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면서 절로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리고 있었다.
"불쌍하다!"
차라리 이서림(신민아 분) 역시 주왈의 손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어차피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다. 어떤 특별한 감정도 최소한의 관심조차도 없던 상대였다. 새삼 그녀가 이서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유독 그녀에 대해서만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가질 이유란 없다. 어차피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달랐다. 주왈 자신의 손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 주왈 자신으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니었다. 아니 주왈 자신으로 인해 죽은 것은 맞았다. 다만 주왈 자신이 죽이고자 해서 죽인 것이 아니라 홍련의 주술 도중 발작하여 주왈을 죽이려는 서씨부인(강문영 분)을 막아서다 주왈을 대신해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그조차 홍련에 의해 기억이 지워지며 주왈은 잊고 만다. 이서림이 누구인지, 그녀가 누구에게 어떻게 죽었는지. 이보다 슬픈 일이 있을까?
그나마 아직 주왈은 모르고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주왈의 반응이 기대된다. 처음으로 이성으로서 끌렸던 상대였다.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홍련과도 맞설 결심도 잠시나마 가져볼 수 있었다. 이제까지의 자신을 회의하고 갈등이나 고뇌도 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아랑이 이서림이라고 한다. 그 아랑이 죽어 귀신이 된 이유가 자기의 손에 죽은 것도 아닌 바로 자기를 지키려다 죽은 것이라 한다. 그것을 홍련에 의해 기억이 지워지며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녀의 시신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내다 묻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고통스러워 홍련이 일부러 기억을 지워주었던 주왈이다. 그에게 이같은 모든 진실이 과연 감당이 되겠는가.
너무 짐이 무겁다. 차라리 주왈이 주인공이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그보다 더 비중이 큰 역할이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남자주인공인데 오히려 김은오(이준기 분)가 그 순간 소외되고 있었다. 사연이 깊다. 비극이 처절하다. 잘못된 길을 가려는 사랑하는 정인을 위해 그를 지키려다 이서림은 목숨을 잃는다. 이서림이 죽어 귀신이 된 아랑이 다시 주왈을 만난다. 주왈이 아랑에게 이성으로서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그에게 주어진 형벌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죽었다. 그것도 자신이 모르는 새. 그리고 자신은 그 뒤로도 계속 죄를 짓고 있었다.
드라마의 주제는 모두 주왈이 가져가는 듯하다. 그에 비하면 은오와 아랑의 관계는 아예 없다 할 정도로 허술하고 깊이가 없다. 우연히 만나고 우연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저 좋아하여 감정을 나누게 되었다. 비극도 없고 사연도 없다. 그나마 은오와 아랑을 이어주는 것이 은오의 어머니 서씨부인이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주왈이 가져가 버렸다. 안타깝다면 그동안 주왈의 역할이 너무 제한되어 이토록 극적인 반전이 드라마 전반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소한 김은오에게 그것은 남의 이야기다. 옥황상제(유승호 분)나 염라대왕(박준규 분)에게도. 그저 그런 사연이 있었더라, 주왈과 관련해서 어떤 반전이 예고되고 있을까?
홍련이 너무 무력하다. 옥황상제의 지략이 뛰어난 탓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약해지고, 그래서 궁지로 내몰리고 만다. 최대감마저도 그녀는 이제 감당하지 못하려는 듯하다. 최대감을 상대하는 것은 김은오의 아버지 김흥부, 이야기가 너무 커지는 탓에 이제는 아예 현실감이 없다. 먼 메아리처럼 김흥부까지 등장하고 나면 이야기가 허술해지고 잘 와닿지 않는다. 하기는 주왈과 아랑의 사연이 그다지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것도 그만큼 밀도없이 산만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이 주인공인 이유다. 주인공이 핵이 된다. 그를 중심으로 사건과 인물들이 모인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과 인물들이 이끌리고 모여 밀도있는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김은오나 아랑이나 서로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기에 바쁘지 주위를 끌어들이지 못한다. 한 마디로 힘이 없다.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 옥황상제는 옥황상제대로 홍련은 홍련대로 그리고 주왈과 아랑의 관계조차 그들과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전혀 아무런 접점 없이 산만하게 분산되어 집중이 되지 않는다. 처음 우려했던 바였다. 김은오의 캐릭터가 불명확하다. 아랑마저 캐릭터가 희미해지며 주인공의 자리가 거의 공백상태다.
물론 이준기는 매력적이다. 신민아도 매력적이다. 연기도 훌륭하다. 존재감도 뛰아나다. 그러나 김은오로서는 아니다. 아랑으로서도 아니다. 사랑이야기를 할 것이면 차라리 주위를 정리하는 것이 나았다. 이대로 주위를 내버려둘 것이면 보다 김은오와 아랑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교통정리를 해주었어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무엇을 봐야 하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그럼에도 재미가 있다는 것이 함정이다. 다만 기껏 준비할 훌륭한 소재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마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게 가장 화가 난다.
주왈을 보게 된다. 그런데 잘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다. 김은오는 두께가 없다. 깊이도 없다. 그림처럼 평면 속에 머문다. 아랑도 마찬가지다. 아니 주왈로 인해 그녀 역시 깊이와 두께를 가지게 되었다. 김은오는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보이게 될까. 주왈의 비중을 더 높여도 좋을 듯하다. 그는 비극의 캐릭터다. 비극은 처절할수록 재미있다.
흥미로운 소재다. 이야기의 전개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다만 중심이 빈약해 많이 흐트러지고 힘을 잃는다. 아쉽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조금만 더하면. 아주 조금만 더해진다면. 그것이 말까지 많아지게 한다. 미련이다. 아까운 드라마다. 안타깝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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