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은 우리 역사에서도 가장 비참한 - 무참했던 시기였다. 무신의 난은 고려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고, 몽골의 침입은 고려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었다. 무신에 이은 권문세족은 토지를 겸병하여 백성을 굶주림으로 내몰았고, 몽골로부터 가혹한 수탈을 당하던 고려의 조정에는 그것을 바로잡을 힘도 재정도 권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심지어 홍건적에 왜구에 외적이 침략해오는 데에도 각 군벌의 사병에 의지해 나라를 지켜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고려의 멸망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이미 예고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였다. 고려말 이 땅에는 유독 도참이 발달하고 있었다. 도참이란 예언이다. 어떤 신비한 의지와 힘에 의지해 간절한 바람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다. 그러나 현실이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하기에 고려의 민초들은 그같은 막연한 도참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당나라 때 이미 이 땅에 소개된 바 있는 풍수가 크게 고려사회에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땅의 기운을 빌어 복을 빌고 번영을 이룬다. 모두가 솔깃해 할 만한 이야기다. 원래는 방술에 불과하던 것이지만 그래서 고려말에서 조선에 이르며 풍수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어떤 신비주의적 원리로서 작용하게 된다.
원래 풍수란 양택풍수에서 시작되었다. 드라마에서 영지옹주(이진 분)가 공민왕(류태준 분)의 잠자리를 살피며 이것저것 지시하는 내용이 나올 것이다. 사람은 땅에 살고 따라서 지리의 영향을 받는다. 위치와 형태, 색, 냄새 등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사람은 살아간다. 시작은 전장에서 지리적인 조건과 선택을 가늠하기 위한 논리로써 시작되었지만 어느새 그것은 사람의 일상을 지배하는 어떤 법칙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도교의 신비주의와결합하며 죽은 사람을 위한 음택풍수로 발전하게 된다.
음택풍수의 논리는 간단하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다시 그 아들로 이어지는 것은 모두 기의 작용이다. 아버지의 기가 아들에게로 이어지고, 아들의 기는 다시 그 아들에게로 이어진다. 아버지를 좋은 곳에 묻는다면 자식의 기에도 또한 좋은 영향이 가게 된다. 선산을 따로 두어 일족이 모두 한 곳 묻히고자 한 것도 또한 같은 기를 갖는 이들끼리 모이고자 하는 의도였다. 성리학의 유입과 풍수의 유행은 그래서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고려말은 성리학이 기존의 종교와 사상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바로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백성의 간절한 염원과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위정자의 야심과 의지야 말로 이 드라마가 추구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 어째서 이성계였으며, 어떻게 이성계는 고려를 대신해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열게 되었는지. 이성계와 조선을 향한 당대의 지식인들의 바람과 열망을 풍수를 통해 읽는다. 새로운 시대를 연다. 그것은 모든 백성이 등따습고 배부른 태평성대일 것이다. 실제 조선의 농민들은 동시대 세계 어느 곳의 농민들에 비해서도 정책적으로 많은 배려를 받고 있었다. 공민왕의 개혁과 우왕의 폐정, 그리고 이인임의 전횡, 그리고 이어진 이성계의 대두. 모두가 하나로 물려 돌아간다.
그저 터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터에 깃든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좋은 터를 찾으려 하는 것도, 그 터를 지키고자 하는 것도, 그리고 살아가는 그 모든 과정이 사람의 의지인 것이다. 자미원국을 찾은 동륜(최재웅 분)이 목숨을 걸고 그것을 지키려 하는 것이나, 그러한 동륜의 의지를 지켜주기 위하 스스로 자신의 몸을 이인임(조민기 분)에게 맡기는 영지옹주나, 그것을 찾고자 애쓰는 이인임, 수련개(오현경 분)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아직 시대의 참상이 그렇게 표면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다. 한 해 수확량 가운데 아홉을 권족들이 가져가고 단 하나만이 농민에게로 돌아간다. 고향을 떠나 떠도는 유민들이 증가하고 있었고, 전란까지 더해지며 고려의 인구는 더 이상 나라를 유지할 수 없는 수준까지 줄어들고 만다. 개경은 그런대로 아직은 살 만하다. 그러나 이제 왜구의 침입이 본격화되면 개경으로 올라와야 쌀마저 약탈당하며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리고 그런 고려에서 잇따른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며 영웅으로 군림한 이가 바로 이성계였다.
반야의 험난한 앞날을 벌써부터 우려한다. 반야의 한이 고려왕조가 문닫는 원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반야의 한과 그 자식 우왕과 이인임의 인연은 어떻게 이어지려는가? 그리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여는 지상(지성 분)의 활약은 어떻게 그려지려는가? 악연과 인연이 만나고 그리움과 원망이 서로 엇갈린다. 감정선이 상당히 디테일하다. 그러나 사극답지 않게 스케일은 그다지 크지 않다. 김용의 반란만이 나올 뿐 김용의 반란이 있게 된 원인인 정세운과 이방실, 김득배 등의 죽음은 다루어지지 않는다. 딱 필요한 만큼만. 드라마의 미덕이다. 대하드라마가 아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보여주는 것이 좋다.
흥미로운 소재다, 풍수란. 그런 한 편으로 풍수를 사이에 둔 사람들의 관계 또한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혼란기다. 비참한 시대다. 희망을 갈구하던 시기다. 풍수가 그같은 사람들의 희망의 중심에 선다.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바뀌는 그 한 가운데 사람은 풍수에 자신의 바람을 묻어둔다. 점차 쌓여가는 감정 만큼이나 기대와 흥미도 더 깊어진다. 궁금해진다. 어떤 등장인물들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나갈 것인가? 재미란 기대다. 지켜보게 된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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