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섬뜩한 권력의 무서움을 보다.

까칠부 2012. 12. 17. 07:59

보는 내내 대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부터 하고 있었다. 공교롭다. 그리고 절묘하다. 어떻게 권력의 속성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가?

 

이경규의 독선과 독단이 싫었다. 억압과 강요도 싫었다. 그래서 이경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는다. 이경규의 하인이라고까지 일컬어지던 최측근 이윤석으로부터 반란은 시작된다. 가장 웃기지 않는 멤버로서 항상 소외되어 있던 윤형빈까지 가세한다. 대안은 이경규 자신이 최우선퇴출대상자로 지목함으로써 그와 대립하게 된 김국진이었다.

 

이경규도 그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자기가 다른 멤버들에게 어떻게 여겨지고 있는가를. 이대로 자유투표가 이루어진다면 이경규 자신의 반대편에 선 후보가 당선될 것이다. 그를 회피하기 위해 가장 자신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후보를 선택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끝까지 이경규를 저버리지 않는 김태원은 아부를 넘어선 어떤 신념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주상욱도 선거에 참여한다. 이경규와 김국진 딱 반반으로 나뉘었다. 이경규와 이윤석, 김태원, 그리고 김국진과 김준호와 윤형빈, 캐스팅보트를 주상욱이 쥐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출마를 했고 김국진의 대항마로 이경규의 선택을 받았으며 김국진 정권에서 김준호와 더불어 중용되고 있었다. 기회는 타이밍이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권력에 눈독을 들인다. 이경규의 독설이 마치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듯하다.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무서워진다."

 

물위를 걷겠다는 이경규의 공약은 수세에 몰린 나머지 튀어나오고 만 무리수였을 것이다.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같은 현실에 대한 비판이며 조롱이다. 물위를 걷고, 바다를 가르고, 뒷짐을 진 채 차를 운전하고, 그것을 더구나 김태원이 곁에서 직접 보았다 증언하고 있다. 이윤석의 말마따나 확고한 고정지지층이 저런 말도 안되는 공약을 서슴없이 내뱉도록 만든다. 물론 이경규 자신은 말했듯 자기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치는 보복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던가? 이경규의 독재를 끝낸 것은 맞았다. 이경규와 김태원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 모두가 의도한대로 이경규의 철권통치는 선거로 인해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결국 이경규의 독재가 끝나고 찾아온 것은 김국진에 의한 또다른 독재였다. 모두가 바란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이경규를 고의적으로 골탕먹이며 괴롭히는 김국진의 모습과 이전의 이경규의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폭압과 다른 것이 무엇이 있던가? 여전히 이윤석과 윤형빈은 소외되어 있을 뿐이고, 측근으로 발탁한 주상욱과 김준호에게도 권력을 나누어주려 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혜택을 본 것은 동갑내기 친구인 김태원이었다.

 

"리더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구나. 내가 리더가 되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권력자들이 입에 달고 살던 것이 바로 국가와 국민이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겠다. 그래서 어떠했던가? 권력은 권력자 개인의 것이다. 그래서 권력자다. 권력을 가진 자다. 그 권력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는 권력자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그 권력을 쓸 것인가? 먼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주위에 대해,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다지 도움도 되지 않는데 일부러 신경쓰고 배려해 줄 이유따위 어디에도 없다. 아주 소수의 정말 극소수의 권력자들만의 그러한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김국진이라고 다르지 않다. 누구로부터도 비판받지도 견제되어지지도 않는 권력은 출발부터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말하도록 멤버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에는 혁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누가 되어도 똑같다. 누가 되어도 그놈이 그놈이다. 그러니 한 번 뒤집어보자. 기회를 노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던 주상욱과 같은 중간층과는 다른 기층의 분노와 절망이 그렇게 표면으로 분출되고 만다. 민중혁명이 성공한 예라고 해봐야 프랑스대혁명과 러시아혁명정도가 거의 유일할 테지만, 그러나 수많은 아래로부터의 반발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주상욱과 김준호가 김국진에게 갖는 불만도 의미심장하다. 권력에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이들이다. 이미 권력의 단맛을 안다. 그래서 더욱 권력의 중심에서 그 달콤함을 누려보고자 한다. 혁명은 기층민중으로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하지만 그 열기에 불을 붙이는 것은 바로 권력의 바로 아래에 존재하는 준기득권계층일 것이다. 프랑스대혁명 당시의 부르주아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도 바쿠후체제 아래에서 소외되어 있던 하층사무라이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동학농민전쟁을 주도한 것도 양반사회로부터 밀려난 향반과 잔반, 그리고 중인들이었다. 충분한 교육과 최소한의 재산과 무엇보다 현실에 대한 나름의 식견과 대안을 갖추고 있었다. 기존의 권력이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기에 그들은 더욱 기성권력의 빈틈을 노리고 스스로 대안이 되고자 한다.

 

권력의 말로도 그래서 비참하다. 김국진이 압도적 다수의 선택에 의해 권좌에 오르게 되자 바로 이경규의 수난이 시작된다. 모두의 바람대로 과거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보복이 이루어진다. 억압과 강요, 그리고 그에 뒤따는 수모와 굴욕, 그럼에도 이경규는 그것을 묵묵히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경규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놓게 된 김국진 또한 김국진의 자리를 노리는 이들에 의해 물세례를 당하고 만다. 절대권력 앞에 권력을 놓고 물러나는 이에 대한 배려따위는 안중에 없다. 권력이 친구로서의 의리나 개인적인 인정조차도 한순간에 잊도록 만든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마치 짜여진 것처럼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권력따위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이던 김태원마저 김국진에게 물을 끼얹으며, 끝까지 이경규를 놓지 않던 충신에서, 이내 권력을 쥔 김국진에게 잘보이려 아부하는 기회주의자, 그리고 다시 김국진에게 소외당하자 이경규와 손잡고 소심한 복수를 하는 모습까지. 그야말로 소시민 그 자체일 것이다. 권력에 약하고,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지키고자 하는 도의가 있고, 그러나 현실의 이익 앞에 서슴없이 그것을 놓아버린다. 천연덕스러움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아니까. 권력이란 어차피 남의 일이다. 가장 잔인하고 가장 비열한 것은 어쩌면 그같은 소시민스러움일 것이다.

 

소름끼친다. 권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 이전에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권력이란 욕망일 것이다. 인간이 갖는 욕망의 극치일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자신의 것을 굳이 놓지 않아도 된다. 독점하고자 한다. 선의란 그로부터 출발한다. 하필 대선기간이다. 시청자들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당신의 한 표에 실린 권력이라고 하는 무게의 가치를 아는가? 권력이 갖는 무서움을 과연 알고서 투표를 하는가?

물론 현실의 권력은 그와는 다르다. 그래서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이들이 피흘리며 싸워왔고 노력해왔다. 비판할 수 있고 견제할 수 있으며 합법적으로 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수단도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그럼에도 그것은 권력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한 표에 바로 그런 권력을 선택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진 것이다.

 

시의적절한 주제였다. 그러면서도 재미있었다. 무겁고 심각한데 그것이 납득할 수 있는 일상의 웃음으로 녹아 전해진다. 한참을 웃고, 한참을 즐거워하며, 그리고 진지해진다. 원래 <남자의 자격>이 가지고 있던 미덕일 것이다. 돌아온 <남자의 자격>을 환영한다. 무척 기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