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서 아무리 미안하다고 사과한다고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잘못을 용서받았다고 지은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정작 당사자인 방귀남(유준상 분)에게는 용서받고 난 뒤임에도 여전히 엄청애(윤여정 분) 앞에서 죄인이 되어 있는 장양실(나영희 분)처럼 말이다. 이제와서 장양실을 원망한도 그동안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것이 한이다. 지은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억울함이나 고통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여전히 남아 썩어간다. 썩어가며 악취를 품은 독을 만들어낸다. 자신을 해치고 주위를 해친다. 시간이 흐를수록 악취는 더 깊어지고 독기는 더 독해진다. 단지 모를 뿐이다. 그 순간에조차 사람은 미련스럽게 그 독기들을 애써 꾹꾹 눌러 참아내려 하고 있다. 그저 모른 척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사라지겠거니.
하기는 그것이 자기의 죄라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치러야 할 댓가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자기탓들을 많이 한다. 그것이 다시 지독스런 독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앞에 두고서도 혹시나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 물러서려 하는 방일숙(양정아 분)도 그런 점에서 엄청애의 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방이숙 또한 이제서야 잘 태어났다고 말해주는 천재용(이희준 분)의 말에 새삼 감격해하고 있었다.
고통을 받아들인다. 그것을 참는 데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제 괜찮아. 이걸로 된 거야. 속은 짓물라러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래도 평생 그렇게 모른 척, 아예 없는 것처럼 자신을 속여가며 견뎌낸 사람들은 대단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을 어딘가에는 쏟아내고 만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분노를 드러냈을 때 오히려 엄청애는 그동안 그토록 대립각을 세우던 며느리 차윤희(김남주 분)에게 한없이 관대해지고 있었다. 사실 그녀에게 진정 원망스러운 것은 다름아닌 남편과 시어머너니였을 터임에도.
장양실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방귀남을 잃어버리고 바로 장양실이 엄청애에게 자신이 방귀남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렸다면 그다지 큰 원망이나 비난 없이 엄청애로부터 너무나 쉽게 용서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한이 그다지 크지 않았으니까. 자식을 잃어버린 아픔과 상처가 이렇게까지 커지기 전이었으니까. 자식을 잃어버린 죄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시어머니와 남편(장용 분)으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과 무시를 당해왔었다. 그 모든 아픔과 억울함이 그것이 자신의 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한순간에 폭발해버리고 만다.
모두 장양실의 잘못이었다. 장양실이 저지른 장양실의 죄였다. 자기에게는 아무런 죄도 잘못도 없었다. 억울함이 깨어난다. 분노가 깨어난다. 차라리 증오가 되어버린다. 거부하려 든다. 부정하려 든다. 그토록 공경하며 모시던 시어머니도, 이런저런 원망이나 미움마저도 정으로 길들여진 남편마저도, 그나마 그 앞에서 더 심하게 못하고 스스로 먼저 도망나오고 마는 것은 서글프기까지 한 그녀의 선량함일 것이다. 자기를 탓하는데는 익숙해도 누군가를 원망하는데는 익숙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아무렇지 않게 탓하고 다투고 험담을 할 수 있는 며느리 차윤희(김남주 분)는 방귀남의 말처럼 아들보다 더 가까운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용서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용서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상처주었다. 아무라도 좋았다. 단지 그 대상이 엄청애였을 뿐. 며느리였다. 그리고 아내였다. 잃어버린 아이의 엄마였다.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아이를 놓아두고 온 아이의 엄마였다. 그래서 원망했다. 그래서 비난했다. 그래서 탓을 돌렸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독이 되었다. 자신들도 나름으로는 그것이 독이 되지 않도록 그리 한 것이었을 테지만, 자신들은 후련해지는 대신 다른 곳에서 독이 자라고 있었다. 영영 모른 채 그렇게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살았다면 아무 문제 없었으리라.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면. 오히려 자식잃은 어미인 그녀를 누군가 보듬고 가만히 토닥여주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녀의 장양실에 대한 원망도 지금처럼 깊었을까? 한순간에 전혀 모르는 참처럼 비난하고 원망하려 했을까? 차라리 장양실은 속이 후련하다. 용서란 큰 짐이다. 엄청애가 아무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장양실의 짐이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뒤늦게 비난이라도 듣고 눈물이라도 흘리니 마음이 짐이 한결 가벼워진다. 정작 내쫓기듯 집을 나서는데 표정이며 몸짓이 한결 후련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가장 자유롭다.
아무튼 그래서 이제서야 엄청애도 한결 솔직해진다. 짐이 가볍다. 최소한 죄인의 멍에는 벗어버렸다. 자신의 잘못이라는 자책감 역시 훌훌 털어버렸다.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다. 자신이 가장 억울한 피해자일 것이다. 아들에게도 당당히 말한다. 네가 뭘 아느냐고. 그렇게 오랜만에 찾아 어려워하며 애지중지하던 아들에게 전혀 남처럼 대할 수 있다. 오히려 그동안 아옹다옹 다투기도 많이 다툰 며느리가 더 가깝다. 하기는 서로 거리가 없기에 다툴수도 있고 서로 부딪히고 얽힐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흐를까? 그러나 여전히 엄청애는 무척이나 선량하다는 것이다. 무척 도덕적이다. 어머니다. 며느리다. 아내다. 그렇게 살아왔다. 엄청애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며느리이고, 아내로서. 딸이거나 혹은 언니였다. 누군가에게는 동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다만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당당해진 시어머니 엄청애를 다음주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용서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단지 지금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언제까지인가는 엄청애 자신만이 알 테지만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행위란 작용이고 작용이란 변화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주위에 변화를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변화일수도 있지만 안좋은 변화일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양보만 할까? 역시 엄청애의 깊은 한이 방일숙과 방이숙을 그렇게 키우도록 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반발로 방말숙(오연서 분)은 저리 천방지축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래서 정작 가장 소중한 자신과 그로 인해 자신의 주위에 깊은 상처를 남기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자기가 행복해야 주위가 행복해진다. 자기가 즐거워야 주위도 즐거울 수 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방일숙이 불행한데 어머니인 엄청애가 행복할 수 있을까? 방일숙이 자신을 위해 그리 먼저 양보해준다고 마지막 팬이며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매니저를 잃어야 하는 윤빈(김원준 분)은 과연 행복할 것인가? 그래서 인기를 얻고 연예인으로서 성공한다면 윤빈의 마음은 과연 즐겁기만 할 것인가? 그것은 누구를 위한 양보이고 희생인가? 결국 그래서 어머니 엄청애 역시 지금 파탄을 맞고 말았다.
솔직해지는 것이 좋다. 가끔은 이기적이 되어도 좋다. 자신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행복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안다. 다른 누군가가 기쁘면 자신도 기쁘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성가심과 불편함으로 인해 오히려 편해진다면 그것이 더 기껍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의 관계란 서로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 서로 폐를 끼치면서도 그것을 한없이 받아들이고 용서해가는 것이다. 아니 그조차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얼마나 서로 폐를 끼치고 그것을 받아들이느냐가 관계를 정의한다. 방일숙에게는 양보가 최선이지만 윤빈에게는 방일숙이 더 이기적이었으면 좋겠다. 윤빈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서다.
아무튼 천재용(이희준 분)과 방이숙 커플도 답이 없다. 나이만 먹었지 숙맥들이다. 천재용 또한 연애경험이 아주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덴 정작 제대로 된 연애는 그다지 경험하지 못한 듯 보인다. 하여튼 유치해 보이는 짓이란 일단 가리지 않고 모두 하고 만다. 닭살이다. 그런데 그것이 부럽다기보다는 그저 우습기만 하다. 때늦은 첫사랑일까? 이 커플은 보고 있기만 해도 그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가 되어 버린다. 그래도 기대처럼 잘 사귀고 있다.
지나친 관용도 가족을 해체시킨다. 엄청애의 그동안 쌓여온 분노와 원망이 지나쳐 차라리 허탈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다. 도리어 자신의 입으로 방귀남과 차윤희더러 미국으로 떠나라 말한다. 사랑이란 간섭이다. 관심이란 구속이다. 다만 그것이 선의에서 그리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엄청애의 마음씀씀이를 안타깝게 여기도록 한다.
가족의 위기다. 가족의 구성원들의 위기다. 모두가 막고자 했던 사태다. 그토록 막고 싶어했던 상황이다. 하지만 그조차 결국은 이기였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그렇게 크다. 스스로 죄인이 되어 집안을 지켜온 빈자리는 누구도 감당하지 못한다. 많은 어머니들이 그러하다. 차윤희는 아직 어머니가 되어 있지 못하다. 방일숙도 단지 딸일 뿐이다. 오늘이 두렵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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