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삶의 가치를 찾아 고민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러나 말한다.
"살아라!"
의학드라마를 보는 이유일 것이다. 삶의 의미도 가치도 일단 먼저 살고 난 다음에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든, 어떻게 살아가든,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그 또한 먼저 살고 난 뒤에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이 곧 존재다. 삶이 모든 것을 전제한다.
다리를 자른다. 중국집 배달일을 하는 사람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요리를 배달해야 한다. 그런데 그 다리를 자른다. 잘린 다리가 의족으로 대체된다. 더구나 오토바이를 타고 중국요리를 배달해 번 돈으로 여러 소년소녀가장들을 보살펴오고 있었다. 이제 그는 병원에서 퇴원하고 나면 다리도 불편해진 몸으로 무엇을 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또 그가 평소 후원해 오던 소년소녀 가장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이민우(이선균 분)도 고민한다. 어떻게든 박원국 환자의 다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박원국 환자의 다리를 자르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하지만 의사는 신이 아니다. 박원국 환자의 목숨과 다리를 모두 지켜주기에는 아직까지 의사의 팔이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 언젠가 그것이 가능한 때가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박원국 환자의 목숨인가? 아니면 다리인가? 그의 당장의 생명인가? 아니면 퇴원한 이후의 그의 삶에 대한 걱정인가? 의사는 무력하고 현실은 잔인하고 가혹하다.
결국 최인혁(이성민 분)의 판단은 옳았다. 다리로 가는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에 세균이 번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박원국 환자의 회복을 막고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잘라야 한다. 자르고 나니 박원국 환자의 상태다 빠르게 호전된다. 하지만 막상 정신을 차리려는 박원국 환자의 앞에 선 최인혁의 표정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의사로서 자신의 판단은 분명 옳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환자 자신의 몫이다. 다행스럽게도 박원국 환자는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래도 살아났다. 결코 담담할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일 테지만 그는 오히려 최인혁을 향해 위로의 말을 던진다. 과연 그는 강한 사람이다.
만일 환자가 박원국 환자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흔히 보게 되는 드라마속의 한 장면일 것이다. 굳이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다리를 잘리고, 혹은 팔을 잘리고, 아니면 특정한 부위를 의사의 판단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새 목숨과 바꾸게 되고,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서 깨닫게 된다. 자신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지금껏 해오던 자신의 일을 더 이상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것을. 그 상실감과 절망을 과연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절망한다. 체념한다. 절망이 분노와 원망으로 바뀌고, 분노와 원망은 다시 적의로 바뀌어 의사에게로 쏟아진다. 자학하며 스스로를 해치는 경우마저 있다. 극단의 감정이야 말로 바로 드라마라 하는 것일 게다. 그같은 극단의 감정 속에서 의사와 환자는 만나고 서로 갈등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그에 비하면 박원국 환자는 매우 특별한 경우일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리니 다리가 사라져 있는 당황스런 상황에서도 그는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하며 의사를 위로하고 있었다. 감동이라기에도 마치 스쳐지나는 듯한 그 담담함이 무척 새롭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삶 그 자체다. 무색무미한 물과 같은 것이다. 바람과 같은 것이다. 굳이 느끼려 하지 않아도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굳이 의미를 찾고 가치를 두지 않아도 그것은 그곳에 존재한다. 그것이 실존이다. 존재하는 것. 그것을 찾아주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그 한 가지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살린다. 담담하게 고민하고, 아무렇지 않게 갈등하며, 그러나 누구보다 단호하게 판단하고 행동에 옮긴다. 행동은 누구보다 정교하고 조심스럽다. 의사다. 이것은 의사의 드라마다.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환자의 충격이나 공포가 그리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 것은. 의사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드라마인 때문이다. 어떻게 고민하고, 어떻게 갈등하며, 어떤 과정을 통해, 무엇을 위해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러고서도 그들은 어떤 두려움과 어떤 사명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그 대상이 누구인가도 따지지 않고,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오로지 한 가지 환자를 살려야 한다.
그래서 대비되고 있는 것일 게다.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려 하는 의사들과 환자를 치료하고 난 이후를 생각하는 병원의 원무과가. 환자의 신원이 중요하다. 장차 치료가 끝나고 병원비를 받아낼 수 있을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마돗해 그토록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보이는 학과장들조차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자기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를 따져묻고 있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살릴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이송을 준비하는 사이 원무과에서는 그 이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연락을 받은 병원에서 환자를 받아 치료할 준비를 모두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그 순간 비용에 대한 걱정으로 피조차 함께 실어보내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환자를 살리는데 살리는 이외의 다른 이유가 개입된다. 역시 중증외상센터가 왜 필요한가를 강조하여 보여주는 부분일 것이다. 헬리콥터가 왜 필요한가? 환자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에게로 보내져야 한다. 의사는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상태의 환자를 받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의지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다른 논리가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오로지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 한 가지만이 그 안에 존재해야 한다. 다른 의지가 끼어들 때 결국 환자는 길위에서 목숨을 잃어버리고 만다.
일단은 살리고 본다. 일단은 살리기부터 하고 본다. 그 이후의 문제는 그 뒤에 생각할 일이다. 하기는 그래서 유괴범과 경찰 가운데 최인혁은 유괴범을 살릴 것을 선택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환자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다고 하는 현실이다. 가장 엄밀하고 치열하며 절박한 삶이 그 안에 있다. 그런 삶과 그들은 싸우고 있다.
그동안 느껴왔던 바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최인혁과 신은아(송선미 분)는 부부와 닮았다. 연인은 아니다. 그들 사이에는 사랑하는 사이라면 당연히 느껴져야 할 어떤 설레임이나 수줍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미운 정까지 들어버린 나이든 부부의 모습이 바로 그들의 모습일 것이다. 서로의 존재와 역할에 길들여져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서로에 대한 익숙함과 신뢰다. 부부란 역할이다. 관계다.
그래서 약혼자 앞에서와 최인혁 앞에서 신은아는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수줍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약혼자에 비해 최인혁 앞에서는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다한다. 투덜거리기도 한다. 심통도 부린다. 그런 신은아에게 최인혁 역시 짐짓 불퉁거리며 심술맞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연인이라기보다는 가족이다. 동료다. 두 사람은 결코 사랑할 수 없다. 만일 두 사람이 서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존경에 의해서일 것이다.
부부싸움을 한다. 새로운 코디네이터에 질투하고, 그런 질투에 대해 한심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장차 결혼해서 캐나다로 떠날 그녀를 질투하여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은 그곳에 그녀의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차마 떠나는 발길이 무거운 것은 그곳에 자신의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약혼자와는 사랑을 하고 최인혁과는 동반자로서 함께 한다. 나쁜 여자다. 남자들이 불쌍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여자이기도 하다. 여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아름답다.
마지막 장면에서 결려온 전화가 어떤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강대제(장용 분) 이사장에게 어떤 사고가 생긴 것 같다. 서로 다른 전화를 받는데 이민우와 강재인(황정음 분)의 대응이 똑같다. 이민우도 강재인의 할아버지가 사실은 강대제 이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강재인을 통해 어떤 야심을 가져보거나 하기에는 드라마의 분위기가 허락지 않는다. 어쩌면 드라마의 제목에서 보듯 강대제 이사장의 상황이 외상외과의 치료를 요하는 상황이 아닐까? 그것은 또 무엇을 위한 장치인 것일까?
사냥용 산탄총 사고와 관련한 진실이 지지부진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는다.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사냥용 산탄총은 어쩌면 범인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범인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누구의 것일까? 여자의 약혼자라는 남자의 불안한 표정이 신경쓰인다. 여자 또한 분명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조금은 지루한 감도 없지않다는 점에서 다음주쯤 한바탕 큰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특히 외상외과를 다룬 드라마에서 이처럼 잔잔하게 흘러지나가는 에피소드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은 너무 심심하다.
누가 되었든 살린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환자라면 일단 살리고 본다. 그 뒤는 그 뒤에 맡긴다.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는다. 삶이 그곳에 있다. 삶의 의미와 가치가 바로 그곳에 있다. 그래서 사람은 산다. 살아난다. 그곳이 병원이다. 그들이 의사다. 박원국 환자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최인혁의 표정이야 말로 그들이 의사인 이유인 것이다.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인턴 이민우 역시 마찬가지다. 생명은 그리 무겁고 중하다. 그들에 환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삶을 맡기려 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다큐멘터리와도 같다. 드라마가 부족하다. 극적으로 살아나고, 혹은 극적으로 죽고. 전화통화만으로도 사람은 너무나 간단히 죽는다. 박원국 환자의 소생은 잔잔하게 그저 지나가고 있다. 새로운 환자가 있고 그 새로운 환자를 살리려 한다. 의사가 있다. 병원이 있다.
특별하다. 재미를 넘어선 재미다. 감동을 넘어선 감동이다. 담담하다. 그래서 진하다. 물처럼 흐른다. 바람처럼 스민다. 그 한 가운데 자신이 있다. 의사가 있다. 즐겁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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