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독일을 방문한 한 영국인은 당시의 독일과 독일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패전의 굴욕감으로 인해 독일인들은 도덕적으로 더욱 비굴해졌다."
해가 지지 않는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대륙 최강의 국가였다. 최고의 기술력과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마침내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도 유수의 열강들을 상대로 오히려 우세를 점하며 주도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독일은 최고이며 최강이라고. 그런데 그런 독일이 하루아침에 패전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아니 패전국이 된 것은 좋다. 그러나 그 결과로 독일제국은 열강들에 영토를 떼어주어야 했고, 막대한 배상금까지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군대는 승전국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고, 막대한 배상금으로 인해 파탄난 독일의 경제는 독일인들을 궁핌으로 내몰았다. 그런 가운데 경제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승전국의 국민들이 독일을 여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연히 비교가 되었다. 어제까지 오히려 우위에서 맞서싸우던 상대국의 국민들과 자신들의 처지가. 뒤틀린 열등감은 결국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었다.
히틀러가 등장한 것은 그런 배경이었다. 히틀러는 그같은 도덕적으로 저렴해진 독일인을에게 모든 유럽이 동의하는 한 가지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던져주고 있었다. 바로 유대인이었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궁핍한 처지에 놓인 가운데 유독 그 여유로움이 눈에 띄던 이방인 아닌 이방인들. 모든 것이 그들 때문이다.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유대인이 집단으로 격리되어 살던 게토에서는 무슨 일만 있으면 유럽인들의 테러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교도였으며 이방인이었으며 경제적으로도 많은 유럽인들보다 풍요로웠다. 저들이 문제다.
관동대지진 당시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찌기 유례가 없던 큰 지진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수없이 많은 집이 무너지고 재산이 파괴되었다. 대상이 필요했다.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을 떠넘길 대상이 필요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지진과는 전혀 상관없는 헛소문이지만 그것이면 좋았다. 지진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지만 조선인이라면 일본인들 자신의 힘으로도 어떻게 해 볼 수 있다. 공황상태에 놓였던 일본인들의 감정이 그 좁은 틈으로 거침없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마녀사냥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히스테리다. 집단의 공포와 좌절이다. 절망이고 혼란이다. 대상을 찾는다. 불길하다. 기분나쁘다. 요즘으로 치면 비호감이다. 외딴 곳에서 다른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으며 기분나쁜 짐승을 애완동물로 기른다. 예나 지금이나, 아니 동양이나 서양이나 가릴 것 없이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것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집단으로부터도 따돌려지고 여성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 하다 보니 외따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타겟이었다. 어째서 그들은 자신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가.
유럽에서도 네오나치가 극성을 부리는 곳은 대개 경제적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인 지역인 경우가 많다. 그 구성원의 대다수 역시 거의 경제적으로 사회의 하층부를 이루는 이들이다. 가난하고, 못배우고, 이렇다 할 직장도 없고, 그래서 현실은 불만스럽고 미래는 불안하기만 한데 딱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상을 찾는다. 이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의 원인이며 이 모든 모순들을 해소할 수 있는 통로다. 해결이 아니다. 해소다. 당연히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불만을 폭력적인 형태로 투사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를 요구하게 된다. 유대인이거나, 아니면 흑인이거나, 그도 아니면 아시아인이거나. 그렇게 그들은 모든 문제들의 원인이라 여겨지는 대상에게 테러를 가함으로써 현실의 불만을 잊으려 든다.
경제적으로 사실 많이 어렵다. IMF 이후 중산층의 경제적 곤란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청년층 실업문제도 심각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놀고 있는 인구가 상당하다. 말이 노는 것이지 좌절과 무력감 속에 무위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그 절망이 점차 쌓여간다. 출구없는 절망이 마치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렇다고 자신이 놓인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어느 장면일 것이다. 선거일에 투표를 않고 어디론가 놀러갔다. 묻는다. 어째서 투표를 않는가? 선거결과를 가리키며 청년은 말했다. 어차피 투표하나 안하나 결과는 같지 않은가. 나 한 사람 투표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청년유권자의 냉소의 이면에는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시린 절망과 체념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그대로 두고 볼 것인가.
그래서 대상을 찾게 된다. 현실의 부조리와 불합리의 원인이며 모든 모순과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다. 과거의 지위를 잃어가는 남성들에게 여성은 곧 그 대상일 것이다. 김여사라든가 혹은 된장녀라든가. 젊은이들과 일자리를 경쟁하는 조선족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새 한국인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들어선 외국인도 있다. 그리고 어느때나 만만하게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연예인의 존재가 있다. 모두가 네티즌이 좋아하는 먹잇감들이다.
타진요는 바로 이같은 사회현상의 한가운데 있다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줄세우기의 무한경쟁으로 말미암아 구성원의 대다수는 패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데, 어느 경우에나 승자는 소수이며 나머지는 모두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현실에 대한 불만을 투사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여성과 외국인, 범죄자, 그리고 대중에게 대상으로써 존재하는 연예인이 그 대상이 되어준다. 어째서 병역문제가 인터넷상에서 그렇게 민감한 문제로 작용하는가. 기득권에서 이런저런 명분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가운데 병역이란 자체가 자신들이 갖는 불만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자체만으로도 그는 사회의 모순이며 부조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어려서 외국국적을 취득함으로써 병역의 의무가 부가되지 않는다는 병무청의 설명은 그 앞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사회정의가 아니다. 정확히 감정의 정의다. 자기가 느끼는 불만에 대한 정의다.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 혼란과 좌절과 절망과 체념,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렇게 한 방향으로 분출되고 만다. 타블로와 관련한 논란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타진요와 상관없는 이들조차 타블로에 대한 증오를 감추지 않는다. 정의를 말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의 불만과 두려움이다.
집단히스테리 상태라 할 것이다. 그렇게 궁지에까지 몰려 있다. 발악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막다른 지경에 놓인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할 어떤 대안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제물을 바친다면 그 순간 만큼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과거 최진실이 그랬던 것처럼.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위험하다. 지금은 단지 사이버상에서 텍스트로나 폭력을 휘두를 뿐이지만 가상세계가 실제의 세계로 옮겨오는 예는 그다지 드물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검은머리 외국인이다. 캐나다인이다.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인이 아닌데 한국인인 척을 한다. 한국인보다 더한 권리와 혜택을 누린다. 모두가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여성의 지위가 남성의 지위를 능가했다. 여성에 의해 남성이 역차별당하고 있다. 기득권집단으로서 연예인에 대한 도덕적 감시와 비판을 강화해야 한다. 그것은 의무인 동시에 권리다. 문득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저기에서 주어만 바꾼다면 역사속 어느 섬뜩한 장면과 닿을 수 있다.
아마 자신들은 모를 것이다. 옳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감정이 그것은 옳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의다. 심판이다. 단죄다. 자신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대중이 권력이 된다. 대중이라는 권력이 개인의 자존과 자아를 침범한다. 그 자리를 대신한다. 비루함이다. 앞서 영국인이 말한 비굴함이다. 도덕적 판단조차 스스로 이성에 맡길 수 없다. 우려한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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