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기대한 대로였다. 사건은 있지만 위기는 없다. 위기는 있어도 과정은 없다. 처음부터 작가가 의도한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을 터다. 전혀 심각하거나 진지할 필요 없는 가볍고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촬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인물들 사이의 멜로만 남았다.
그래도 조금은 기대를 했다. 촬영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화재장면을 촬영하는데 단역배우 하나가 세트에서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물론 사람의 목숨이 오고가는 심각한 장면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바로 전회인 13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렇게까지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었다면 그에 걸맞는 위기나 갈등이 따라와주어야 한다.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을 가져본다.
하지만 없었다. 하다못해 앤서니(김명민 분)가 직접 불속으로 뛰어들어가 단역배우를 구해내는 장면에 대해서조차 아무것도 뒤에 따라오는 것이 없었다. 사고가 일어날 뻔 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인해 극중 드라마 '경성의 아침'이 위기를 맞는다던가, 혹은 앤서니가 단역배우를 구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앤서니 자신의 이미지는 물론 시청률이 반등하는 계기가 되던가, 그러나 그저 그 뿐. 혹시 모르겠다. 하마트면 끔찍한 사고를 당할 뻔했던 단역배우가 마침내 깨어나고 완치되고 나면 다른 드라마가 펼쳐지려는지.
사건은 많았다. 사고도 많았다. 그러나 하나같이 굳이 시간을 끌 필요조차 없이 길어야 한 주 정도면 말끔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우연에 기대거나, 아니면 운에 맡기거나, 그도 아지만 제작진이 직접 개입하던가. 그렇다 보니 이제 남은 것이란 앤서니와 이고은(정려원 분) 사이의 뻔한 멜로 뿐이다. 벌써부터 있는대로 티를 내고 다닌 탓에 두 사람의 사이에 대한 어떤 기대도 호기심도 남아있지 않은 참이다. 시간이 문제일 뿐, 그나마 앤서니에 대해 순정과도 같은 애정을 보여주던 성민아(오지은 분)조차 이고은과의 라이벌구도에서 떨어져나간지 오래다. 이제는 아예 강현민(최시원 분)과 이어지려 하고 있다.
강현민과 성민아의 자존심 싸움이 구영목(정인기 분)의 개입으로 인해 조기에 진압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화해 뿐이다.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 친해지는 것을 넘어 하필 강현민은 남자 성민아는 여자다. 우연찮은 오해로 말미암아 강현민은 그동안 사귀던 윤빛나(최수은 분)와 헤어지고, 바로 그 오해로 인해 윤빛나가 촬영장까지 쳐들어오면서 강현민과 성민아가 사귄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오해는 모두에게 알려지고 만다. 아직 서로에 대해 전혀 이성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 가운데 오히려 그같은 모두의 오해와 언론의 보도로 인해 떠밀리듯 사귀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몰려버린 것이다. 언론의 보도를 본 팬들마저 기정사실로 여긴다.
여전히 앤서니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있는 성민아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강현민이 어떻게 연인으로 발전해 갈 수 있을까? 정작 드라마 촬영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여러 사건과 사고들이 가볍게 스치듯 지나가 버린 탓에 이제는 과연 성민아와 강현민의 사이가 어떻게 발전되어 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만이 남아 버렸다.
앤서니와 이고은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순항중이다. 특별히 제작자로서의 앤서니의 실력이나 작가로서의 이고은의 역량이 필요한 부분따위는 이제 더이상 거의 남아있지 않다. 제작자로써 드라마 제작과정에서의 여러 문제들을 직접 고민해가며 해결하가는 과정이나, 작가로써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며 타협해가는 내용 등은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아예 드라마 초반을 제외하고 거의 다루어지고 있지도 않다. 이제는 사랑 뿐이다. 그것도 이제 거의 얼마 남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어느 정도 솔직해져 있는 터라 조금 더 서로의 감정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거의 다 와간다. 이것까지 끝나고 나면 이제 드라마에는 무엇이 남을까?
결국 이번회차에서도 앤서니와 이고은, 성민아와 강현민의 멜로를 제외한 나머지는 남운형(권해효 분)과 그의 아버지인 제국프로덕션의 회장(박근형 분)과의 관계가 대신해 버린다. 아버지의 힘에 기대 국장이 된 자신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던 남운형이 국장으로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에 대해 자각하기까지의 과정과 그렇게 내린 결론으로 아버지인 회장과 담판을 짓기까지의 과정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지가 줄기보다 더 커진다. 이제 더 이상 제국프로덕션의 회장은 앤서니와 그의 드라마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인가.
뭔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느낌이다. 남은 것은 로맨스 하나인데 그렇다고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내용이 번잡스럽다. 주인공 커플 두 사람만 살리면 된다. 그래서 쉽게 빠르게 사건을 마무리지으려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건들도 너무 많다. 주의가 분산된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드라마제작과정에서의 헤프닝에 더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실망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렇다고 새로운 내용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기대도 생기지 않는다. 습관으로 본다. 관성으로 기다린다. 그래도 김명민과 정려원, 최시원, 오지은의 캐릭터와 연기는 매력있다. 그것이 전부다. 안타깝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639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의 제왕 - 너무나 알기 쉬운 그들의 멜로, 쉽다. (0) | 2012.12.25 |
---|---|
전우치 - 마숙이 찾은 은광의 가치, 고비를 맞다 (0) | 2012.12.21 |
드라마의 제왕 - 우연과 진부함에 기댄 결론, 드라마의 제왕은 없다. (0) | 2012.12.18 |
전우치 - 도술과 주문, 말이 기적을 이루다 (0) | 2012.12.15 |
대풍수 - 타락과 부패를 대하는 이성계와 이인임의 다른 선택... (0) | 2012.12.14 |