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와는 다른 B급만의 매력이라는 것이 있다. 특수효과라고 해봐야 워낙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터무니없이 유치하다. 반짝이는 비닐옷 입고 '삐빕' 해주면 로봇이라 여기면 되고, 한 눈에 보기에도 인형인 것이 티가 나는 것도 사람의 신체의 일부가 되고, 혹은 무시무시한 괴물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래도 재미있다. 장르의 재미다.
장르란 동의를 전제한다. 장르란 그룹이다. 일정한 유형의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 장르라 이름한다. 그리고 그런 장르를 일부러 찾아보는 이들을 팬, 혹은 마니아라 부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이기에 일부러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가며 해당작품을 찾아 즐긴다. 아무리 완성도가 높고 작품성이 훌륭한 작품이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장르가 아니면 흥미가 없다.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완성도나 작품성의 여부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얼마나 장르의 문법에 충실해 있는가가 그들에게는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된다.
'무협'이란 그같은 어느새 우리 사회에 일반화된 '장르' 가운데 하나다. 일상에서도 흔히 쓰인다. '내공'이니 '내상'이니 '기연'이니 하는 말들이. 그만큼 익숙하다는 뜻이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처럼 크게 붐이 일어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 보고 일상적으로 즐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부는 보다 대중에 다가가기 위해 조금씩 변화를 꾀하기도 한다. 원래의 무협은 주로 중국의 역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무협은 중국의 그것과는 다른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저 한국과 한국의 역사시대를 배경으로 중국의 그것을 고스란히 가져오거나, 아니면 무협의 문법만을 가져와서 바로 <전우치>처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채우거나. 하기는 <전우치>에서 보여지고 있는 도술과 무협에서 곧잘 묘사되는 무공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음모와 배신과 복수, 전우치(차태현 분)의 친구이던 강림(이희준 분)은 전우치의 연인이던 홍무연(유이 분)를 차지하기 위해 마숙(김갑수 분)과 손잡고 율도국을 배신하고 전우치마저 죽이려 한다. 한 수 위의 도력으로 겨우 강림을 제압하려는 순간 나타나 강림을 돕는 홍무연의 존재는 비련의 애절함마저 더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어찌하지 못해 하마트면 죽을 위기를 넘기고, 그럼에도 홍무연을 다시 찾을수도 구할 수도 없다고 하는 절박함은 전우치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친구이면서 또한 원수이기도 한 강림과의 처절한 긴장감과는 또다른 감정선이 드라마를 더욱 극적으로 몰아간다. 무협의 흔한 유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그로 인한 역설의 좌절과 절망의 비극. 그래서 무협을 말할 때 흔히 앞에 붙는 수식어가 '기정(奇情)'이었을 것이다. 인심막측과 다정과 무정의 애절함.
물론 드라마는 코미디의 형식을 띄고 있다. 주연이 바로 그 차태현이다. 그 차태현과 대립하게 될 악역으로는 이희준이 캐스팅되어 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배우가 갖는 이미지란 이렇게 중요하다. 자신에게는 한계가 되며 시청자에게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차태현이 진지한 연기를 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보는 이에게 상당히 어색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원래의 '전우치' 이야기 또한 전래의 풍자와 해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림이라고 하는 악역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원래의 전우치에 비해 드라마는 한참은 더 진지해지고 심각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무협의 향기다.
그래서다. 특수효과가 어쩐지 어설프다. 대사들도 오글거리는 것이 상당히 전형적이다. 설정 역시 무언가 어색하면서도 뻔하다. 하지만 재미있다. 아무튼 그래서 재미있다. 민망해하면서도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이치가 되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전우치의 모습은 어디에서 본 것만 같고, 전우치의 이중생활에 당황해하는 주변인물들도 그다지 낯설지 않다. 아마 드라마의 많은 설정을 무협의 그것으로 바꾸어 본다면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그만큼 반복되어 쓰여져 온 소재이고 설정이고 구성이고 내용이다. 재미는 담보한다. 다만 얼마나 시청자가 그 전형성에 동의해 줄 것인가가 현재로서는 문제라 하겠다.
벌써부터 실망했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유치하다, 오글거린다, 혹평들도 많다. 하지만 그런가 하면 바로 그런 재미로 보게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 역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전형성을 대신하는 것은 차태현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일 테고, 그럼에도 색다른 재미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도술이라는 또다른 익숙한 수단을 통해 그것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전래의 '전우치'를 소재로 했다는 점도 있다. 전체적인 내용이나 구성은 기존의 많은 장르물이 답습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그같은 몇 가지 차별점이 드라마에 색다른 매력을 부여한다. 전우치와 대립하게 될 악역 강림으로 캐스팅된 이희준이 얼마나 차태현과 조화를 이루어 드라마에 긴장을 부여하는가가 드라마의 성패를 가르지 않을까 한다. 이희준의 짐이 무겁다. 차태현은 차태현만의 영역이 있다. 아직은 이희준이 차태현에 맞추어 자기만의 캐릭터를 완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그리고 민망했다. 어색했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하지만 지나고 난 감상은 '재미있다'는 한 마디. 원래 이런 장르였다. 이런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다. 홍길동이 세웠다는 율도국의 뒷이야기다. 이런 소소하면서도 디테일한 장치들도 놓칠 수 없다. 시대배경은 가상인 듯하다. 앞으로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출발이 좋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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