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저씨>에서 주인공은 아이를 납치해 간 범인들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너희는 내일을 살지? 나는 오늘만 산다."
앞만 보다 보면 발밑을 보지 못한다. 물론 발밑만 조심하다가는 또한 앞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어디 있으며 무엇을 하려 하는가.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누군가는 내일을 살려 하고, 누군가는 오늘만을 살려 한다.
바보다. 김민준(엄효섭 분) 외과과장이 잘 보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너무 의욕이 넘쳐서도 곤란하다. 인턴이 치는 사고는 어떻게 윗선에서 커버가 가능하다. 그만큼 인턴에게는 큰 권한도 기회도 주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레지던트 쯤 되면 그때는 사고를 치면 아주 큰 사고를 치게 된다. 그나마 인턴이던 시절에도 이민우(이선균 분)는 윗선에서조차 감당할 수 없는 사고를 너무 많이 치고 있었다.
외과에 레지던트를 지원했다. 바로 그 예비면접날이다. 그런데 응급환자가 있다. 그토록 고대하던 헬리콥터를 타고 환자를 이송해와야 하는 일이 생겼다. 다른 것은 젖혀둔다. 레지던트를 지원했으면서도 예비면접까지 무시한 채 오로지 헬리콥터를 타고 환자를 구하러 갈 생각 뿐이다. 최인혁보다도 더한 바보다. 도대체 이런 바보를 어디에 쓸까?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영광과는 거리가 먼 자리다. 항상 죽음과 마주한 채 승산없는 싸움에 임해야 한다. 당장 숨이 끊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위독한 환자에, 설사 살리더라도 평생의 후유증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환자를 치료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의사의 보람과는 그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언제 어느때 환자가 들이닥칠지 모르니 항상 대기해야 하는 격무에, 초를 다투는 위급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피로감에, 그럼에도 그다지 결과가 좋지 못한 절망까지. 그런데도 중증외상이란 자체가 돈이 되지 않는다. 병원 입장에서도 적자이고, 의사에게도 돌아가는 경제적 혜택이 적다. 누가 그런 힘들고 위험하고 보상도 적은 일에 자신을 투자하겠는가?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소명이다. 내가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 자기중심적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은 항상 자기중심적이다. 그 자기가 때로 타인을 향하기도 한다. 레지던트를 지원했으면 그 또한 해당 과의 사람들과 예비면접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지원을 했으니 당연히 면접을 볼 테고, 그렇다면 예비면접에서도 보게 된다. 그런데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그 이기가 환자를 살리는 의사로서의 만족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는 어찌되었든간에 드라마의 주인공인 것이다.
의사로서의 장래를 걱정하는 젊은 의사들이 있다. 그리고 선배로서 자신의 과를 지키고 이어갈 것을 걱정하는 의사들이 있다. 재능있는 후배들를 남기고 싶어한다.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를 스스로 고민하고 갈등한다. 의사로서 오늘을 살고, 그리고 인간으로서 내일을 산다. 어수선한 가운데 과연 이민우는 인턴이었구나. 가을에 어울리게 시간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의사로서의 그들의 앞날이 그렇게 결정된다.
강대제(장용 분) 이사장이 다시 깨어나려 한다. 결국 그렇게 정리된다. 강대제 이사장이 깨어나고 나면 다시 모든 것은 강대제 이사장을 중심으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동안 강재인은 무엇을 한 것인가? 여기부터가 숙제다. 강재인을 살리면서 강대제 이사장의 귀환을 적절히 조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시즌제라면 어떻게 해도 상관은 없다. 아직도 필자는 <골든 타임>의 시즌제에 대한 야망을 버리지 못했다.
여전히 관료적이고 행정적인 현장과 그 현장을 채우는 의사가 아닌 인간적인 감정들. 앞을 보고, 위를 보고, 옆을 보고, 뒤를 본다. 누군가는 자기가 선 그 자리만을 본다. 고집스레 그것만을 보려 한다. 바보다. 그런 바보가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제 끝이다. 오늘이면 마지막이다. 어떻게 마무리지어질 것인가. 어떻게 끝맺어질지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게 알차게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아쉬움 만큼이나 기대가 크다. 기대 만큼이나 아쉬움도 크다. 서운함일 것이다. 하지만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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