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드라마의 제왕 - 우연과 진부함에 기댄 결론, 드라마의 제왕은 없다.

까칠부 2012. 12. 18. 08:20

차라리 허무할 정도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미하다. 용의 머리로 시작해서 지렁이의 꼬리로 끝난다. 강현민(최시원 분)과 성민아(오지은 분)의 다툼이 고작 감독 고영목(정인기 분)의 진노 한 번에 그대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인가.

 

이고은(정려원 분)과 재계약하려는 앤서니 김(김명민 분)의 노력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이미 단서는 주어졌다. 이고은은 남자로서 앤서니를 의식하고 있다. 이고은이 앤서니를 저버리고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상당히 멀리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충분히 재계약을 맺기까지 줄다리기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길을 잘못들어 조난을 당한다는 설정도 진부하기 이를데 없다. 어째서 서로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커플이 함께 차를 타면 엉뚱한 곳을 헤매다 함께 밤을 지새는 공교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마는 것일까? 연료도 떨어지고, 핸드폰도 닿지 않고, 추위에 떨다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몸을 녹이다 끝내 속에 감추어둔 이야기들을 꺼내고 만다. 그리고 이고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앤서니와의 재계약을 받아들인다.

 

항상 그래왔다. 앤서니를 최악의 궁지로 몰아넣을 뻔했던 제국프로덕션의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의 부정에 대해서도 결국 남운형(권해효 분) 국장의 '아버지' 발언 하나로 모든 위기가 해소되고 있었다. 100억의 투자를 약속했던 와타나베 회장의 죽음으로 인해 와타나베 회장의 아들 켄지에게 30억을 돌려주어야 했을 때도 뜬금없이 제국회장이 사들이고자 하는 땅의 원주인을 찾아가 거래를 함으로써 한순간에 해결해 버리고 만다. 땅주인은 또 사람도 좋게 이고은이 찾아가자 약속대로 앤서니에게 투자를 해주게 된다.

 

이고은이 표절시비에 휩싸였을 때도 방송가에서 흔히 일어나는 표절시비에 대한 디테일보다는 우연에 기댄 빠른 해피엔드로 마무리하고 만다. 표절시비가 벌어졌을 때 과연 관계자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해결하려 하는가? 아니 해결하는가? 역시 긴 호흡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이고은의 어머니 박강자(성병숙 분)의 우연한 한 마디가 열쇠가 되어 그대로 끝. 긴장했던 것이 어쩐지 바보같이 느껴진다.

 

기대가 없다는 뜻이다. 긴장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다음에 대한 기대가 절박하지 않다는 뜻이다. 어떻게 될 것인가?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화재장면을 촬영하는데 하필 그 안에 단역 연기자가 잠들어 있었다. 위기다. 자칫 잘못하면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작 드라마촬영을 전면중단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전혀 긴장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어떻게 해결되겠지.

 

앤서니의 능력같은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 드라마의 제왕이라 불리웠는지 지금까지의 내용만 놓고 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는 일이란 없다. 그가 직접 나서서 주도적으로 해결한 경우가 거의 없다. 우연이고 운이다. 주위의 도움이다. 운도 능력이라지만 제국 시절에도 앤서니는 그렇게 운의 도움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것일까? 반지의 힘이 절대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개연성도 유기적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다.

 

한 마디로 드라마가 없다. 발단은 있다. 사건은 있다. 그런데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없다. 시작과 끝 그것이 전부다. 성의가 없거나 능력이 없는 것이다. 시작은 참으로 창대하고 흥미로운데 결론은 항상 허무할 정도로 우연과 운에 기대고 있다. 드라마를 보는 의미가 없다.

 

갈수록 실망이다. 기대가 컸었다. 재미있었다. 흥미롭기도 했다. 배우의 면면이나 그들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개성강한 캐릭터와 그것을 살리는 배우의 연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캐릭터물도 아니다. 무엇을 위해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가.

 

이번만은 제발 중간과정이 보여지기를 바란다. 실제 사고가 일어나든, 아니면 어떻게 사고를 피할 수 있었든, 앤서니가 전면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 앤서니가 주인공이다. 드라마의 제목도 <드라마의 제왕>이다. 지금까지 드라마에 <드라마의 제왕>은 없었다.

 

앤서니가 성민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앤서니 자신을 두르고 있던 거짓의 갑옷이 그를 옭죈다. 그래서 이고은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이고은은 앤서니 자신의 모든 거짓을 다 알고 있으니까. 아무도 모르는 앤서니의 본명까지 알고 있다. 그가 그토록 감추고 싶어하던 부끄러운 비밀들에 대해서도 낱낱이 들어 알고 있다. 그럼에도 괜찮다 말해준다. 어머니 또한 그렇게라도 성공한 자신을 바라셨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죄인이라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때로 환멸과 혐오의 감정마저 갖는다. 누군가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바로 부모다. 종교의 신은 부모의 대신이다. 때로 사랑은 사람에게서 신을 찾도록 만든다.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해해준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너의 죄가 아니라고. 어쩔 수 없이 앤서니는 이고은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다. 성민아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우연이 운명을 만든다.

 

멜로만 남았다. 이고은과 앤서니 사이의 뻔한 멜로만이 드라마를 지탱해준다. 남운형 국장이 아버지의 힘으로 국장이 된 사실을 알고 사직서를 냈다. 다시 위기가 시작되려 하지만 역시나 그다지 긴장은 되지 않는다. 기대도 되지 않는다. 아쉽다. 시작만 좋았다. 실망만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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