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있다. 대화에도 서두와 본론과 결론이 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음악이란 언어다. 말로 다하지 못하는 것들을 음악을 통해 더 깊이 더 풍부하게 그 너머까지 들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은 신에게 닿는다 했고 죽은 자를 부른다 했다. 음악에도 그래서 버스가 있고 브릿지가 있고 사비가 있다.
사실 불안했었다. 슈퍼키드의 스타일을 안다. 그들의 고집을 안다. 물론 현장에서 그들은 최고다. 그다지 슈퍼키드의 음악을 즐기지 않는 필자조차 현장에서는 그들의 분위기에 휩쓸리고 만다. 그런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는 탄탄한 연주력과 조화가 있다. 그것이 그들의 매력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모든 음악을 그런 식으로 연주하다가는 한계가 오고 만다. 더구나 이것은 경연이다. 다른 팀과 경쟁을 하는 것이다.
하기는 네 팀 모두 자기 스타일의 음악을 했다. 피터팬컴플렉스는 모던하면서도 몽환적이었고, 로맨틱펀치는 다이나믹한 보컬의 매력을 훌륭히 살려내고 있었다. 다름아닌 그 '피아'가 서태지의 음악을 연주했다. 슈퍼키드도 역시 슈퍼키드였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다른 밴드들은 강약이 있었다. 주와 종이 있었다. 듣는 이로 하여금 귀기울이게 만드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슈퍼키드는 시중일관 자기 이야기 뿐이었다. 보컬 허첵의 속사포와도 같은 말투 만큼이나 정신없이 수다처럼 내쏘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느새 듣는 이마저 지치고 만다.
김세황의 심사평을 이해한다. 과거 신해철이 하필 김세황을 '넥스트'의 기타리스트로 영입한 이유에 대해 그리 말한 적이 있었다. 무대에서 가장 액션이 좋은 기타리스트를 찾고 있었다. 김세황은 무대에서 가장 허세스럽도록 액션이 좋은 기타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다. 한 마디로 무대에서 놀 줄 안다. 하지만 '러브스토리'와 같은 서정적인 음악을 연주할 때는 스스로를 억누를 줄 아는 사람이 또한 김세황이다. 김세황이 말한 우리쪽이란 바로 그런 의미였을 테고, 그럼에도 절대 지행해서는 안되는 방향을 선택했다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놀 줄 아는 사람은 자제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다만 악퉁보다는 점수가 나았던 것은 그런 가운데서도 탄탄한 중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터팬컴플렉스의 무대는 오묘했다. 좋은데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일단 다섯 명이 나누어 부르는 노래를 혼자서 모두 소화해 부르기에는 호흡면에서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노래의 가사가 주는 메시지와는 달리 역시나 지난 사랑에 대한 추억인 듯 아련하게만 들리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누나는 너무 예뻤던 것일까? 누나는 너무 예쁘다 말하는데 어쩐지 듣고 있으면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첫사랑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서 그런 것도 있을 테지만 음악의 분위기 자체가 너무 그랬다. 그렇다고 또 너무 슬픈 것도 아니다. 한참 오래 듣다 보면 어느새 젖게 되는 그런 분위기? 경연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시간이 흐르고 과거를 회상할 때 듣는다면 괜찮았을 편곡이었다.
로맨틱펀치가 편곡한 퀸의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는 심사위원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보컬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로맨틱펀치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연이 계속되는 가운데 보컬 인혁의 목소리에 조금은 영향이 있는 것이 느껴지고는 있었지만 타고나기를 매력적으로 타고난 목소리였다. 아쉬움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이것은 레코딩이 아니다. 몇 달을 반복해 연주해서 기계적으로 들려주는 그런 음악이 아니다. 피터팬컴플렉스가 오묘했다면 그들은 명확했다. 그 점이 승부를 갈랐다. 연주를 말하기에는 필자의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저 훌륭했다.
피아가 서태지의 그룹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분명 언젠가 '울트라맨이야'를 들었던 것 같았다. 오래전 기억이었다. 피아의 음악을 듣는 순간. 이 음악이 원래 '울트라맨이야'였던가? 뭔가 기억에 아련한 벽이 둘러쳐지는 것 같았다. 한참 먼 거리의 벽이 빠르게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마치 교주의 주문과도 같았다. 이런 느낌이었다. 처음 '울트라맨이야'를 들었을 때 기대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단단함이란 철옹성과도 같고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창날과도 같다. 갑주를 두른 전사가 사제가 되어 대중을 선동한다. 청출어람까지는 아니라 했지만 필자가 듣기에 바로 이것이 원래의 '울트라맨이야'가 추구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만큼 인상적이었고 그만큼 가슴에 와 닿았다. 이제껏 <TOP밴드2>를 통해 들었던 연주 가운데 최고였다. 역시 김세황에게 동의하는 바다.
물론 이 점수가 과연 절대적인가? 필자는 신이 아니다. 설사 신이라 해도 음악 전문은 아닐 것이다. 아니 신이라 해도 개인의 마음까지 결정짓지는 못한다. 어째서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가 발표되고 나면 항상 논란이 끊이지 않는가? 음원사이트 순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누구도 절대적일 수 없다. 누구도 객관적일 수 없다. 단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선택들이 숫자라는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다. 그래서 로맨틱펀치와 피아가 남고 피터팬컴플렉스와 슈퍼키드가 떨어졌다. 그렇다고 피터팬컴플렉스와 슈퍼키드가 다른 두 팀에 비해 떨어진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TOP밴드2>에서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이들이, 그리고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그렇게 선택했고 결과가 나왔다.
즐거웠다. 뭐니뭐니해도 피터팬컴플렉스의 음악은 진짜였다. 슈퍼키드의 선택은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바로 그것이 슈퍼키드의 음악일 터였다. 로맨틱펀치와 피아, 그리고 심사위원석에 앉은 김종서, 정원영, 송홍섭, 장혜진, 김세황, 축제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토요일밤의 때아닌 호강일 것이다. 음악이 좋다. 밴드가 좋다. <TOP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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