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 딸 서영이 - 진부하지만 분명한 멜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기대하다.

까칠부 2012. 9. 30. 10:09

모든 것을 소유한 남자와 무엇도 소유하지 못한 여자.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었던 남자와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소유해 본 기억이 없는 여자의 만남. 남자는 자기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이 당황스럽고 여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이 두렵고 어색하다.

 

사실 다른 가능성이란 거의 드물다 할 수 있다. 가난도 어지간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다. 그야말로 가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머물던 단칸셋방조차 사기를 당해 빚을 지고 쫓겨난 아버지와 동생을 위해 내주고 고시원을 전전하던 처지다. 빈몸으로 단지 가정교사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입주과외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과외를 하는 집 대단한 기업의 경영자의 아들인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여자의 선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자존심마저 내주면 남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게 된다. 흔히 말한다. 쥐뿔도 없는데 자존심만 세다. 바로 그 쥐뿔도 없기 때문이다. 쥐뿔도 없기 때문에 마지막 자존심에 의지해 버티게 된다. 그마저도 놓아 버린다면 그때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존엄도 양심도 모두 그 자리에 놓아버리게 된다.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다. 이서영(이보영 분)이 강우재(이상윤 분)에 대해 당당하기보다 뻣뻣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당한 것이 아니다. 겁먹고 움츠러든 것이다. 혹시라도 무시당할까봐. 혹시라도 경멸당할까봐. 그래서 상처입을까봐. 그리고 그런 이서영의 반응이 강우재에게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서영 자신에 대해 매력을 느낀 것도 느낀 것일 테지만 이제껏 누구도 그런 적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대한다. 화나게 하고 당황하게 하고 그러면서도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이서영에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그럼에도 그는 혜택받고 자란 이로서의 느긋함을 잃지 않는다. 다그치고 몰아세우기보다는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안다. 그것이 이서영을 편안케 한다.

 

자존심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상처받기 싫어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드러내 보이지만 그것은 여린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위해서. 특유의 무표정조차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게 절박하게 간절하게 지금을 버텨왔다. 마지막 자신이 진정으로 지켜야 할 한 가지를 놓지 않기 위해. 이제는 관록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은 때가 되었다. 아름다우면서 이서영이 가는 매력을 그 이상으로 표현해 보여준다. 원래 이보영은 매력적인 배우였다.

 

그 밖에는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바로 그런 단순함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쉽다. 간단하다. 이해하기 편하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세상의 불행이란 불행은 모두 한 몸에 짊어진 듯하던 여자가 비로소 자신을 이해해주는 혜택받은 환경의 남자를 만나 행복을 쟁취하게 된다. 쉽지는 않다. 강우재의 아버지 강기범(최정우 분)이 그렇게 만만한 남자는 아니다. 가끔 보이는 강우재의 어머니 차지선(김혜옥 분)의 이중성은 그녀의 험난한 앞날을 말해준다. 그나마 그녀에게서 이성을 느끼는 강우재의 동생 강성재(이정신 분)가 그녀의 아군이 되어줄 것이다.

 

캐디와는 다른 어른의 이야기다. 단지 사랑을 해서 그 사랑이 이루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이후의 더욱 첨예한 현실과 만난다.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다행히 이서영은 강하고 현명하고 아름다운 여자다. 하기는 그렇게까지 강하고 현명하고 아름답지 못하다면 그같은 현실을 견뎌내기 힘들다. 강우재의 느긋함은 그런 이서영의 각박함을 감싸준다.

 

남자로서의 자존심과 아버지로서의 자존심. 남자로서 대단한 일을 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멋지고 훌륭한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그동안 방황해왔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하필이면 아내가 죽고난 뒤에. 사실상 아내가 아버지의 역할까지 대신해 오고 있었다. 비로소 아버지가 되려 했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로서의 당연한 의무를 위해 그래서 아버지는 남자를 포기한다. 자신의 모든 꿈과 욕심을 버리고 아버지로서 자신에 충실하려 한다. 평생 한 번 해 본 적 없는 밤업소 호객꾼 일도 이제 그에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과연 아버지 이삼재(천호진 분)와 딸 이서영은 어디에서 만나게 될까? 웅크린 채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이서영의 날카로운 가시와 그 가시마저 품으려 하는 상처투성이 아버지는 언제 어떻게 만나고 화해하게 될까? 하필 제목이 <내 딸 서영이>다. 아직까지 아버지와 이서영의 관계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서영과 강우재와의 관계에 곁들여진 지류처럼 평행하게 흐른다. 이서영의 동생 이상우(박해진 분)의 비중 또한 빈약하다. 강미경(박정아 분)도 최호정(최윤영 분)도 그 존재가 흐리다.

 

최우석(홍요섭 분)의 캐릭터도 특히 남자인 필자의 관심을 잡아끈다. 모두가 말한다. 무능하다고. 무능한데 친구를 잘만나 이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자신도 안다. 알기에 더 굴욕적이다. 하지만 가족이 있기에 그는 그 알량한 지위를 포기하지 못한다. 수모를 당하고 굴욕을 당하면서도 그는 내로라 하는 대기업인 친구의 회사의 이사자리를 놓으려 하지 않는다. 변화를 예감한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캐릭터는 극단적인 변신을 예고한다. 최호정의 사랑이 어쩌면 그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무능한 이면에 그에게는 아직 보지 못한 가능성이 있을까? 아버지이려 하고, 남편이려 하고, 가장이고자 하고, 그러면서도 남자이고자 한다. 이삼재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흔한 아버지상일 것이다.

 

의외로 현실적이다. 잔잔하면서도 무겁다. 그러면서도 이서영과 강우재의 사랑은 달달하네 로맨스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아직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쉽게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이서영. 그리고 강우재. 아직은 좋다.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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