엄청애가 딸인 방일숙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엄청애가 가엾게 여기는 것이 딸인 방일숙이 아닌 자신이듯, 그녀가 방일숙을 통해 보고 있는 것도 방일숙을 딸로 둔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단지 딸에 자신을 투사하며 딸에 투사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딸을 사랑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바라고 있던 딸의 모습이라는 것도 자신을 투사한 이상적인 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이다. 어째서 자신의 바람에 미치지 못하는가고. 자기가 기대한 만큼 하지 못하는가고. 그리고 그래서 며느리인 차윤희(김남주 분)에게마저 화를 내고 마는 것이다. 딸에 대한 분노를 차윤희에 대한 원망으로 돌린다. 딸에 대한 원망을 차윤희에 대한 분노로 돌린다. 어째서 며느리인 차윤희마저 자기 마음과 같지 않은가. 자기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존재하고 행동하는가? 차윤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가지고 그녀는 자신의 원망과 분노를 그녀에게 모두 돌려버리고 만다. 남이라며. 결정적인 순간 차윤희는 가족이 아닌 남으로서 시어머니인 엄청애로부터 거부당하고 만다.

 

말 그대로다. 이기인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한다. 정확히는 자신만을 불쌍히 여긴다. 지독한 한이 자기에 대한 연민이 되고, 자기에 대한 연민이 시린 한 만큼이나 지독스런 자기애로 발전하고 만다. 그러한 자기애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려 하니 결국 다른 사람의 존재는 지워지고 마는 것이다. 딸만 남고 방일숙은 지워진다. 며느리만 남고 차윤희는 사라지고 만다. 그럼에도 그것을 딸에 대한 사랑이라 여긴다. 무서운 것이다. 딸이 아닌 자기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딸에 대한 투사를 통해 딸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착각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어머니라고 하는 존재와 함께 방일숙을 압박하게 된다.

 

차라리 이혼보다 어머니가 더 무섭다. 차라리 이혼의 아픔보다 어머니에게 알려지는 것이 더 무섭고 아프다. 그것마저 탓한다. 어째서 강하지 못한가? 어째서 야무지지 못한가? 강하고 야무진 것은 엄청애 안에 있는 또다른 방일숙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의 방일숙은 그로 인해 더욱 큰 절망과 상처를 입고 만다.

 

너무 흔히 보는 모습이기에. 어떻게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이 자식을 망치는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식에게 투영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일그러진 사랑이 결국 자식을 지우고 자식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와 낙인을 남긴다. 여전히 어머니에게 구속되어 자신을 찾지 못하는 방일숙처럼.

 

하여튼 그런 점에서 방귀남(유준상 분)은 진짜 남자일 것이다. 위기상황이었다. 존재를 부정당했다. 깡그리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말았다. 자존에 영향을 미치고 만다. 상처가 매우 깊을 수 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끝내 집안에서 겉돌고 만다. 다시는 가족에게로 돌아올 수 없다. 차윤희를 지키는 동시에 가족도 지킨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그 순간 방귀남의 결정이 아니었다면 드라마는 끝나고 말았다. 더 이상 시댁식구와 며느리의 관계가 사라지는데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는 드라마가 어찌 성립할 수 있을까?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는대로 사람의 마음도 따라 움직인다. 방말숙(오연서 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심지어 그토록 싫어하던 올케 차윤희에게마저 화해를 시도할 정도로 차세광(강민혁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방말숙은 차윤희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차세광은 정작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다행스럽게도 그런 차세광과 방말숙을 차윤희가 보고 말았다. 계기가 될까? 어차피 차윤희에게 들켰으니 남은 것은 방말숙의 남자로서 누나 차윤희와 맞서는 것 뿐이다.

 

결국 일보전진에 이보후퇴다. 오해하고 말았다. 방이숙(조윤희 분)이 떠날 것이라고. 떠나려 한다고. 방이숙 만큼이나 천재용(이희준 분)도 자기에 대해 자신이 없다. 하기는 누나들이 그리 잘났다고 했다. 아버지가 그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했었다. 자신감이 결여되었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동안 바보같을 정도로 방이숙의 주변만 돌고 있었던 이유였다. 한규현(강동호 분)은 그에 비해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 덕분에 제대로 자살골을 넣었으니, 굳이 떠나지 않으려 하던 방이숙의 등을 떠밀고 만다. 그조차 방이숙을 위한다는 헛된 배려심에.

 

안 되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안된다.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두 사람이 만나니 이렇게 서로 끝없이 엇갈리고 만다. 그것이 또 귀엽기도 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유일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서툰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의 사랑을 이루어갈까? 물론 방이숙의 입장에서 아직 그 감정이 사랑인가는 확실치 않다.

 

세상에 맹목적인 선의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사유가 동반되지 않은 선의는 오히려 악의보다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선의는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악의라면 단호히 거부하고 말면 그만인 것을 선의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마저 그것을 착각한다. 선의라고. 어머니로서 딸을 걱정하는 것이라고 모정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과연 모정이었을까?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았다. 걱정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상은 따로 있다.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혼란은 더욱 깊어진다. 아직 방귀남의 실종에 대해 엄청애만 모르고 있다. 그녀가 알게 된 이후를 걱정하게 된다. 그녀는 너무 약하다.

 

시월드에 새로운 장애가 생겼다. 차윤희의 시집살이에 적신호가 켜졌다. 시누이인 방일숙과 차윤희는 동지다. 헤쳐나가야 한다. 풀어갈 것이 많다. 아직 끝이 남았음을 안도한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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