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랑사또전 - 참신한 시작과 진루한 전개, 진부한 결말, 미련만 남다.

까칠부 2012. 10. 19. 10:04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이 드라마가 만일 20부작이 아닌 8부작 정도의 중편으로 기획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무영(한정수 분)과 무연(임주은 분)의 사연이 밀도있게 중심을 이루고, 주왈(연우진 분)과 이서림(신민아 분)의 악연이 비련을 만들고, 더불어 이서림을 둘러싼 주왈과 김은오(이준기 분)의 대립이 압축되어 전개된다. 빠르게 한 순간에 모든 사연들이 서로 얽히고 섥히며 비극과 희극이 오가게 된다. 그랬더라도 이렇게 지루했을까?

 

주왈의 비극이 드러난 것이 벌써 몇 주 전이다. 그동안 지지부진 주왈은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상황에 끌려다녔을 뿐이다. 무영과 무연의 악연 역시 별다른 사건 없이 지루하게 끌기만 해서 이제는 별다른 느낌조차 남아있지 않다. 주왈과 김은오가 서로 대립한 장면도 그다지 없었다. 그것도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거의 무존재라 해도 좋을 정도로 주왈은 드라마에서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봐야.

 

사실 각각의 요소들만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재미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확실히 재미있을 만한 드라마였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는가? 결국 김은오와 신민아가 드라마 전반을 걸쳐 그저 지루한 멜로만을 보여주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디테일없이 단지 아이디어에 이끌려 시작된 드라마였다. 각각의 요소들은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그 요소들을 채울 디테일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채였다. 그래서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따로 노는 가운데 드라마도 산으로 가며 최대감(김용건 분)의 역모고변이라는 무리수까지 두게 되었다. 홍련(강문영 분)과 아랑, 주왈, 무영, 김은오가 한 데 모이는 야산의 동굴이야 말로 드라마의 현재를 보여줄 것이다. 그저 휑하니 황량하다.

 

마지막 김은오가 밀양의 원님을 그만두며 남긴 방의 내용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김은오가 신분제의 철폐를 위해 무언가 뚜렷하게 신념이나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니 사또로서 무언가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백성들 가운데서 밀양의 원님을 뽑으라 말한다. 신분을 묻지 않겠다는 말을 엄연히 조정해서 임명해야 할 지방관을 백성들 사이에서 뽑으라는 월권으로 드러낸 것이다. 체념이 읽힌다. 더 이상 드라마 스스로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역시 무리수다.

 

그래서 결국 이른 결론이 환생이다. 차라리 로맨스소설이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소녀취향의 순정만화였다면 더 달달하고 더 아련했을 것이다. 시작이 주는 기대도 컸었다. 전통의 이야기를 소재로 새로운 스타일의 드라마를 만든다. 단지 껍질만 색달랐을 뿐 내용은 흔한 멜로 그 자체였다. 그나마 홍련의 비련이 드라마의 내용을 채워주었다. 아직도 필자는 어째서 김은오가 사또여야 했는지 아랑이 귀신이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 옥황상제(유승호 분)와 염라대왕(박준규 분)가 내준 문제 쪼한 너무 전형적이다. 거의 끝에 이르러서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사족까지 너무 길었다.

 

너무 아이디어가 좋았다. 지나칠 정도로 소재가 참신했다. 그래서 욕심이 지나쳤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은 바로 반동으로 돌아온다. 평이함으로 회귀한다. 진부함과 지루함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로 머물고 만다. 제작진의 역량을 넘어섰다. 그것이 결국 배우의 연기에까지 영향을 주어 배우 혼자서만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취향의 탓이라기에는 시작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아쉬운 드라마다. 기대가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다. 미련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