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천성일 것이다. 주인공인 김은오(이준기 분)나 아랑(신민아 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도 애정도 없다. 이들의 감정선은 매우 단순하다. 멜로의 흔한 청승과 신파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굳이 아무 시대 아무 배경에나 갖다 놓아도, 심지어 김은오가 사또가 아니고 아랑이 귀신이 아니어도 전혀 상관없을 정도로 그들은 무척 전형적이고 도식적이다.
물론 주왈(연우진 분) 역시 고뇌하는 악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확히는 악역의 조역이다. 악역의 하수인이면서 악에 회의하는 자, 그러면서도 끝내 올곧게 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자. 처참하도록 절박한 현실이 그로 하여금 눈앞에 내밀어진 손을 잡도록 만들었고, 어느새 풍요속에 자라난 이성이 그것이 결코 옳지 않음을 깨닫도록 해주었다. 아랑은 그 계기였다. 그러나 오히려 아랑이 건넨 이서림의 일기는 그의 결심을 확고하게 해준다. 이미 자신이 걸어온 일이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것이 악인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는 자신의 은인이기도 한 홍련(강문영 분)을 쫓기로 결심한다.
처음에는 그저 배고픔만 면할 수 있으면 좋았다. 비참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양심따위 저버릴 수 있었다. 홍련을 위해 뭇처자들의 혼령을 바치면서도 전혀 아무런 거리낌도 느끼지 않았었다. 아니 거짓말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아랑을 만나기 전까지는. 눈앞에 놓인 밥상을 그래서 그는 처음으로 뒤엎으며 거부하고 있었다. 밥이 그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만들었고, 다시 그로 하여금 그 죄와 타협하도록 만들었다. 바로 저 밥을 위해 그는 그리 끔찍하고 흉악한 죄에 동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이미 악이다.
그런데 밥보다 더 간절한 사랑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는 배부르고 등따습고 몸이 편하면 그것으로 좋다고 여겼는데, 그러나 아랑을 만나면서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더 간절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아랑의 앞에 나서기에 이미 자신이 부끄럽다. 홍련에게 매인 몸이고, 홍련에게 매여 수많은 죄를 저지른 처지다. 자신이 아랑을 만나는 것이 더구나 아랑에게 해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신은 홍련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같은 고민은 홍련의 위기와 자신을 사모했다는 전임 부사의 딸 서림의 일기를 통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정리되고 만다. 옳지 않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반성하고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되었거나 지금껏 자신이 홍련에게 입은 은혜를 배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차라리 홍련이 여전히 강하고 위세 또한 당당했다면 그는 어쩌면 홍련을 등지고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련은 어느새 곤란한 처지로 몰려 있었고, 이서림의 일기는 그런 그의 양심을 더욱 크게 자극하고 있었다.
자포자기다. 홍련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제까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수도 없다. 그래서 홍련의 편에 선다. 끝까지 가려 한다. 결코 행복하기만 한 결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홍련에게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행복한 결말이 아니기에. 자신에게 맞는 결말을 마지막 의리를 지켜 스스로 선택한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그의 무덤덤함이 그래서 차라리 서럽다. 그는 그렇게 정도로써 악을 걷고자 한다. 악과 함께 하려는 그의 모습은 비장하도록 바르고 굳다. 마지막 어쩌면 그런 주왈로 인한 커다란 반전이 있지 않겠는가.
김은오에게도 마침내 선택의 순간은 왔다. 처음부터 무영(한정수 분)은 옥황상제(유승호 분)의 패가 아니었다. 무영은 처음부터 무연을 죽일 수 없었다. 다만 그런 무영을 통해 옥황상제는 김은오라고 하는 준비된 다른 패를 무연의 눈을 피해 감추게 된다. 그러나 김은오가 죽여야 하는 상대는 다름아닌 김은오가 그토록 간절하게 쫓고 있던 어머니 서씨 부인이다. 서씨몸에 들어간 무연을 정상적으로 떼어놓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아들이 어머니를 죽여야 한다. 물론 공중파드라마이기에 그렇게까지 막장으로 흐르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아랑이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초반 통통 튀는 매력으로 절대적이라 할 만한 존재감을 과시하던 아랑이 이제는 모든 강점과 개성을 잃은 채 그저 사랑에 빠진 뒷방여인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전장을 누비던 장수가 결혼하고 그저 안방이나 지키는 아낙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그녀는 어째서 귀시니어야 했던 것일까? 사람이었어도 충분히 사랑도 하고 이야기도 진행된다.
최대감(김용건 분)의 사병이 생뚱맞다. 조선사회에서는 사병이 금지되어 있었다. 노비를 사병처럼 운용하기는 했지만 만일 저런 식으로 사병을 모으다 걸리면 바로 역모로 엄하게 처벌되었다. 굳이 최대감이 위험을 무릅써가며 사병을 동원한 이유가 모호하다. 이제는 조정에 있는 김은오의 생부와 최대감이 서로 맞서게 되는 것일까? 역모로 노비가 된 서씨부인과 김은오의 생부와도 어떤 사연이 있을 듯하다. 주인공은 이래저래 소외되어 서럽기만 하다.
주왈의 선택을 주목한다. 그의 선택이 드라마에 비극을 더하며 드라마가 막장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준다. 존재감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연우진의 연기는 담담하면서도 넘치지 않는다. 주의해서 살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주왈이기도 하다. 모두가 제자리를 잃고 있는 가운데 주왈만이 유일하게 의미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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