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김장훈과 싸이 - 억울함이 사람을 찌질하게 만든다...

까칠부 2012. 10. 6. 20:39

김장훈이 찌질하다? 직접 만나서 얘기하던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구체적으로 털어놓던가, 이도저도 아니고 SNS로 뭐하는 것인가? 더구나 국민가수 싸이에게.


정확한 사연은 나도 모른다. 모르는 일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누구나 감당할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에는 찌질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라도 잡고 하소연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특히 착한 사람일수록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솔직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한 마디로 뭘 어째야 하는지 모른다.


방황이다. 혼란이다. 그래서 혼선이 일어난다. 죽고 싶다가, 이번에는 죽이고 싶도록 화가 났다가, 그러다가는 이내 모든 것을 놓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생각이 바뀌고 그에 따라 입장도 바뀐다. 그런데 왜 그러느냐 이성으로써 묻고 한심하다 따지고 든다면 그때는 자신의 속내를 직접 행동으로 보이는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우를 안다. 극단적이지만 성폭행 피해자들이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어째서 성폭행에 대한 국내 법원의 판결이 그리 어이없는 경우가 많은가? 가해자는 이성적인데 피해자는 이성적이지 못하다. 하물며 성폭행 사실이 알려지는데 따른 부담으로 가족이 합의까지 하게 되면 그때는 더 이상 피해자가 견디지 못한다. 나는 이렇게 억울한데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극단이 극단을 부른다.


사람마다 무엇에 억울함을 느끼는가는 차이가 있다. 김장훈이 억울함을 느낀 그 부분에 대해 어쩌면 다른 사람은 다른 생각을 가질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김장훈이 잘못된 것인가? 한강에 배지나간 자리라고 그런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려 드는가. 동네망신이다. 하기는 싸이는 이제 국제스타다. 싸이에게 흠집을 내려는 행위가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잘잘못은 모른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김장훈이 느낄 어떤 부정적 감정에 대한 것이지 싸이가 어쩌고 하는 것이 아니다. 김장훈이 찌질한가? 하지만 사실 실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설사 그것이 모두가 말하는 것처럼 한심한 이유더라도 김장훈은 충분히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자기만의 권리가 있다. 그것이 자아이고 자존이다. 자신이고 개인이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궁지에 몰려 있다고 생각했다. 김장훈에게서 보이는 강박은 그가 얼마나 막다른 궁지에서 발버둥치며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준다. 그만큼 위태위태하다. 한 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 이번이 그런 경우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를 향한 냉소가 자칫 그에게 휘둘러지는 칼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를 깨닫는다. 수천억을 기부하고, 그래서 기부천사라 부르고, 모두가 존경하는 연예인이었고, 그러나 하필 상대가 싸이다. 그동안의 선행은 한 순간에 잊혀진다. 사람은 영웅을 바라지 선인을 바라지 않는다. 영웅이 곧 선인이다. 두 사람 사이의 일과 별개로 민심이 그것을 말해준다.


상처가 클 것이다. 더구나 대중의 반응에 대해. 싸이는 이미 영웅이고 자신은 단지 선인일 뿐이다. 영웅을 공격하는 선인은 단지 찌질할 뿐이다. 김장훈은 찌질하다. 더 이상의 상처가 없기를 바란다.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