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착한 남자 - 착하다는 것과 강하다는 것, 착한 남자의 이유...

까칠부 2012. 9. 27. 10:00

착한 것과 약한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잘못된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인정에 이끌려, 혹은 인연에 얽매여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심지어 돕고 만다. 그것을 과연 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는 물론 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당사자들 사이에서나 인정되는 착함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자면 사회보편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선이란 바로 그러한 사회의 일반적인 보편의 가치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 착해서 그래서 인정에 이끌려 거부하지 못하고 죄에 발을 담갔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이성도, 그리고 그렇게 판단한 옳음을 지킬 의지나 용기도 없는 그저 나약함에 지나지 않는다. 비난받는 것이 두렵다.

 

과연 필자의 속단이었던 모양이다. <착한 남자>라 해서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그런 착한 남자를 떠올렸다. 떠나간 연인을 잊지 못해, 아니 이미 잊은 지 오래임에도 과거의 인연으로 인해 쉽게 끊어내지 못한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이끌리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고뇌한다. 이미 남이 된 연인에게도 좋은 남자이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모습으로 남고 싶고, 그래서 모든 것을 가지려 헤매다 사건과 사고에 휘말리며 드라마를 만든다. 아마 <착한 남자>의 주인공 강마루도 그렇지 않았을까?

 

달랐다. 바다에 몸을 던진 한재희(박시연 분)을 뛰어들어 건진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당위였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그것은 어떤 사회적 가치나 규범에 우선한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절대적 원리다. 그러나 그것 뿐. 깨어나 애원하는 한재희를 향한 강마루의 표정은 전보다 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한재희의 속내를 읽은 때문이다. 그녀가 얼마나 추악한 욕망의 덩어리인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어디까지 바닥을 드러낼 수 있는지. 그 천박함과 저열함을. 그 괴물의 모습을.

 

선을 긋는다. 눈앞의 여자는 더 이상 자신이 사랑한 한재희가 아니다. 자신이 그토록 애닲게 그리고 걱정하던 예전의 그 한재희가 아니다. 전혀 모르는 여자다. 그리고 매몰차다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등을 돌린다. 그렇게 그는 나쁜 여자 한재희에게 나쁜 남자가 된다. 어쩔 수 없다. 나쁜 여자 한재희에게 착한 남자란 안민영(김태훈 분)과 같은 표리부동한 인지의 부조화와 같은 남자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자기를 속이며 살 수는 없다.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킨다. 단호히 행동으로 옮긴다. 어쩌면 강마루의 무심한 표정은 그같은 그의 냉철함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마저 타자화시킨다. 자신을 경멸하며 아마도 증오한다. 그래서 한재희의 악다구니와도 같은 한 마디에 쉽게 동요하고 만다. 그에게도 서은기(문채원 분)이란 그래서 구원과도 같다. 보기와는 다르게 한없이 해맑고 순수하다. 아이와도 같은 눈으로 전적으로 자신을 믿고 애정을 보낸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무기력하게 지내온 나날들이었다. 확실히 천재는 천재인 모양이다. 그 짧은 시간에 박재길(이광수 분)에게 물어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이내 자신이 과거 흘리듯 들었던 정보까지 끄집어내어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 만다. 아예 한재희가 서은기를 조롱하며 계약을 성사시키고 있을 때는 전화를 통해 당사자들을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로 협박하고 있었다. 그 뛰어난 능력으로 은둔하듯 바텐더로 연명하며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의미가 없다. 초코(이유비 분)란 그에게 혈연으로서의 의무에 불과할 뿐이다. 배고프면 밥을 먹듯 혈연이기에 오라비로서 자신이 그녀를 지켜야 한다. 어떤 자존도 자아도 없는 당연히 따라야 할 당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서은기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했다. 그녀가 자신을 선택했다. 그저 가만히 있는데 주어진 관계가 아니다. 노력을 통해 쟁취해야 하고 발전시켜너가야 할 주체적 관계다.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 아직까지는 강마루의 서은기에 대한 감정이 어떠한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의미있는 존재가 된 것 같다. 무언가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 곁에 있으면.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가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서은기는 말한다. 스스로 그러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한재희란 단지 핑계에 불과하다. 그도 역시나 서은기와 같은 누군가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적으로 자기를 믿어주고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그래서 그로부터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다는 실감을 갖고 싶다.

 

화장도 서툴다. 그보다 더 서툰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저 올곧다. 한 번의 배신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 앞에 하염없이 올곧기만 하다. 그 나이를 먹고서 고작 몇 번 만난 것이 고작인 남자를 위해 밤늦게 길거리에 주저앉아 잠든 채 기다리고 있다. 언제 오겠다는 확실한 약속조차 없이 설사 오지 않더라도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강마루가 냉철한 이성이라면 서은기는 순수한 감성이다. 세상을 보는 눈도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서툴고 순수하다. 그것이 한재희에게 곤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욕심내려 해서가 아니라 단지 아이처럼 자기의 것을 빼앗기기 싫은 것 뿐이니. 아이가 살기에 세상은 무섭고 험하기만 하다. 그런 서은기에게 강마루는 마치 동화속 왕자님처럼 그녀의 앞에 나타나 곁에 머물러준다. 심지어 도와도 준다.

 

버림받았다. 남겨졌다. 한재희의 비극의 시작이다. 그리고 안민영의 비극의 시작이기도 하다. 진정 자기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욕망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그들만의 외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민영이 한재희를 위해 필사적인 이유다. 그들은 이미 동지이므로.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동반자이므로. 설사 한재희가 그를 끝까지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얼마든지 한재희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 다만 그 끝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송중기를 위한 드라마다. 확실히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송중기만 보인다. 그만큼 그의 외모나 연기력, 무엇보다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그의 무감동한 표정이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 같다. 그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기적과 같을 것이다. 문채원은 송중기의 파트너로서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순수를 제대로 연기해 보이고 있다. 다만 박시연의 악녀연기가 가끔 무너지고 하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악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착한 남자, 그러나 착하지 못한 남자. 착하지 못하지만 결국 착해질 수밖에 없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를 착하게 만드는 여자. 아마 그런 이야기일까? 설레어하는 문채원을 보는 필자 자신도 설레었다. 드라마에 대한 필자의 설레임과 닮았을 것이다. 재미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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