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풍수 -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풍수와 역사를 드라마에 완벽히 녹여내다.

까칠부 2012. 11. 22. 10:05

대칭은 아름답다. 앞과 뒤과, 왼쪽과 오른쪽이, 혹은 위와 아래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룰 때 그것은 가장 균형잡힌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보기에도 좋고 마음도 놓인다. 그렇게 믿는다. 세상이란 그렇게 완벽한 균형 속에 있다고. 필요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충분조건 역시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게 세상이란 완벽한 균형 속에 완결되어 있다.

 

그래서 아마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일 것이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 결과가 있으니 당연히 원인이 있을 것이다. 결과란 바로 그 원인으로 인한 필연이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필연이었고, 더 나가면 이미 예정된 운명이었다. 역사도 그와 같다. 다른 수많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결국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은 이미 오래전에 필연에 의해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던 결과였다. 다만 그렇다면 그같은 필연과 운명은 무엇을 통해 담보되는가?

 

바로 여기에 <대풍수>의 대단한 점이 있다. 아직 풍수지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가 없었다. 그런데 풍수지리란 한국인에게 매우 친숙한 소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조선건국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도참설이 전해지고 아직까지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수백년의 왕조를 일으킬 수 있다는 명당 중의 명당 '자미원국'의 존재는 마치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사우론의 '절대반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본능적 욕망을 들쑤시며 다양한 군상을 만들어간다. 욕망과 욕망이 부딪힌다. 순수와 순수가 만나 비극을 만든다. 역설과 오해가 비극을 더 심화시킨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그러면서도 인간의 의지란 얼마나 대단한가? 욕망에 약하며 나름의 순수를 간직한 강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아마 지상(지성 분)의 양아버지 종대(이문식 분)일 것이다. 그의 돈에 대한 욕망은 추해 보일 정도로 집요하고 강하지만 한 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돈에 대한 그의 사랑은 차라리 순수하기까지 하다. 고려를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군주로서의 순수한 의지와 그 과정에서의 좌절이 만들어낸 공민왕(류태준 분)의 어두운 그늘이 그렇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모두를 단지 얼마든지 이용하고 버릴 수 있는 도구로만 여길 뿐이다. 그래서 그는 강하면서도 약하다. 자미원국은 그를 강하게 만들어주었고 자미원국이 가짜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는 다시 약해졌다. 여인으로서 그리고 어미로서 수련개(오현경 분)는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왕을 꿈꾸는 그녀의 모습은 다시 사랑과 자식에 대한 정마저 서슴없이 이용할 수 있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그것이 드라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만화경과도 같은 사건들이.

 

그리고 바로 여기서 이 드라마의 또다른 대단한 점이 나온다. 디테일하다. 전혀 허구의 이야기들일 터다. 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들일 것이다. 실제의 역사와 분명 많은 부분 다르다. 하지만 어느새 납득하고 만다. 피폐해진 고려를 다시 일으키고자 그토록 노심초사하던 강인한 군주 공민왕이 어떻게 그같은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는가? 영명하고 강인하던 한 군주가 의심많고 욕심많은 범용한 사내로 바뀌기까지 어떤 사연들이 있었는가? 그것을 어떤 이들은 공민왕이 가장 사랑했던 왕후 노국공주(배민희 분)의 죽음에서 찾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대담하게도 철저히 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자미원국을 그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자미원국을 믿고 원으로부터의 독립을 추진했으며, 그것이 가짜인 것을 알았기에 공민왕은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나중에 공민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우'의 생모 반야에 대해서도 드라마는 드라마적인 상상력을 통한 디테일을 잊지 않는다. 우연히 어려서 만난 지상에 의해 반야의 어머니가 군왕지지에 묻히게 되었다. 언저리에 비껴 묻혀 있던 반야의 생보가 군왕지지에 대해 알게 된 반야에 의해 수련개가 자신의 어미를 이장한 그곳에 몰래 묻히고 말았다. 그곳이 군왕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반야의 변신이 흥미롭다. 그토록 어린 시절의 인연이던 지상을 그리던 순수한 모습에서 욕망에 눈을 뜬 여인의 모습으로 바뀌고 만다. 그것이 비극을 잉태한다. 왕과의 사주를 위해 자신의 사주를 고침으로써 그녀와 신돈의 비극적 최후는 신벌로 예고된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다 거친다. 홍건적에서, 덕흥군의 반란, 그리고 장차 공민왕이 죽고 난 뒤 공민왕의 고명을 받아 우를 받들며 권세를 누리게 되는 이인임(조민기 분)까지. 이성계(지진희 분)가 고려의 충신에서 찬탈자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도 제법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민왕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돌아온 것은 끝없는 의심과 배신 뿐이었다. 실망은 분노로 바뀌고 충성하던 마음은 의심으로 자라난다. 역시 이 과정에서도 다시 자미원국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자미원국을 갖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자미원국을 얻는 자가 나라를 얻고 왕이 된다. 이성계는 마침내 왕이 되었다.

 

고려를 지키고자 발버둥치는 신돈(유하준 분)과 고려의 멸망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대안을 찾아 헤매는 무학(안길강 분)의 대립도 흥미롭다. 사실 그것은 고려말 실제 사대부들 사이에서 실제 있었던 대립이기도 했었다. 친친을 주장하며 고려왕에 대한 충성을 다하려 했던 이들과 존존을 외치며 대의를 위해 기력이 다한 고려를 대신할 새로운 왕조를 열어야 한다는 이들. 그것을 신돈과 무학이라고 하는 이미 알려진 인물들을 통해 보다 앞당김으로써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의 필연성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이미 그때부터 고려의 멸망은 예고되었고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었다. 하필 신돈과 무학이라고 하는 점에서도 제작진의 감각이 돋보인다. 다른 인물이었다면 이 정도 설득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버려진 자식과 자식을 버린 어미, 오이디푸스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고 만다.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란 지상이 오해로 자신의 생모인 영지옹주(이승연 분)를 수련개로 착각하여 원수로 여기고 만다. 그나마 이정근(송창의 분)는 수련개로부터 아버지의 불륜상대로만 여겼던 그녀가 사실은 자신의 생모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수련개를 어머니로 받아들일수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수도 없다는 딜레마가 이정근을 괴롭힌다. 수련개와 대립하고 있는 영지옹주 또한 어머니이메 수련개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이기도 하다. 서로 원수이면서 같은 이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카인과 아벨의 비극을 연상케 한다. 비극은 매혹적이다. 처절한 비극은 그만큼 보는 이마저 간절하게 만든다. 그들의 비극은 언제쯤에나 해소될 수 있을까?

 

물론 허술한 부분도 있다. 어색한 부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넘어간다. 단점보다도 더 큰 장점은 때로 사소한 단점 정도는 묻어버리기에 충분한 법이다. 드라마적인 재미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흥미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거대서사에 묻히지 않는 절절한 개인의 디테일한 이야기가 있다. 공민왕과 노국공주, 이성계와 이인임, 목지상, 이정근, 그들 앞에 놓은 비극과 사연들이 드라마를 놓지 못하게 만든다.

 

기대한 이상이다. 풍수를 소재로 완벽하게 드라마 속에 녹여냈다. 풍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풍수에만 매몰되지는 않는다. 거의 풍수에 대해 나오지 않는 동안에도 풍수는 드라마 전반을 촘촘이 채워가고 있다. 제목이 어색하지 않은 드라마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 가장 역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운 드라마이기도 할 것이다. 만족스럽다. 특히 비정과 다정의 경계에서 가장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오현경의 원숙한 연기는 드라마를 끌어가고 있다. 그녀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지만 공민왕이 갖는 이중성을 마치 자신의 모습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해낸 류태준의 연기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배우마저 훌륭하다.

 

가장 독특하면서도 완성도 또한 높은 드라마라 할 것이다. 드라마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으며, 짜임새 또한 상당히 야무지다. 독창적인 대본과 그것을 충실히 구현해내는 감독과 스탭의 감각과 노력, 그리고 그것을 시청자들에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가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할 것이다. 보기에 즐겁다. 기다려지고 기대가 된다. 아주 좋은 드라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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