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골든타임 - 마침내 모이는 외인부대, 의사가 진정 있어야 할 자리...

까칠부 2012. 8. 21. 09:26

원래 일이라는 것이 몰라서도 두렵지만 알아서도 더 두렵다. 모를 때는 당연히 모르니까. 그러나 알면 알수록 더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은 아직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알아가며 채워가는 것이 바로 지식이라면, 채워도 채워도 여전히 남아 있는 빈 자리의 크기를 알아가는 것이 바로 지혜일 것이다. 지식을 쌓기는 쉬워도 지혜를 갖추기란 어렵다.

 

과연 지금의 최인혁(이성민 분)이 있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그의 앞에서 죽어가야 했을까? 어떤 이들은 아예 죽어서 실려오고, 어떤 이들은 너무 늦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그저 죽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을 테고, 어떤 이들은 그나마 처치를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때마다 의사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그가 느껴야 했을 절망과 무력감은 이루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고작 환자 한 사람의 죽음으로 고민하는 이민우(이선균 분)가 그저 귀엽기만 하다.

 

지금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그만큼 위급한 환자다. 정상적인 처치가 불가능한 환자다. 어떤 치료방법은 확실하게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칼날 위에서 결정을 내린다. 어차피 치료하지 않아도 환자는 죽겠지만, 치료를 해도 죽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과연 지금의 자신의 판단은 옳은가? 하나의 경험과 지식이 쌓여갈 때마다 그만큼 피로와 회의도 쌓여간다. 그럼에도 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의사라고 하는 자존감, 의사라고 하는 자신의 사명감이 아니었을까. 도저히 병원안에서 배척당하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가 선택한 것도 의사인 자신을 필요로 하는 위험한 전쟁터였다. 그는 의사로서밖에는 살 수 없다.

 

그런 최인혁이기 때문이다. 아니 중증외상환자를 다루는 외상외과란 그런 곳인 때문일 것이다. 외상외과에 모인 면면들이 심상치 않다. 이민우야 당연히 자원했고, 그러나 강재인(황정음 분)은 실수를 거듭한 끝에 김민준(엄효섭 분) 외과장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견되었다. 박성진(조상기 분)은 정형외과장인 황세헌(이기영 분)의 대학후배에게 밀려 외상외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실패가 어울린다. 패배가 어울린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수도 없이 많은 절망과 좌절을 겪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기는 그러고 보면 이민우 역시 희망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아왔었다. 희망도 절망도 아무런 기대조차 없는 무료한 삶이었다. 그는 패배조차 하지 않은 무위한 존재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외상외과에 대한 기대와 사명감에 들떠 찾아온 지원자에게 최인혁이 냉소적이 되는 것은. 중증외상센터란 희망을 찾아 오는 곳이 아니다. 절망과 싸우는 곳이다. 절망과 싸운다는 것이 반드시 희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사람은 죽는 것이고 그 가운데 운이 좋다면 살아남는 사람도 생겨난다. 그런 각오로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일이 사람 죽어나가는 것 신경쓴다면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너무 밝다. 활기차다. 하지만 신은아(송선미 분)가 떠난 자리를 누군가는 대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야말로 의료계의 외인부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막다른 곳이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다. 유배되듯 변두리에 선 이들이 그곳으로 떠밀려 온다. 그곳에서 그들은 거대한 절망과 싸우게 된다. 그 선두에 최인혁이 있다. 누구보다도 주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하필 그 순간 박성진은 의사로서의 어떤 쾌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을 살린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 중독이다. 그는 의사였다. 다른 주류에 속한 이들이 빛을 찾아 움직인다면 그들은 그렇게 빛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만이 외상외과에서 견뎌낼 수 있다. 과연 신은아를 대신할 코디네이터는 그것을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의사를 보여준다. 의사의 본질을 보여준다. 희망조차 없는 극단에서. 그들이 진정 무엇과 싸우는 이들인가를. 그들이 진정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인가를. 의사들의 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의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최인혁이 죽인 환자의 수다. 이민우가 기억하는 환자의 수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 순간의 기쁨이다. 의사는 원래 어둠 속에 존재하는 이들이었을 터다. 가장 아프고, 가장 상처입고, 가장 절망에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의사는 존재한다. 의사란 직업은 원래 성직에 속했다. 사제이며 제사장이었다. 빛과는 상관없는 그곳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그 모습이야 말로 의사와 닮았다. 과연 그들이 원래 있어야 하는 곳이었을 터다.

 

그림이 만들어진다. 병원에서도 변두리. 주변인들이다. 고작해야 인턴나부랭이고, 학벌에 밀려난 떨거지 팔로우고, 모두로부터 따돌림당하는 문제아다. 결혼이라고 하는 축복을 앞에 둔 신은아(송선미 분)는 그래서 아직 겉돈다. 외상외과에 남고자 한다면 그녀 또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사장의 지원은 사소하다. 어떠할까?

 

현실적이면서도 재미란 과연 무엇인가를 아는 설정일 것이다. 그렇게 패잔병들이 모이는 것이 좋다. 연민과 더불어 투쟁심을 자극한다. 그들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자신을 투영하며 그들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사람을 살리는 사명이 있다. 그 승리는 무엇보다 고귀하다. 성장이 있다. 당연히 시련도 있을 것이다. 그 끝에 과연 무엇이 기다리는가? 재미있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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