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 딸 서영이 - 아버지와 딸, 그들의 엇갈린 사랑과 죄에 대해서...

까칠부 2012. 10. 22. 10:24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의 뜻을 어려서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모두 같지 않다. 아버지로서 딸을 사랑하고, 딸로서 아버지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서로 다르다. 어긋나며 사랑하는 그 크기와 깊이 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이서영(이보영 분)이 끝내 아버지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만큼 그녀는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돌아봐주기를 바랐다. 언젠가 자신의 곁으로 돌아와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녀가 필요로 한 그곳에 없었다. 어딘가 멀리서 자기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버림받은 것 같았다.

 

물론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모두 딸을 위해서였다. 모든 것이 아내와 딸과 아들을 위해 그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딸이 바란 것은 그런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는 애써 아내와 딸과 아들의 모습을 외면한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열등감을 가리기 위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가족이 의지해야지 가족에게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남자다움이 이런 때는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제서야 비로소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딸과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딸을 사랑한다. 딸 또한 아버지를 사랑한다. 다만 그 사랑을 원망으로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모진 말과 행동을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써 정당화시킨다. 물론 안다.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자신을 속이며 그와 같은 자신의 마음을 가속화시킨다. 그녀는 머리가 너무 좋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그러면서도 그 잘못을 감추는 방법을 알며, 그 잘못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만큼. 이제 남은 것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 뿐일까?

 

그녀의 강박에 가까운 약속지키기는 그런 일환일지 모르겠다. 말과 행동을 일치시킨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말에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의도이며 노력일 것이다.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말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말한 것은 반드시 사실이 된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그로 인한 자신의 무심하고 매정한 말과 행동들도. 자칫 패륜으로 여겨질 수 있는 - 그래서 심지어 그녀는 분신과도 같던 쌍동이 동생 이상우(박해진 분)와도 인연을 끊고 말았다. - 자신의 비밀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며 압박한다. 머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성실하기까지 하다.

 

그녀가 어느 여인의 존속살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인은 아버지를 죽였지만 그녀는 아버지를 지웠다. 그 원인은 학대였다. 여인은 아버지로부터의 잔인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방치되어 있었다. 경제적 곤란과 소외는 그녀를 더욱 절망으로 궁지로 내몰았다. 학창시절 만났던 친구들이 그녀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판결문은 그녀 자신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딸이기에 그녀가 이기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아버지로서의 자각을 되찾은 이삼재(천호진 분)는 그런 딸을 지켜보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 늦은 것을 안다. 그래서 그녀를 되찾아 올 생각 또한 없다. 단지 지켜본다. 행복한 모습을.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면서도 만일의 경우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 그의 의지와 욕구 또한 강렬하다. 꿈은 그의 무의식이다. 아버지로서 한 번 딸을 위해 나설 수 있는 그 순간을 간절히 바란다. 딸과 아버지란 이렇게 다르다. 다만 이상우의 말처럼 딸은 너무 지쳐있었고 아버지는 너무 늦었다. 집안식구들이 모두 머리가 좋다. 그것이 그들을 비극으로 내몬다.

 

그렇게 아버지와 딸을 중심으로 주위 인물들의 관계 또한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이상우가 지금 사귀고 있는 상대는 쌍동이 누이 이서영의 남편인 강우재(이상윤 분)의 여동생 강미경(박정아 분)다. 이미 이상우는 이서영에게 절연을 선언한 상태다. 이서영 또한 아버지와 함께 이상우를 없는 존재로 만들어 놓은 뒤다. 거짓과 갈등이 우연과 인연에 의해 서로 엇갈리게 된다. 누이의 행복을 깰 수 있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그리고 그런 이상우의 존재에 대해 그들 남매는 어떻게 답을 찾아나서게 될까?

 

3년이라는 유학기간을 한결같이 이상우를 그리던 최호정(최윤영 분)을 맞는 것은 벌써 오래전부터 강미경과 사귀고 있는 그녀가 알지 못하는 이상우의 현재였다. 3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다. 그리고 이상우는 최호정에게 특별한 감정따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잊고 있었다고 하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녀의 올곧은 순수한 마음이 애닲은 감정마저 들게 만든다. 그녀는 끝내 비련의 주인공으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 최호정과 함께 돌아온 그녀의 이복오라비 최경호(심형탁 분)의 존재는 또다른 변수가 되어 줄 듯하다.

 

강기범(최정우 분)은 확실히 강우재의 아버지다. 그는 확실히 특이하게도 성실한 성격이다. 아버지가 회사를 세운 이념을 철저히 지키는 모습에서는 외고집의 성실함을 엿볼 수 있다. 공장노동자들에게 철야와 휴일근무를 강요하면서도 수당을 배로 쳐서 지급하라고 지시하는 모습에서는 노동자를 도구로 여기면서도 나름대로 배려하려는 선의를 읽게 된다. 그리고 아내에 대해 서로 애정없이 결혼한 사이라 대놓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바람을 피는 상대에게 아내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습에서는 완고한 원칙주의자의 모습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어째서 바람을 피우는가 묻는다면 그것은 그가 남자이기 때문이라 대답할 것이다. 애정없는 결혼생활이 그 또한 답답하다. 하지만 남편으로서의 의무에는 충실하고 싶다.

 

무심한 남편과 아버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일에는 유능하지만 가정에 대해서는 무심을 넘어 무능하다. 아내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식에 대해서도 이해할 줄을 모른다. 그런 그에게 있어 솔직함이란 잔인하기까지 한 무심함인 동시에 나름의 배려인 셈이다. 기대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아내가 두렵다. 기대하고 기대려 하는 아내가 두려워 도망치고 만다. 그는 과연 아내를 진정 애정없이 결혼한 단지 대상으로서만 생각하고 있을까? 아내인 차지선(김혜옥 분)이 철없다 할 정도로 순진한 의타적인 성격이 된 것에 그의 영향은 없었을까?

 

어쩔 수 없는 가족드라마다. 마침내 이삼재와 강우재가 만난다. 이서영은 마침내 다시 이삼재와 마주하게 된다. 이서영의 주위에 강우재를 짝사랑하던 정선우(장희진 분)과 현직기자인 동창이 나타난다. 거짓으로 쌓은 성이란 어느 한 순간에도 쉽게 허물어지는 신기루와도 같다. 그럼에도 화해를 말한다. 용서를 말한다. 보수적이지만 그러나 누구나 바라는 바다.

 

이보영은 아름답다. 조금의 흠도 더러움도 찾을 수 없는 조각상과도 같다. 깎아 놓은 듯한 무감동함은 이보영이 아닌 이서영 자신일 것이다. 천호진의 한심하지만 진정이 느껴지는 아버지의 연기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것이 있다. 좋은 배우들이다. 좋은 드라마다. 좋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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