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전우치 - 마숙이 찾은 은광의 가치, 고비를 맞다

까칠부 2012. 12. 21. 08:14

무언가를 화폐로 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충분한 교환가치가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그러면서도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널리 유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소모되는 수단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금의 경우 수천년간 모든 가치를 계량하는 기준으로써 쓰여오고 있었다. 현대사회에 들어 달러가 그 역할을 상당부분 대신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언제 어느곳에서든 바로 현물 혹은 현금과 교환할 수 있는 가치로써 금이 갖는 지위는 여전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한때는 바로 이 금으로 만든 주화가 화폐의 단위로써 쓰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금은 화폐로써 쓰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결격사유가 있었다. 바로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중세말 자급자족경제에서 벗어나 상업이 활성화되면서 봉건영주들 역시 농민들로부터 현물 대신 화폐를 지대로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그 화폐는 금을 기준으로 계량되었다. 문제는 당시 유럽이 보유한 양이 농민들이 필요한 만큼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었다. 화폐가치는 높아지고 비례해 농민들이 보유한 현물의 가치는 떨어졌다. 심지어 농민들 가운데는 예전처럼 화폐가 아닌 현물로 지대를 받아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그로부터 막대한 금이 유럽으로 유입되지 않았다면 유럽의 경제는 다시 이전의 현물경제로 회귀하고 말았을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화폐대신 쓰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도 지구상에 있는 수십억의 인구 가운데는 다이아몬드를 평생동안 한 번 구경조차 못해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를 화폐대신으로 쓴다. 어차피 다이아몬드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그같은 화폐경제로부터 소외된다. 금을 구하지 못한 사람은 시장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보편적으로 쓰이지 못하는 화폐는 화폐가 아니다.

 

그래서 고대서부터 금과 함께 화폐로써 흔히 쓰이던 것 가운데 하나가 철과 구리였다. 하지만 역시 이들 또한 문제가 있었으니 철은 일상에서 너무 흔히 쓰이는 필수적인 금속이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화폐로써 쓰기보다 철로써 녹여 쓰는 쪽이 쓰임에 맞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구리값이 폭등하자 동전을 녹여 구리로써 팔아치우려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조선시대 화폐의 유통이 활발하지 못했던 이유도 대포 등의 무기와 놋기 등의 일상용품에 흔히 쓰이는 구리였기에 화폐로 충분히 주조해 유통시킬 만큼의 양이 확보되어 있지 못했던 탓이었다. 조선에서 구리가 화폐로써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효종 연간 조선에서도 구리광산이 발견되면서부터였다. 그 전까지 구리는 거의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금은 너무 귀하다. 철과 구리는 현실에서 쓰임이 너무 많다. 쌀이나 베처럼 화폐로 쓰이기에는 일상에서 소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제 어느때든 어떤 형태로든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화폐로 쓰이기에는 결격사유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았는가? 그래서 은이었다. 금보다는 구하기 쉽고, 철이나 구리처럼 일상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재료도 아니다. 적당히 귀금속으로서의 가치 또한 있다.

 

중국이 먼저 시작했고, 중국과 무역하던 포르투갈 상인들이 가세했다. 그리고 포르투갈 상인들과 거래하던 일본이 그 공급을 맡았다. 처음에는 중국 안에서 생산되어 유통되던 은이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일본의 은이 유입됨으로써 중국의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청 강희제 연간 토지세와 인정세를 은으로 통일해서 내는 지정은제가 도입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시장에 유통되는 은의 양이 풍족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은이 고갈되기 시작하면서는 신대륙의 멕시코에서 생산된 은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사실 이같은 국제무역구도의 변화는 조선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일단 중국에서 은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조선 또한 그로부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국부의 유출을 꺼려하여 은광과 금광의 개발을 금지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런 한 편으로 일본의 은이 조선을 통해 중국으로 유통되기도 했었는데 18세기까지 그같은 중계무역은 조선왕실의 든든한 자금줄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바로 그 일본으로부터 유입되는 은의 양이 일본의 은의 고갈과 더불어 줄어들기 시작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이후 조선 조정의 재정을 압박하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 조선이 무너진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마숙(김갑수 분)이 설사 은광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조선의 현실에서 그것이 큰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여기는 이유다. 조선의 화폐단위인 푼과 냥 역시 원래는 은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만, 조선에서는 그러나 은의 유통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신 구리로 만든 엽전으로 그 가치를 대신하고 있었다. 갑자기 막대한 은이 유통되면 거사자금을 마련하기 전에 조선의 경제가 흔들리고 만다. 조선을 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신대륙으로부터 유입된 막대한 양의 금이 도리어 스페인의 경제를 괴멸시켰듯 말이다.

 

차라리 구리광산이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은광의 존재는 조선조정도 알고 있었다. 다만 굳이 은을 캐내어 정련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에 빼앗기느니 차라리 땅에 묻어놓고 있는 쪽이 낳았다. 대신 구리는 가장 필요한 자원이었지만 그러나 당시까지는 조선에서 나지 않아 전량 수입해야 하는 자원 가운데 하나였다. 유황 역시 마찬가지다. 구리만 있으면 돈을 주조할 수 있고 그것으로 얼마든지 세력을 늘릴 수 있다.

 

참고로 흔히 말하는 조선시대 화폐단위인 냥이란 은 한 냥을 뜻하는 단위로써, 원래는 동전 100문이 은 한 냥으로 계량되었다. 역시 흔히 쓰이는 푼의 단위다. 그러나 구리가 귀해지면서 동전 한 문의 무게는 비례해 작아지게 되었고, 은이 역시 귀해지면서 은 한 냥에 구리돈 400문까지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있었다. 아마 은광의 은을 모두 조선의 시장에 푼다면 굳이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서도 조선을 안에서부터 말라죽게 만들기에 충분하리라.

 

너무 허술하다. 전우치(차태현 분)를 시험하는 왕도, 마숙과 마강림(이희준 분)을 쫓아 조침령의 은광으로 잠입하는 과정도, 심지어 홍무연(유이 분)이 기억을 되찾고 마숙을 암살하려는 장면까지도. 긴장감이 없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짜릿함이 없다. 그래서인가 차태현의 연기마저 국어책을 읽는 듯 밋밋하기만 하다. 그래도 마숙을 잡기 위해 좌의정(김병세 분)에게 손을 내미는 왕(안용준 분)는 과연 왕이구나 싶었다. 전우치는 은광을 무너뜨리고 왕은 좌의정과 손을 잡고 그를 치기 위한 군사를 일으킨다.

 

위기가 찾아온다. 계속해서 위기였다. 거대한 악과 맞서는 주인공 영웅의 숙명이다. 위기를 맞고 다시 그 위기를 극복한다. 마숙의 안마당에서 하마트면 정체를 들킬 위기를 맞는다. 어쩌면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프로필상 전우치의 연인은 홍무연이 아니었다. 마숙과 마강림을 처단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해진다. 홍무연은 죄를 끌어안고 살아가기엔 너무 여리고 너무 깨끗하다. 그래야 한다.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될 것이다. 모두가 기대하는 것이다. 멜로도 좋고 드라마도 좋지만 그보다는 액션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최강의 도술사들이 자신의 전력을 다해 하늘과 땅을 누비며 그 실력을 겨룬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치열한 겨룸을 지켜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동기가 갖춰진다. 잘 알지도 못하는 율도국의 멸망보다 사랑하는 연인의 비극은 시청자 자신도 충분히 공감하는 동기가 되어준다.

 

판타지다.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이름이 쓰이고 있다. 그래서 문득 떠올랐다. 하필 은광이다. 어째서 조선에서는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못했는가. 마숙이 발굴한 은광도 어쩌면 크게 쓸모가 없을지 모른다. 다른 이야기다. 흥미롭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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