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깊을수록 죄 또한 깊어간다. 원죄다. 사랑하기에.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죄인이 된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밖에는 못하는가? 어째서 나는 이렇게밖에는 살지 못하는가? 어째서 나는 이런 존재밖에 되지 못하는가? 자격이 없다. 가치가 없다. 이미 죄인이다.
아마 한재희(박시연 분)는 그때 강마루(송중기 분)가 자기를 위해 살인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쓴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꿈을 저버렸다. 모두의 기대를 저버렸다. 자신을, 존엄을, 양심을, 모든 것을 저버렸다. 그것은 사실상 자살에 가까웠다. 살인자가 되어 어찌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 머물 수 있겠는가?
초코(이유비 분)에게 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코가 병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살았다. 초코를 위해서. 그리고 이제는 서은기(문채원 분)를 위해 살아가려 한다. 그녀로 인해 절망했고, 그 절망으로 인해 죽고자 했으며, 그럼에도 서은기가 자신을 필요로 하기에 살고자 한다.
한재희를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지만 과연 강마루가 기다렸던 것은 한재희 자신일까? 서은기를 기다렸다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강마루가 기다린 것은 서은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신을 지탱해 줄 수 있는 무언가였다.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빈껍질에 불과한 자신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사랑했던 자신이었다. 한재희를 사랑하고 서은기를 사랑했던 바로 자신이었다. 오로지 사랑만이 진실하다.
그러나 정작 한재희와 만났을 때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착각이었는가 강마루는 깨닫고 만다. 강마루에게 한재희란 전부였지만 한재희에게 강마루란 일부에 불과했다. 꿈을 꾸고 있었다. 가치있는 일을 했다. 의미있는 행동을 했다. 그 마지막 자부심이 한재희의 허영과 욕망 앞에 한 순간에 녹아 스러지고 만다. 그가 진정으로 한재희에게 분노한 이유였다.
반면 서은기는 그토록 절망하던 자신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도 그녀는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판단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기억하고 직접 찾아오고 있었다. 과연 그같은 올곧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자신은 과연 그와 같이 올곧게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었는가? 진정 그녀를 마음깊이 사랑하고 있었는가?
그래서 죄인이 된다. 미안함에. 죄책감에. 그래서 부모는 자식에게 죄인이 된다. 모든 자식은 부모 앞에 죄인이 된다. 연인은 서로에게 죄인이 된다. 스스로 죄인이 되지 않고 서로에게 죄를 묻게 될 때 연인은 더 이상 연인이 아니게 된다. 한재희는 강마루를 탓하고 강마루는 한재희를 탓한다. 그러나 서은기는 강마루를 탓하지 않고 강마루는 서은기를 탓하지 않는다. 차라리 모든 것을 잊으려 한다. 서은기는 기억을 잊고 강마루는 자신을 잊는다.
떠나가려 한다. 그 또한 올곧은 이기다. 오롯한 순수한 이기의 발로다. 비참하다. 부끄럽다. 한심하다.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그녀를 위해 떠나가는 뒷모습이야 말로 남자의 자존심이다. 차라리 그녀를 떠나보내고 그녀를 떠나려 한다. 그녀를 위해서. 서은기의 마음따위 아랑곳없이 자기가 그녀의 곁에 버티도 있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염없으면서도 선을 긋는다. 강마루의 허무한 무표정은 그같은 절망의 표현이다. 그에게 희망이란 없다. 내일도 없다. 지금 이 순간 뿐. 감당하지 못할 지금의 행복 뿐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학대한다.
그것이 과연 사랑인가? 사실 강마루도 알지 못한다. 그것이 다시 그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그의 원죄를 일깨운다. 한재희는 잔인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강마루는 바닥을 보게 된다. 헤집고 헤쳐서 저 심연까지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너무 늦지 않기를.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다. 아니 죽어 있다. 죽은 이가 산 사람과의 인연으로 망령이 되어 떠돈다. 죽은 이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산 사람과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떠나기 위해서. 그녀로부터 떠나가기 위해서. 그것은 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버린 그의 마지막 존엄이었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이다. 한재희의 원죄다. 심지어 그는 한재희의 오라비 한재식마저 끌어들여 협박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떠나간 뒤를 대비해 서은기가 홀로 설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때로는 매몰찰 정도로 서은기를 몰아세우려 한다. 그는 이미 끝을 예비하고 있다.
떠나고 나서야 그것이 사랑인 것을 앓았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를 알았다. 공허하다. 강마루에게는 이미 그런 것을 생각할만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한재희는 후회하지만 강마루는 후회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은 그의 전부였으므로. 서은기를 위해 무엇 하나 줄 수 없는 그의 모든 것이었으므로. 그것을 채워야 한다. 그것은 다시 서은기의 몫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바라는 한재희에 비해 이제는 서은기가 그의 빈 자리를 채워주어야 한다. 허깨비처럼 바람에 쓸려 날아가기 전에 이 땅에 붙들어 세워야 한다.
위기가 지나간다. 서은기를 금치산자로 만들려던 한재희와 안민영(김태훈 분)의 의도가 서은기 자신의 솔직함과 강마루의 필사적인 노력에 의해 잠시 무위로 돌아간 듯 보인다. 그러나 한재희 또한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서은기를 태산그룹의 공동대표로 지명한다. 서은기를 전면에 세운다. 다른 누군가의 뒤에 숨지 못하도록 가장 높은 모두에게 보이는 자리에 세우려 한다. 과연 공동대표로서 서은기는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바로 설 수 있을 것인가. 서은기의 일거수일투족은 공동대표로서 모두에게 노출되고 만다. 위기는 지나갔지만 더 큰 위기가 다가오려 하고 있다. 강마루의 시한도 점차 다가오고 있다.
차라리 미워하기를. 차라리 원망하기를. 그래서 등돌리고 떠나가기를. 그것을 서은기도 안다. 그래서 그녀 또한 절망스러워한다. 그가 끝내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을 속인 것보다, 다른 의도가 있어 접근한 사실보다 그것이 그녀를 더 화나고 슬프게 만든다. 보낼 것인가? 아니면 억지로라도 가질 것인가? 그녀는 가지려 했다. 이제 다시 가지려 할 것이다. 엇갈리면서도 서로를 향한 진심이 서로에게로 향한다. 비극일까? 모두가 행복해지고 끝나게 될까?
한재희의 변명이 애처롭다. 그녀도 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려는가 하는 것을. 그래서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 한다. 가장 어려운 상대다. 어떻게 자기가 자신을 속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한재희 또한 필사적이다. 모두는 필사적이다. 하긴 정작 가장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은 강마루 자신일까? 그의 허허로운 한 마디 한 마디는 그같은 자신의 미련과 두려움에 대한 변명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스스로 납득하려 한다. 모두는 그렇게 속고 속이며 가지 못할 길을 가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다. 한재희는 강마루를 가지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녀의 바람일 뿐. 그녀 자신도 알고 있는 이루지 못할 발버둥이다.
뻔한 전개였다. 한재희에게 속아 다른 사람과 착각해서 실수를 저지르고, 그리고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내보이고. 자기의 권리를 지키려 한 것이지 회사를 지키려 한 것은 아니다. 역시 대기업의 후계자는 사고방식부터 다르다. 그런데 그것이 통한다.
강마루의 진심이 드러난다.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강마루의 시한이 강마루의 진심과 함께 긴장감을 더한다. 한재희라는 만만치 않은 적과 위기에 선 서은기, 쉽지만은 않다. 강마루도 필사적이다. 절망이 차라리 희망이 된다. 예측할 수 없다. 재미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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