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시어머니 쪽에서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며느리라고 하는 말뜻에 대해서다. 아들의 아내이기에 며느리인가? 아니면 자신의 며느리이기에 아들의 아내인 것인가? 아들이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다.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다는 이유 또한 역시. 자신은 여전히 아들의 어머니였다.
전통적인 혈연주의가 왜곡되어 나타나는 대표적인 오류일 것이다. 아들의 어머니다. 아들의 아내다. 아들의 가족이다. 아들과 자신은 가족이다. 아들의 가족 또한 따라서 아들의 어머니인 자신의 가족이 될 터다. 아들의 아내는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들의 어머니라고 하는 권위까지 더해지며 아들의 아내에게 먼저 며느리이기를 요구하게 된다. 박상욱이 전처 김명희와 헤어지게 된 계기도 며느리가 전적으로 자신의 가족이기보다 친정어머니의 딸인 채 남아 있는 것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소유와 집착이다. 며느리는 온전히 며느리여야만 한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아 억지로 헤어지게 만든 김명희지만 친정어머니마저 죽고 외로운 처지가 되어 누구보다 살갑게 시어머니에게 대한다. 그에 비해 이미 전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까지 있는 최주나는 그런 시어머니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다. 아들의 남편으로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자기의 며느리로서는 실격이다. 아들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며느리를 찾아 그래서 시어머니는 아들과 이미 이혼한 전처 김명희와 시어머니와 며느리로서 살갑게 지낸다. 친정어머니가 죽고 없다는 사실과 김명희의 살가운 태도가 그녀가 요구한 며느리의 조건을 충족시켜준 것이다. 며느리가 곧 아들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
그같은 시어머니의 집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친혈육에 대한 집요한 고집이다. 이미 아들과 결혼한 여자의 딸로서 아들을 아버지라 따르고 있다. 아들 역시 그런 아이를 딸로써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는 아들의 딸일 뿐 자신의 손녀가 아니다. 손녀가 필요하다. 역시 시어머니 자기에게서 확장되는 혈연주의의 연장일 뿐이다. 아들의 딸로써만이 아닌 자신의 손녀로써도 혈연은 필요하다. 아들이 가정이 깨지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가정이 아니었으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가족이란 자신을 중심으로 한 혈연만을 의미하므로.
그렇게 배워왔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지금껏 살아왔을 것이다. 그것이 옳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혈연만이 가족이라고. 혈연의 가족이라면 내게도 가족이 되어야 한다고. 박상욱의 친구가 박상욱에게 해주는 조언도 그같은 단면을 보여준다. 단지 자기의 아내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에게 딸인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가장으로서 어머니에게도 여전히 아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주나에게 가족이란 단지 딸과 남편 뿐이다. 시어머니는 단지 남편의 어머니일 뿐이다.
하기는 어째서 김명희는 굳이 헤어진 남편과 그 남편의 어머니에게 그토록 집착하는가? 여전히 전남편 박상욱에 대한 미련이 있다. 그에 대한 사랑의 감정 또한 어느 정도는 남아있다. 하지믄 그보다 그녀에게는 현재 가족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고 아직 재혼조차 않고 있는 그녀에게는 곁에 있어줄 가족이란 아무도 없다. 차라리 그저 옛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떠나 양딸이 되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문제는 없었으련만. 그러기에는 그녀 또한 현실이 너무 외롭고 고단하기만 하다. 의지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이 다시 시어머니를 부른다.
며느리가 아니다. 아들의 아내다. 매제가 아니다. 동생의 남편이다. 동서가 아니다. 내 아내의 자매의 남편이다. 각각은 독립적이다. 각각의 가정은 하나의 독립된 단위를 이룬다. 나를 전제해서가 아니다. 자신은 단지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만 충실하면 된다. 자신의 누이이지만 또한 다른 누군가의 아내이기도 하다. 그 역할과 관계를 존중한다. 어쩌면 지나치게 친족관계를 표현하는 어휘가 다양하다는 것이 그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옛시어머니에게 휘둘려 가족관계를 복원하려는 희망에 부푼 김명희가 차라리 불쌍했다. 가장이어야 할 남편이 여전히 시어머니의 아들인 채 휘둘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박주나도 가엾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아버지라 믿었던 이로부터 버림받은 박주나의 딸이다. 배신이었다. 그는 가장이 아니었다. 남편도 아버지도 아니었다. 한심한 남자의 모습이다.
부부클리닉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부부다. 가족이다. 무엇에 우선해야 하는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전처에 대해.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에게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있지 않은가.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 흔한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마음이 무겁다. 의미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94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넝쿨째 굴러온 당신 - 어느새 마무리수순, 방정배 실직하다. (0) | 2012.08.27 |
---|---|
넝쿨째 굴러온 당신 - 가족의 의미, 부모의 자격, 양부모 오다. (0) | 2012.08.26 |
아랑사또전 - 사람이 된 아랑, 귀신을 놓아버리다. (0) | 2012.08.24 |
각시탈 - 이해석의 죽음과 비루한 식민지 지식인의 현실... (0) | 2012.08.24 |
아랑사또전 - 마침내 드러나는 켜켜이 깊은 구조, 비밀이 시작되다. (0) | 2012.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