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밴드

TOP밴드2 - 작지만 큰 기회, 밴드들에게 소중한 이유...

까칠부 2012. 9. 9. 08:11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필자의 경우 '내귀에 도청장치'나 '트랜스픽션'과 같은 밴드의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귀에 도청장치는 가사가 너무 난해하고, 트랜스픽션은 전반적으로 지루하다. 트랜스픽션의 음반을 끝까지 듣는 것도 필자에게는 일이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필자가 그토록 무례하다 할 정도로 과격한 비판을 쏟아내면서도 끝내 <TOP밴드2>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감사하고 있다. 무척 고맙다. 다른 입장에서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저 좋아서만 음악을 듣는 일반 청자의 입장이 아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냉정하게 이성으로 그들의 음악을 판단하지 않으면 안되는 리뷰어로서의 입장이었다. 아마 필자가 음악평론을 하고 있다면 같은 입장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음악의 장르가 있다. 스타일이 있다. 유사한 스타일 안에서도 다시 호불호가 갈린다. 그저 즐기기 위한 음악이라면 그같은 필자의 기호 안에서만 소비하게 된다. 굳이 필자가 좋아하는 범위를 넘어선 음악을 일부러 에너지까지 소비해가며 듣지 않는다. 하지만 <TOP밴드2>라면 그런 음악들까지 모두 진지하게 들어주어야 한다. 모두가 진지하게 경연에 임하고 있기에 그것을 판단해야 하는 필자 역시 진지하다. 최대한 편견을 거두고 그들의 음악을 올바로 판단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다르게 들린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듣는 음악은, 귀로 듣고 머리로 판단하는 음악인 또한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내귀에 도청장치'나 '트랜스픽션'이 들려주는 스타일의 음악을 새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단지 감탄하게 되었을 뿐이다. 이들의 음악은 이리도 탄탄하고 야무지고 집요하며 아름답구나. 그들이 이 한 번의 공연을 위해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들이 그대로 들려지고 있었다. 그것을 필자는 듣고 있었다. 축복이 아니면 무엇일까? 더 폭넓은 다양한 음악을 듣게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새삼 좋아지게 된 음악이 있다면 그는 매우 큰 선물을 받은 것일 게다.

 

<TOP밴드2>의 가치일 것이다. 어째서 출연한 밴드들은 하나같이 <TOP밴드2>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감추지 않는가? '내 귀에 도청장치'가 단 한 번만이라도 공중파를 통해 들려주고 싶었다는 '실험'에 답이 있다. '예리밴드'가 들고 나온 자신들이 처음 만든 자신들의 색깔이 가장 잘 묻어난 음악에도 바로 답이 있다. 어디 가서 듣겠는가? 더구나 공중파에서. <TOP밴드2>라고 하는 형식을 통해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 보다 가까이 성의를 가지고 듣게 된다. 비록 2%도 안나오는 시청률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듣는 이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밴드에게도 기회일 테지만 시청자에게도 행운일 것이다. 프로그램 자신이 선택한 음악만이 아닌 밴드 자신이 선택한 음악까지 진지하게 들을 수 있다.

 

새삼 감탄한다. '내 귀에 도청장치'는 진정 음악을 잘하는 팀이다. '트랜스픽션'은 바야흐로 음악이 무르익어 있다. 그것은 감성적 호불호와는 다른 음악 자체에 대한 판단이다. 필자가 만일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그래서 음악에 대한 취향이 화석처럼 굳어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의 음악의 팬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머리로 좋은 것이지 그것에 굳이 공감한 것은 아니다. 필자로서 무척 불행하다 여기는 부분이다.

 

역시 필자가 선호하는 음악적 지향의 원점은 '해리빅버튼'에 있었다. 귀로 듣기 전에 먼저 심장이 뛰고 있었다. 심장이 뛰기 전에 혈관이 뛰고 있었다. 세포가 약동하고 있었다. 후려쳐온다. 그래도 그 원초를 아프게 후려치듯 갈기고 지나간다. 무어라 말해야할까?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시간과 공간을 가득 메우며 들려오는 음악을. '내 귀에 도청장치'의 음악이 보컬을 에워싸고 있었다면, '해리빅버튼'은 보컬이 그 가운데 섞여 함께 내달리고 있었다. 이런 느낌이었다. 보컬이란 단지 밴드를 이루는 악기의 하나에 불과하다. 배려하거나 할 필요 없이 보컬도 다른 파트와 함께 달려간다.

 

'내 귀에 도청장치'와 '예리밴드'에게서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은 바로 주술이었다. 최초 음악은 신령에게 바쳐지는 것이었다. 인간의 언어를 넘어선 언어로서 신에게 들려주던 이야기였다. 신명이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그만큼 '내 귀에 도청장치'와 '예리밴드'가 갖는 심연의 어둠은 인간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신과 소통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들은 주술사이며 제사장이었다. 청자는 신도였다. '내 귀에 도청장치' 쪽이 더 치밀하고 단단했으며, '예리밴드'는 그보다 더 거칠고 원시적이었다. 싫어하지 않는가. 그것은 거친 원초의 느낌을.

 

그나마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던 팀에게는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넘버원 코리안'은 <TOP밴드2> 출연 전까지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해리빅버튼'역시 <TOP밴드2>를 통해 결성하고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름이이미 알려져 있는 팀들 가운데서도 아직 대중이 알지 못하던 부분까지 진솔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마침내 대중에 들려주고 싶은 음악도 연주하고 있었다.

 

단지 그럼에도 조금 더 시청률이 높게 나와 이같은 기회를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분발했다. 최고점자 한 사람만 부활의 방에 앉은 채 새로 경연을 펼친 팀이 과연 그들을 대신하는가의 여부만을 보여준 장면이란. 긴장감이 있었다. 더구나 '넘버원 코리안'이 응원차 부활의 방으로 예리밴드를 찾아오면서 반전마저 있었다. 처음으로 경연하는 팀들의 점수가 궁금해졌다. 물론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쉽다면 벌써 몇 주째인가 하는 것이다. 중간에 올림픽이 몇 주 끼어 있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다시 패자부활전이라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치게 만들기 쉽다. 그래서 패자부활전에서 선택된 팀이 8강전에서 떨어진 트랜스픽션이다. 반복된다. 농담도 반복되면 지겹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바로 제작진이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 테지만. 필자가 제작진이었다면 '해리빅버튼'을 내세워 극적인 반전을 시도했을 것이다. 재미는 없는 대신 진솔했다. 얼마나 제작진이 밴드와 밴드음악을 사랑하는가 알 수 있었다.

 

조금은 지겨웠다. 그리고 재미에 대한 기대 자체도 없었다. 대신 음악은 알찼다. '내귀에 도청장치'와 '트랜스픽션'. 그리고 '해리빅버튼'. 음악이 신을 향한 언어라면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신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신에 대한 사랑을 거부하면 무당은 신병을 앓는다. '해리빅버튼'의 리더 이상수씨의 지병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음악을 하는 그는 누구보다 크고 멋있어 보인다.

 

차라리 출전밴드들끼리 점수를 매겨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가져본다. 정동하는 너무 어렸다. 심사위원의 권위보다 밴드들 자신이 느끼는 실제의 느낌도 듣고 싶었다. 한 팀 정도는 밴드들 스스로 올려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밴드들의 선택을 받는다. 조금은 잔인할까? 하지만 그보다 행복한 경우란 없을 것이다.

 

시즌3는 불가능한가? 지금으로서는 많이 아쉽다. 더 많은 밴드를 <TOP밴드>의 무대에 올려보고 싶다. 올해처럼은 안된다. 보다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제작진의 책임이다. 지금의 결과과는. 음악은 즐거웠다. 귀가 행복했다. 좋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