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의 - 사복시로 간 백광현, 너무 빨리 무대에 오른 이유...

까칠부 2012. 10. 23. 09:59

너무 빠르다. 사실 태의 백광현에 대해서는 예전에 한 번 드라마로 만들어진 바 있었다. 조선후기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이들에 대해 재조명하는 다큐드라마였는데, 그 가운데 백광현을 주인공으로 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당연히 한참 나이가 든 뒤부터 드라마는 시작되고 있었다. 실제 역사의 백광현도 바로 그와 같았다.

 

원래는 마의였다. 말을 고치는 수의사였다. 그러나 말의 병을 고치면서 특히 그 가운데 외과적 치료법에 대한 경험을 하나둘 쌓아가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하게 되었다. 말도 사람과 똑같은 생명인데 말을 치료하는 이 방법으로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을까? 아주 작은 발상의 전환이었지만 그것은 조선후기 조선의학계에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백광현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유였다.

 

백광현의 이름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로부터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조선시대 내의원을 선발하는 방식은 대개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공채와 특채가 있을 것이다. 공채는 흔히 말하는 취재에서 의과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는 것이고, 특채는 이미 의원으로서 명성과 실력을 검증받은 이를 특별히 내의원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동의보감>의 저자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한 '허준'의 경우만도 양예수의 제자로 특채되어 내의원이 된 경우였다. 허준의 경우는 실력보다는 아버지의 연줄로 내의원이 되었으며 허준과 대립관계로 묘사된 양예수가 스승으로써 그를 가르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마의로서 실력을 쌓고, 다시 사람을 고치는 의원으로 경험과 명성을 쌓고, 그리고 나서나 그 실력과 명성을 인정받아 내의원에 특채되게 된다. 그러면 그때쯤 백광현의 나이는 몇 살이나 되어 있을까? 기껏 어린시절의 인연까지 공들여 만들어 놓았는데 이래서야 자식들대에서나 그 인연이 이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한 발 물러나 자식들이 인연을 이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모습을 시청자는 지켜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기는 강지녕(이요원 분)은 내의원 의녀가 되어 있으니 그때까지 독신으로 있는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청자가 기다리지 못한다.

 

드라마에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다. 배우를 섭외하고, 세트를 짓고, 수많은 연기자와 스태프의 임금도 지불해야 하고, 대체로 억 단위의 막대한 돈들이 드라마 제작과 관련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간다. 시청률이 높아야 광고가 들어오고, 광고가 들어와야 스폰서로부터 제작비를 조달한다. 더구나 사극이란 아무래도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 비해 간접광고에 있어서도 상당히 불리하다. 그런데도 제작비는 더 많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해서든 광고를 따내기 위해서는 시청률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소한 시청자의 관심을 단단히 잡아놓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결로 들어간다. 백광현(조승우 분)의 마의시절부터 바로 대결도 들어간다. 대결이야 말로 대중이 가장 관심있어 하고 흥미를 갖는 소재일 것이다. 아직 이명환(손창민 분)과의 직접적인 대결은 무리일 터이니 사복시 관원들을 동원해 간접적으로 백광현과 대결하도록 한다. 백광현의 치료법이 잘못된 것이라 단정한 이명환의 판단은 다름아닌 그와 입장을 같이 하던 사복시 관원의 몰락을 통해 철저히 되돌려진다. 이명환의 감탄해마지 않는 탁월한 침술과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치료법이 아직 직접적인 대결은 무리지만 주인공 백광현의 승리를 통해 시청자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그래서다. 그래서 백광현은 사복시로 들어간다. 이명환과 같은 무대에 서기 위해서다. 이명환과 같은 무대에서 승부를 겨루지 않으면 안된다. 매번 그를 곤란케 하는 주위의 누군가와 그는 맞서지 않으면 단된다. 우연한 만남도 있다. 진부하지만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남자처럼 - 아니 설사 이성이 아닌 동성이라도 그보다 인상적인 만남이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벌써 한 번 이타인 마을에서 백광현은 강지녕(이요원 분)을 구해준 바 있었다. 이명환과 만나고, 강지녕과 만나고, 다시 숙휘공주(김소은 분)과도 인연을 쌓아간다. 한가롭게 마의로서 실력을 쌓거나 할 시간이 없다.

 

드라마로서는 재미있다. 어차피 드라마다. 픽션이다. 재미있자고 보는 것이다. 재미있게 즐기며 보라고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우선한다. 어린시절의 인연은 자라서의 만남의 복선이 될 것이고, 대결은 백광현의 출생의 비밀과 맞물려 상당한 긴장과 더불어 승리했을 때의 쾌감을 약속하고 있을 것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 위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과 악의 대립은 아후라마즈다와 앙그라 마이뉴 이래 가장 흔한 소재 가운데 하나였었다. 악인을 응징하는 것이야 말로 시청자를 흥분케 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전형적이다. 상당히 전형적인 완고한 요소들이 곳곳에 쓰이고 있다. 어린시절의 에피소드는 사실 사극이라면 이제는 더 이상 변별이 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허준> 이래 <대장금> 등을 통해서 반복되어 온 설정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 이미 여러번 반복되어 왔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통한다는 뜻일 것이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과 그 비밀과 맞닿아 있는 주인공이 극복해야 하는 악연, 그리고 수많은 에피소드들. <허준>을 재미있게 보았기에 그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못한 진부한 함정을 느낀다. 그 진부함이 재미있는 것이다.

 

너무 일찍 무대에 올라왔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이명환과 맞서싸우는 것은 그가 사람을 고치는 의원이 되고 난 뒤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싸움에는 전초전이라는 것이 있다. 1라운드에 들어가기 전의 리허설일 것이다. 그들은 만나고 사소하게 부딪힌다. 기대를 키우게 된다. 다만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보인다는 점이 안 좋은 점으로 남는다.

 

상업드라마다. 통속드라마다. 그 이상을 기대하면 안된다. 어차피 백광현에 대한 사료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다.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감안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 제작진의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노력이다. 많이 낡았지만 삐걱거리는 그 느낌도 빈티지라 해주어야 할 것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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