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유령 - 작가의 무리수, 경찰의 맹목적인 범인몰기가 무섭다.

까칠부 2012. 8. 9. 07:47

문득 그런 상상을 해본다. 어느 경찰이 있다. 그 경찰이 어떤 계기로 필자를 살인범이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니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를 처벌받게 하기 위해 증거를 만들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을 협박해 거짓으로 꾸민 서류에 대해 증언할 것을 강요하고, 심지어 그가 저지를 죄를 덮어주겠다는 거래까지 시도하려 한다. 과연 기분이 어떨까?

 

제목이 <유령>인 이유를 지금에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다. '유령'이란 다름아닌 법이다.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이고 규범이다. 조현민(엄기준 분)은 지금껏 사회적 가치와 규범을 조롱하며 무수한 범죄를 저질러왔다. 그리고 그런 조현민의 범죄를 거짓으로 죽은 사람의 행세를 하는 김우현(소지섭 분)이 쫓고 있었다. 아니 박기영(최다니엘 분)이라 해야 할까?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범인이라 확신하는 조현민을 잡기 위해 박기영과 권혁주(곽도원 분)는 증거의 위조를 통해 법의 판단을 기만하려 한다. 얼핏 무섭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허깨비다.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지 법 그 자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령이다. 지금으로선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작가이기에 범하는 오류일 것이다. 무엇보다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너무 명백하다. 조현민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다른 가능성이란 생각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그래서 무리수를 둔다. 흥미로운데 유독 무리수가 많다. 작가가 너무 앞서간다. 현실에서 실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생각해 보라. 아니 굳이 가정할 것도 없다. 경찰과 검찰의 너무나도 확고한 믿음으로 억울하게 증거가 조작되어 심지어 사형까지 당한 이들이 현실에서도 적지 않다. 모두가 너무 정의롭고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한 이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었다.

 

최종판결이 나기까지 그는 어디까지나 용의자다. 용의자는 범인이 아니다. 심증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 증거가 없는 믿음이란 추론에 불과하다. 아니 설사 증거가 있더라도 그것이 믿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믿음처럼 거짓말을 잘하는 것도 없다. 믿음이 사실을 선택하도록 만들고, 판단을 한정짓는다. 결과는 어디까지나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들에 의해 밝혀진다. 선택되어져서도 꾸며져서도 안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이다. 그것을 무시한다. 99명의 범죄자를 잡기보다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없도록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경찰인가?

 

무엇보다 김우현의 이름으로 조현민을 고발하고 증언까지 했는데 그러나 정작 그 당사자가 김우현이 아니었다. 차라리 박기영이 솔직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를 바랐다. 차라리 박기영임을 밝히고, 혹은 자신이 박기영임을 밝히는 과정에서 조현민을 함정에 빠뜨린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며 써야 하는 대본에서 그렇게까지 치밀한 짜임새를 기대하기란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김우현이 아닌 박기영이 김우현이 되어 조현민을 고발하고, 오히려 그같은 사실을 밝히려는 시도를 막으려 하는 경찰로서의 본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만다. 한 사람의 범죄자를 체포하여 처벌하기 위해서는 이런 정도의 불법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렇게 법마저 무시하고 마는 그들의 정의감이란 무서운 것이다. 조현민을 잡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현실이 두렵다.

 

균형을 잃어버렸다. 사이버수사국이라고 하는 배경과 정보화시대 인터넷을 통해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들을 다룬다는 처음의 참신한 시도는 사이버세계를 벗어난 현실에서의 흔한 스릴러물로 바뀌고 말았다. 악역으로서 조현민은 그다지 스케일도 크지 못하고, 더구나 비밀스럽지조차 못하다. 마지막까지 조현민이 가진 힘과 맞서거나 아니면 조현민 자체를 추적해야 하는데 조현민이 가진 힘이라고 해봐야 해커그룹 '대형'이 전부이고, 조현민의 정체는 이미 드러난지 오래다. 그렇다고 사이버수사만으로 끌고가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 얼마나 시청자가 호응할지 미지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쉽게 가려 한다. 경찰도, 작가도, 제작진도, 너무나 쉽게 드라마를 끝내려 한다. 어렵지만 결국 가장 쉬운 결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애초의 취지는 사라지고 무리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조현민을 연기한 엄기준이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권혁주 역을 맡은 곽도원 역시 제대로 양념을 쳐주고 있었다. 처음의 독특한 소재와 완성도있는 대본과 연출로 인한 관성도 있었다. 실망이란 기대가 있기에 하는 것이다. 대미다.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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