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는 말처럼 사람에게 복잡한 감정이 들게 만드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고 두렵다. 안절부절 안달하며 불안해한다.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데 오히려 거꾸로 기다려지는 역설은 어찌할 것인가? 조급해지고 긴장하게 된다. 시한폭탄의 초침소리가 뛰던 심장마저 멈추게 만들어 버린다. 멈춘 채 더욱 격하게 뛰도록 만들어 버린다.
두 가지 시한이 주어진다. 하나는 서은기(문채원 분)의 기억이다. 모두가 생각하고 있다. 서은기의 기억이 돌아오고 강마루(송중기 분)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서은기는 강마루를 저버리게 될 것이다. 강마루는 서은기에게 버림받게 될 것이다. 강마루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서은기의 기억이 돌아오면 더 이상 자신은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런데 여기에 대해 강마루 자신에게도 또 하나의 시한이 주어진다. 강마루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사망률 20%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그는 체념하다시피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강마루는 서은기의 곁에 있을 수 있는지 모른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절박함과 어차피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체념이 주제에 맞지 않게 그녀의 곁에 있고자 하는 자신을 납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어차피 버려질 것이고 그 전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자기가 그녀의 곁에 있고자 하더라도 그녀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강마루란 참 여린 남자일 것이다. 솔직하지 못하다. 그의 내면에는 항상 지독한 열등감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그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이 들끓고 있었다. 한 마디로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한재희(박시연 분)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 그녀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썼고, 형을 살고 나와서도 차마 한재희를 찾아가지 못하고 막연히 살던 집에 머물며 그녀를 기다린다. 서은기를 그렇게 지독스럽게 밀쳐내고서도 정작 집을 옮기지 않고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역설 또한 그 연장에 있다.
그래서 문득 듣고 싶어진다. 강마루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버림받은 적이 있지 않을까? 기다림과 기대를 배신당한 적이 있지 않을까? 작은 사건이더라도 그것이 영혼에 각인이 된다면 항상 그렇게 체념하며 쫓기듯 살게 된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고 하는 불안과 그럼에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집착이 자신을 괴롭힌다. 차라리 무엇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쪽이 더 자신을 편하게 놓아주게 된다. 이제는 서은기도 그런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 듯하다. 강마루는 사실은 아주 비겁한 겁장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금 이대로가 좋다. 마냥 도망치려고만 하던 강마루가 어떤 이유에서든 그녀의 곁에 머물고 있다. 그녀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를 위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주려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다시 서은기에게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자신이 기억을 되찾게 된다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주위가 자기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가운데 강마루는 또다시 지레 겁먹고 도망치려 할 것이다. 실망은 실망이고 그를 사랑했던 사실은 사실이다. 분노는 분노이고 그를 사랑했던 감정 또한 진실이다. 주치의 석민혁(조성하 분)가 말하는 그녀의 기억상실에 대한 심리적 원인이란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어둠속을 홀로 걷는 왕의 이야기다. 이번에는 공주다. 기억을 되찾더라도 기억을 되찾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서은기가 강마루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라면 그녀로서는 지금의 더없이 만족스런 현실을 바꿔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을 수 있다. 그리고 안민영(김태훈 분)이 눈치챘듯 그녀의 이상을 알아채는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정작 서은기의 편이라 여겼던 박준하(이상엽 분) 역시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감추는 것이 있다. 감추는 것이 있다는 것은 남들에 드러내지 못할 자기만의 생각과 계산이 있다는 뜻이다.
강마루의 시한은 계속해서 다가온다. 등장인물들의 심리 속에 서은기의 시한 또한 그다지 멀지 않았을 것이다. 두 가지 시한이 만나게 된다. 서은기가 기억을 찾고 강마루가 삶의 시계를 다하는 그 순간이. 가장 극적인 반전이며 모두를 혼란에 빠뜨릴 대미일 것이다. 비극일 것인가는 지레 예단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죽은 사람은 누구나 착하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게 된다. 살아서 착한 것일까? 죽었기에 착한 것일까? 때로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깨달음으로 구원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한재희는 아직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감정이 엇갈린다. 한재희는 강마루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욕망이 그를 저버리도록 만들었다. 안민영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강마루를 질투하며 증오한다. 한재희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한재희 역시 증오하고 있다. 한재희도 안민영을 증오한다. 그러나 그를 필요로 한다. 차라리 강마루는 한재희를 잊었다. 그에 대한 원망도, 분노도, 증오도, 그 어떤 복수심도, 그는 오로지 서은기 한 사람만을 걱정할 뿐이다. 이 부분도 걱정이 된다. 그것은 어쩌면 죽은 이의 체념과도 같은 차갑게 식은 무기질의 무심함이다. 그것이 그녀를 시리게 만들고 절망케 만든다. 감정의 균열은 이내 그녀가 서 있는 모든 토대를 허물 정도로 크게 벌어진다.
강마루에게도 서은기에 곁에 머물러도 좋을 만한 뛰어남이 있다. 그의 남다름이 서은기에게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만하면 족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시청자의 생각이다. 서은기는 바라지 않지만 강마루 자신이, 그리고 박준하 등 주위의 모두가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때로 사람을 더 깊은 열등감에 젖어들게 만들고 더 가혹한 절망으로 떠밀기도 한다. 박준하와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그가 가진 열등감과 죄의식,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갖는 탐욕이 불길한 앞날을 예고해주는 듯하다. 그러면 드라마가 너무 복잡해질까?
최고의 순간에 최악의 상황에 놓인 서은기가 찾아온다. 최악의 상황에 최악의 상대인 강마루마저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서은기에게 현실이란 코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불길한 어둠의 장막 속이다. 강마루는 절망하고 있다. 겨우 체념에 기대 설레는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때마침 터널에서 마주친 헤드라이트 불빛은 어떤 계기를 말해주는 듯하다. 반전일까? 두근거리며 지켜보게 만드는 공연한 비밀일까?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모두를 놀라게 만들 숨겨진 한 수일까? 마냥 행복하기에는 드라마란 그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복수가 아니다. 사랑이다. 원망이 아니다. 사랑이다. 증오가 아니다. 오로지 사랑이다. 사랑이 원망이 되고 증오가 되고 복수로 자신을 내몬다. 하지만 그래도 남는 것은 사랑이다. 그들은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려 한다. 그것이 누군가에 대한 적의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현실의 비극이다. 좋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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